기사 (51건) 리스트형 웹진형 타일형 “그저 이사를 왔을 뿐입니다” “그저 이사를 왔을 뿐입니다” 도시에서만 살던 사람에게는 로망이 있다. 그림 같은 풍경을 배경삼아 멋진 집을 짓고 살고 싶은 꿈 말이다. 물론 풍경을 먹고 사는 것은 아니지만 아침에 눈을 떴을 때 뻐꾸기가 울고 밤에는 소쩍새가 ‘솟적다’라고 울며 올해의 풍년을 알린다. 사계절을 지나며 온갖 꽃들을 지천에서 보고 느끼며, 자연에서 지친 마음을 위로받는다. 내가 무엇을 해 준 것도 없는데 자연은 우리에게 풍요로운 혜택을 준다.지난 2012년 금마면 월암리에 귀농한 문성휘(58)씨는 “아침에 일어날 때가 가장 행복하다”고 말한다. 아스팔트 위에서 태어난 문 씨는 시골생활에 대한 로망으로 45살에 명예퇴직을 했다. 아내 복명순 씨와는 상의도 하지 않고 내린 결정이었다. “내려오는 것이 쉽지는 않았다. 7년을 아내에게 졸랐다. 물론 그 때 도시청년들, 귀농·귀촌의 꿈을 실현하다 | 취재=김옥선/사진=김경미 기자 | 2018-06-09 09:16 농사 아닌 다른 것으로 먹고 살 수 있을까? 농사 아닌 다른 것으로 먹고 살 수 있을까? 작은 시골 마을에 정착해 농사짓는 것 이외에 다른 일을 해서 먹고 산다는 일은 생각처럼 쉬운 일은 아니다. 읍내라면 이야기가 조금 달라진다. 적성에 맞는 일을 찾아 창업을 해도 되지만 유동인구가 많지 않은 시골에서 아이템을 찾기는 쉽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골로 오고 있는 도시인들이 있다. 지난 2016년에 홍동면으로 귀촌한 이지운, 이지영 부부는 반려동물문화공간 리조트인 ㈜도기플래닛을 오픈하고 시골에 정착했다.반려동물을 키우는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가장 큰 고민은 반려동물을 데리고 갈 곳이 없다는 것이다. 여행을 가면서 반려동물을 어딘가 맡겨 놓고 가기에는 마음이 놓이지 않고, 데리고 가자니 선뜻 반기는 곳도 없다. 반려동물을 키우는 가족에게는 최고의 휴양지인 도기플래닛은 강아지가 수영할 수 있 도시청년들, 귀농·귀촌의 꿈을 실현하다 | 취재=김옥선/사진=김경미 기자 | 2018-06-03 09:03 “이놈의 딸기 어렵다, 어려워~” “이놈의 딸기 어렵다, 어려워~” 세상에서 가장 부지런한 사람, 스스로 계획해 정직한 노동력으로 수확물을 만들어내는 사람, 바로 농부다. 손바닥한 만한 땅뙈기에 상추나 호박 등을 심어 나 혼자 먹고 사는 것이면 그리 큰 품이 들어가는 일이 아니다. 콩 심어 콩 나오면 먹고, 못생긴 호박이 열리면 못생긴 대로 즐겁고 행복한 노동이다.그러나 농사가 직업이 되는 순간 몸이 힘들어지고 마냥 즐겁지만은 않다. 수익을 내서 자식들을 키워내야 하고 다가올 노후도 걱정해야 한다. 젊음이라는 무기를 내세워 겁 없이 농업에 도전장은 내민 사람이 있다.홍동면 운월리 은방울 딸기농원을 운영하는 조영식(38)씨는 2016년 7월에 홍성에 내려왔다. 전북 완주가 고향인 조 씨가 홍성에 내려온 것은 장인어른이 홍북에서 딸기 농사를 지어서다.“사실 도시청년들, 귀농·귀촌의 꿈을 실현하다 | 취재=김옥선/사진=김경미 기자 | 2018-05-27 09:04 “가족농사만큼은 잘 지었습니다!” “가족농사만큼은 잘 지었습니다!” 도시에서 직장인의 모습은 별반 다르지 않다. 정해진 시간에 출근해 정해진 것보다 더 많은 일을 하며 정해진 퇴근 시간이 아닌 야근과 철야를 한다. 모든 사람이 다 그렇게 살아가려니 하며 지친 몸과 마음을 달래며 살아보지만 그렇게 큰 위안이 되지는 못한다. 