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혜롭고 즐겁게 사는 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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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혜롭고 즐겁게 사는 나라
  • 한학수 칼럼위원
  • 승인 2019.09.19 09:07
  •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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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속에 있는 것을 노래하고, 춤추며, 그림 그리는 것과 같이 다양한 방법이나 수단을 통해 밖으로 드러내는 것을 ‘문화’라고 부른다. 게다가 문화현상은 삶에 활력을 주거나 애틋한 정서를 담은 이야기는 시대를 넘나들며 면면히 전승한다. 홍길동은 조선 시대에만 영웅이 아니라 현대를 사는 사람에게도 영웅 같다. 춘향전은 여태껏 뭇사람에게 아름다운 사랑을 깨우친다. 오 헨리가 쓴 ‘마지막 잎새’에서 존시는 화가가 그린 담쟁이 잎사귀로 삶의 의욕을 되찾고 살아난다. 허구적인 이야기가 갖는 힘을 보여주고 있다. 허구는 진실의 