아이가 한참 커가는 시간에 새벽에 출근해 야심한 밤에 퇴근하니 아이와 눈 맞출 시간도 없다. 그러다 어느 광고에서 봤듯 아버지한테 하는 인사말이 “또 오세요”라는 말이 될 수도 있다. 셋째가 태어났다. 아이를 많이 낳고 싶은 마음은 있으나 도시에서 사교육비가 감당되지 않는다. 아이들을 콘크리트가 아닌 땅에서 키우고 싶었다. 지금쯤 직업을 한 번 바꿔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지도를 펼치고 어디를 갈지 고민했다. 서울과 가까웠으면 좋겠고, 춥지 도시청년들, 귀농·귀촌의 꿈을 실현하다 | 취재=김옥선/사진=김경미 기자 | 2018-05-20 09:17 “우리가 여기서 살지 않았다면 어땠을까?” “우리가 여기서 살지 않았다면 어땠을까?” ‘저 푸른 초원 위에 그림 같은 집을 짓고 사랑하는 우리 님과 한 백년 살고 싶어~’ 남 진의 ‘님과 함께’라는 노래는 오랜 세월이 지났어도 첫 노래가사의 힘은 여전히 유효하다.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고자 하는 마음은 인간의 가장 원초적 욕망이다. 콘크리트 빌딩 숲에 살아가면서 철이 되면 밖으로 나가고, 여행을 다니는 이유다. 그저 관광을 다니는 것만으로는 만족할 수 없어 내가 살고 있는 터전을 자연과 함께 하고자 도시를 떠나 시골에 집을 짓고 사는 사람들, 귀촌인들이다.그래도 귀농인보다는 조금은 경제적으로 여유로운 사람들이다. 은퇴 후 텃밭에서 생산되는 작물들로 생활하고 퇴직금을 조금씩 아끼면 충분히 여유로운 생활이 가능하다. 그러나 가장 큰 문제는 역시 사람이다. 원주민과의 심적인 갈등이 귀촌인들에 도시청년들, 귀농·귀촌의 꿈을 실현하다 | 취재=김옥선/사진=김경미 기자 | 2018-05-13 09:24 “시골은 돈 벌러 오는 곳이 아니지요” “시골은 돈 벌러 오는 곳이 아니지요” 땅을 밟고, 흙을 만지고, 지천에 널린 나물을 뜯어먹고, 바람이 심하게 불면 행여나 작물이 손상될까 두렁을 기웃거리는 이 모든 일이 귀농을 하면서 겪는 변화 중 하나다. 물론 모든 것이 좋지만은 않다. 쪼그리고 앉아 밭을 매니 허리도 아프고 무릎도 아프다. 마을 어르신들의 잔소리도 들어야 한다. 당장 여유 있는 현금도 없다. 그래도…그런데 말이다, 마음만은 그지없이 편하다.37살이 되던 해 귀농을 결정했다. 여성민우회 생협에서 일하면서 생산직 출장을 자주 다녔다. 홍성도 그 지역 중 하나다. 귀농을 하게 되면 이곳으로 와야겠다고 생각했다. 남편은 그 당시 실직 상태였다. 그런데도 같이 가려고 하지 않았다. 남편은 “시골은 돈 벌러 내려오는 곳이 아닌 것 같다”는 말을 했다. 그렇다. 시골은 돈 벌러 도시청년들, 귀농·귀촌의 꿈을 실현하다 | 취재=김옥선/사진=김경미 기자 | 2018-05-07 09:04 귀농, 마음 단단히 먹고 오십시오 귀농, 마음 단단히 먹고 오십시오 사람은 평생 몇 개의 직업을 가질까? 어떤 이는 평생 한 가지 직종에 종사하기도 할 것이고, 어떤 이는 매번 새로운 직업을 찾아다니기도 할 것이다. 물론 어떤 것이 맞다고 할 수는 없다. 분명한 것은 직업을 바꾸는 일이 쉽지만은 않다는 것이다. 그것도 한 번도 해보지 않은 육체를 써서 생산물을 얻어내는 농부라는 직업은 삶의 도전이다.홍동면 홍원리에 귀농한 박정완(52)씨는 귀농에 대한 개념을 다시 써야 한다고 말한다. “귀농은 말 그대로 돌아와 농사를 짓는다는 뜻이다. 그런데 귀농하는 사람들은 돌아갈 데가 없다. 아무도 없는 곳에 와서 농사를 짓는 것이니 그저 직업을 바꾼 것이다. 귀농한 사람들을 보고 전업농이라고 부르지는 않는다. 귀농한 사람은 그저 귀농인이다. 마치 딱지처럼 말이다.”지난 도시청년들, 귀농·귀촌의 꿈을 실현하다 | 취재=김옥선/사진=김경미 기자 | 2018-04-29 09:02 “우리 마토가 좀 수줍음을 타요~” “우리 마토가 좀 수줍음을 타요~” 인간은 살아가면서 약 세 번 정도 변화를 맞는다. 신체적으로 성숙해가면서 겪는 사춘기, 40대나 50대 즈음에 겪는 삶의 전환기, 그리고 노인이 되면서 느끼는 변화다. 물론 사람마다 조금씩 차이는 있다. 그러나 짧지만 긴 인생, 그런 변화도 없다면 무슨 재미로 살아가랴. 살아가면서 단 한 번의 실패도 경험하지 않았다. 대기업 직원으로 승승장구했고 남부럽지 않게 잘 살았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불어 닥친 외환위기를 피하기는 어려웠고 좀체 회복되지 않았다. 49살이 되던 해 스스로에게 파업을 선언했다. 나 자신에게 휴가를 주고 싶었다. 아내에게도 대놓고 말했다.“나 그대로 냅둬!” 원도 한도 없이 여행을 다녔다. 사람과의 관계에서 겪는 배신, 뒷통수, 거짓말들에서 더 이상 아파하지 말고 자연과 같이 할 수 도시청년들, 귀농·귀촌의 꿈을 실현하다 | 취재=김옥선 기자/사진=김경미 기자 | 2018-04-22 09:30 바다로 나가기 위한 긴 여정을 시작하다 바다로 나가기 위한 긴 여정을 시작하다 바다. 생각만 해도 낭만적이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생계를 이어가는 사람들에게 바다는 양식의 보고이자 삶의 터전이며 신령처럼 여기는 곳이다. 그런 바다에 삶의 도전장을 내고 어촌에 정착하는 사람들이 있다. 서부면 판교리 수룡동으로 귀어를 한 원종회(53)씨는 지난해 9월 이동식 목조주택을 짓고 정착했다. 서울에서 소프트웨어 개발 사업을 26년 동안 하던 원 씨는 처음에는 귀농을 생각했었다.“이쪽 일이 워낙 사람 관리가 힘들고 경험도 많아야 하고 신경 쓸 것도 많고 어느 날 하기가 싫더라. 처음 귀농도 생각해 봤는데 3년 이내 수확이 안 나면 힘들겠더라. 답이 안 나오더라. 내가 평소 낚시도 좋아하고 물도 좋아하니 귀어를 해보자는 생각을 했다.”처음에는 남해를 갔다. 귀어 상담을 하던 담당자는 도시청년들, 귀농·귀촌의 꿈을 실현하다 | 취재=김옥선 기자/사진=김경미 기자 | 2018-04-15 09:46 꼭 도시에서 생활할 필요가 있을까? 꼭 도시에서 생활할 필요가 있을까? 지하철이나 버스나 어디를 가도 늘 북적이는 도시다. 한적한 곳이라고는 눈 씻고 찾아볼 수가 없다. 아침이 되면 출근하고 저녁이 되면 퇴근을 해야 하는데 밤 10시가 넘어서 겨우 사무실을 나선다. 주말도 없다. 24살에 남들보다 일찍 취업을 했지만 전혀 즐겁고 보람되는 일이 아니다. 회사 일에 치여 조금씩 지쳐갈 무렵 여자 친구가 제안했다. 우리 도시를 떠나 시골에 가서 조용하고 한적하게 그리고 여유롭게 살아보자고. 희주는 나보다 두 살 어리지만 일찌감치 귀농을 생각하고 있었다. 이미 도시농부학교 6개월 과정도 교육받았다.학교를 졸업하고 취업을 했지만 앞이 보이지 않았다. 우리 부모님 세대는 열심히 일하면 돈도 모으고 집도 샀지만 우리 세대는 아무리 열심히 일한다고 해도 집은커녕 돈을 모아 무언가를 이 도시청년들, 귀농·귀촌의 꿈을 실현하다 | 취재=김옥선/사진·자료=김경미 기자 | 2018-04-08 09:59 농촌 살리는 귀농과 마을 만들기! 농촌 살리는 귀농과 마을 만들기! “교회에서는 목회를 하는 목사로, 마을에서는 이장으로, 귀농인들에게는 선배로 조언을 하는 역할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농촌을 살리기 위해 한 걸음 한 걸음을 걸어나가고 있네요.”올해로 귀농 14년차를 맞이하는 신동리 이장이자 신동리교회 담임목사인 오필승 목사의 말이다. 오 목사는 초대, 3대 홍성군귀농지원연구회장과 홍성군 귀농·귀촌지원센터장을 역임했으며 현재는 신동리교회에 설치된 예장 귀농귀촌 상담소를 운영 중이다.“목회활동을 잠깐 쉬는 중에 홍성으로 내려오게 됐고 교회 개척을 하게 됐습니다. 2005년 예배당을 짓고, 2006년부터 조그만 농사를 짓다보니 농사에 대해 더 자세히 알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다 우연한 기회로 충남농업기술원에서 귀농대학 1기 교육생을 모집하는 것을 알게 도시청년들, 귀농·귀촌의 꿈을 실현하다 | 글=장윤수 기자/사진=김경미 기자 | 2016-12-08 17:12 마음 문 활짝 열면 더 행복한 귀농! 마음 문 활짝 열면 더 행복한 귀농! “인천에서 개인 사업을 했었습니다. 그러던 중 과로로 한쪽 시력을 잃게 됐고, 이런 삶에 무슨 의미가 있나 하는 회의감이 들게 됐죠. 그래서 귀농을 결심하게 됐습니다.”장곡면에서 홍성 두리농장을 운영하고 있는 최익 대표의 말이다. 최 씨는 아내인 이정옥 씨와 함께 지난 2012년 귀농해 올해로 5년차를 맞이했다. 홍성, 충남과 아무런 연고가 없는 최 씨는 어떤 이유로 홍성으로의 귀농을 선택하게 됐을까?“학창시절부터 산악부 활동을 하며 산을 참 좋아했죠. 그러던 중 오서산 산행을 하다가 여기 쯤이면 살아가기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지금 저희 집 터에서 오서산을 바라보면 서울 북한산과 같이 능선이 길게 보이는데, 그 모습에 반해 정착을 하게 됐습니다.”최 씨는 귀농을 하고 논바닥 위에 도시청년들, 귀농·귀촌의 꿈을 실현하다 | 글=장윤수 기자/사진=김경미 기자 | 2016-12-01 17:19 힘차게 열어 가는 식용곤충의 미래 힘차게 열어 가는 식용곤충의 미래 35년간 교직생활을 하면서 곤충 연구를 지속해 온 귀농인 박승규 대표. 박 대표는 현재 자타가 공인한 식용곤충 전도사로서의 길을 걸어가고 있다. 충남도에서는 식용곤충과 관련한 강의 대부분을 박 대표가 맡고 있기 때문이다. 고향이 홍성인 박 대표는 보령과 대전 등지에서 주로 근무하다가 퇴직 후 봉사하는 마음으로 고향에 돌아와 이응노의 집 맞은편에 ‘내포곤충학교’의 문을 열었다. 현재 박 대표는 더 많은 이들을 대상으로 곤충 알리기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매주 전국에서 곤충에 대해 탐구하고 배우기 위해 학생부터 성인까지 다양한 이들이 찾아오고 있습니다. 또한 전국을 다니며 곤충 강의를 이어가고 있죠.”특히 박 대표는 관행적으로 곤충을 기르는 사람과 달리 각종 현미경 촬영부터 보고서 작성까지 확 도시청년들, 귀농·귀촌의 꿈을 실현하다 | 글=장윤수 기자/사진=김경미 기자 | 2016-11-24 17:03 날마다 발전하는 농업의 길 열고파 날마다 발전하는 농업의 길 열고파 “홍성에서 태어났지만 수원에서 25년을 살았죠. 재작년에 귀농해 부모님과 함께 딸기와 연근 농사를 짓고 있습니다.”은하면 금국리에 거주하는 귀농인 박효병 씨의 말이다. 박 씨는 연근과 딸기를 주 작물로 기르고 있다. 연근의 경우 무농약으로, 딸기는 화학비료를 사용하지 않고 클로렐라를 적극 활용해 기르고 있다.“클로렐라는 농업기술센터에서 기술교류를 통해 얻었고, 저희 농가에 보급을 받아 배양한 것을 겸용하고 있습니다.”클로렐라를 사용해 기른 딸기는 일반 딸기에 비해 병해충에 강하고 단단하며 맛이 좋은 것이 특징이다. 박 씨는 공업사 관리직으로 근무했는데, 수원에 거주하면서도 한 달에 두 번 이상은 내려와 부모님의 농사를 도와드리던 효자였다. “장남이다보니 연세가 있으신 부모님 일을 도와드 도시청년들, 귀농·귀촌의 꿈을 실현하다 | 글=장윤수 기자/사진=김경미 기자 | 2016-11-17 17:07 자연 속에서 새로운 꿈 펼친다 자연 속에서 새로운 꿈 펼친다 “서른이 될 무렵, 남이섬에서 1년간을 지냈습니다. 녹색가게 체험공방의 간사로 일을 했었죠. 그때 자연 안에서 지내는 것은 시끄러운 세상과 다른 매력이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됐습니다.”귀촌인 정수연 씨의 말이다. 서울에서만 지내던 정 씨는 출판사에 다니며 자연을 느낄 수 있는 지방의 일자리를 계속 알아봤고, 전북 익산의 미디어센터에서 일을 하게 됐다.“익산도 지방이니 자연일거라 생각했는데, 도시더라고요. 서울에서만 살다보니 전혀 몰랐죠. 익산 미디어센터에서 일하면서 지금의 남편인 길익균 씨를 만나게 됐습니다. 장항선 연애가 그때 시작됐죠.”정 씨는 지난 2011년 남편 길익균 씨와 함께 홍성으로 귀촌을 했다. 두 사람 모두 연고가 전혀 없었음에도, 농가주택을 빌릴 수 있는 홍성으로 향하 도시청년들, 귀농·귀촌의 꿈을 실현하다 | 글=장윤수 기자/사진=김경미 기자 | 2016-11-10 17:25 자연 속에서 소명과 사명 찾는다 자연 속에서 소명과 사명 찾는다 “제 고향은 충남 서천입니다. 서울에서 대기업에 다니다가 퇴직을 하며 더 의미 있는 삶이 무엇일까 고민하던 중 어린 시절부터 친숙했던 농촌으로 되돌아가기로 맘을 먹었죠.”한완수(70) 귀농인의 말이다. 한 씨는 어린 시절, 논과 밭이 많았던 서천에서 자란 농촌 토박이였다. 부모님을 도와 시골 일을 돕다 보니 농촌에서의 삶은 그리 멀게 느껴지지 않았다. 학교에서 일과를 마치고 돌아온 한 씨에게 어머니는 늘 아버지를 도와 농촌 일을 하게 시켰다. “일을 해 보는 것은 정말 중요합니다. 요즘은 농촌에 거주해도 자식들에게는 고생을 안 시키려는 부모들이 많은데, 땀을 직접 흘려본 이와 그렇지 않은 이의 삶은 크게 다르죠. 개인적으로 땀을 흘리며 농사일을 도와보는 것이 참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서울에서 도시청년들, 귀농·귀촌의 꿈을 실현하다 | 글=장윤수 기자/사진=김경미 기자 | 2016-11-07 10:12 “귀농은 일터 아닌 삶의 터전을 찾는 새 출발점” “귀농은 일터 아닌 삶의 터전을 찾는 새 출발점” “16년 전, 참 막연하게 귀농을 하게 됐습니다. 지인의 주선으로 논과 밭을 임대해 시작한 농사는 참담한 실패와 좌절을 맛보게 했고 빚만 가득 늘어났죠. 당시에 참으로 암담했던 심정은 이루 말할 수 없었습니다.”금마면 죽림리에 거주하는 홍성군딸기연구회 박관양 회장의 말이다. 박 회장은 첫 농사에 나름대로 최선을 다했지만 참담한 실패를 경험하게 됐고, 그럼에도 다시 시작하기 위해 수많은 노력을 기울였다.“일용직 노동자로 건축, 농업, 축산현장에서 막노동을 하면서 농업의 이론과 실체에 대한 공부를 시작했습니다. 다시 도전한 농업은 처음과는 또 다른 마음가짐이었습니다.”밤잠을 설치면서도 농사일에 대해 몰두하고 연구에 연구를 거듭하는 시간이 계속됐다. 이러한 과정이 계속되면서 박 회장은 단순히 도시청년들, 귀농·귀촌의 꿈을 실현하다 | 글=장윤수 기자/사진=김경미 기자 | 2016-10-27 17:38 은퇴는 끝? 새 삶의 출발점이죠! 은퇴는 끝? 새 삶의 출발점이죠! “서울에서 학교를 다니다 결혼을 하고 고향인 홍성으로 돌아오게 됐죠. 아내와 남산도서관에서 팔각정에 가며 한 이야기가 현실이 됐네요.”은퇴농장 김영철 대표의 말이다. 김 대표는 결혼 후 고향인 홍성으로 돌아와 광천읍에서 과수원을 운영하던 아버지를 모시며 지냈다. 이후 분가를 해 돼지를 3000두 가량 키우기도 했다. 그리고 1994년 무렵, 은퇴농장을 구상해 만들게 됐다.“평소 낚시를 좋아해 낚시터에 자주 가곤 했는데, 은퇴하신 분들을 자주 만날 수 있었습니다. 은퇴하신 분들은 평소 좋아하던 취미 활동에 몰두하는 경우가 많은데, 그것도 바쁘게 일을 하다 짬 내서 할 때 즐거운 것이지, 매일 하면 재밌지 않거든요. 그런 은퇴자들의 생각에 공감해 함께 모여살 수 있는 공간을 구상해 은퇴농장을 마련 도시청년들, 귀농·귀촌의 꿈을 실현하다 | 글=장윤수 기자/사진=김경미 기자 | 2016-10-20 18:28 건강하고 행복한 농촌에서의 삶! 건강하고 행복한 농촌에서의 삶! “지난 2012년에 내려와 올해로 귀농한지 5년차가 됐네요. 참 무모했던 것 같기도 하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현명한 결정이었던 것 같습니다.”금마면 봉암마을에 거주하는 복명순 씨의 말이다. 복 씨의 남편은 잘 나가던 직장인으로 자리를 잡고 있었지만, 어느 날 갑자기 회사를 그만두겠다고 말했다. 복 씨도 흔쾌히 ‘내가 한 번 벌어보겠다’며 남편의 말에 동의하며 친환경적인 삶을 시작했다.“남편이 회사를 그만두고 바로 농촌에 내려와 살고 싶었지만, 아직 중·고등학생이었던 아이들이 걸렸죠. 결국 아이들이 교복을 벗으면 가자고 생각한 뒤 홍성까지 오는데 7년이란 시간이 걸렸네요.”평소 아토피가 있던 복 씨는 도시 생활을 하면서 좋은 재료를 구입해 비누를 직접 만들기도 했지만, 그보다는 자연에 들어 도시청년들, 귀농·귀촌의 꿈을 실현하다 | 글=장윤수 기자/사진=김경미 기자 | 2016-10-13 18:02 정치? 시민으로서 당연한 권리·의무죠! 정치? 시민으로서 당연한 권리·의무죠! “저는 원래 서울에서 생활을 했습니다. 2004년 무렵 전부터 알고 있던 풀무학교 전공부에서 한국문학 전공 교사로 일해보지 않겠냐는 제안을 받게 됐죠. 일주일에 한 번 강의를 부탁받은건데, 당시에는 이주를 하라는 말로 들어서 고민을 많이 했습니다. 고민만 하고 왜 답을 안 주느냐는 말에 2004년 말에 홍성으로 내려오게 됐습니다.”강국주 귀촌인의 말이다. 강 씨는 2004년 말에 홍성에 내려와 2005년 1학기부터 풀무학교 전공부에서 한국문학 강의를 시작했다. 당시에는 서울에서 대학 강의도 진행하던 터라 완전히 자리를 잡지는 않았다.“사실은 귀농을 할 생각도 있었는데 겁도 나고 어려움도 많이 있겠더라고요. 그런데 강의를 하러 왔다 갔다 하는데 홍성이 참 좋아졌고, 갈수록 대학에서는 재미가 없고 도시청년들, 귀농·귀촌의 꿈을 실현하다 | 글=장윤수 기자/사진=김경미 기자 | 2016-10-10 10:15 처음처음이전이전123다음다음끝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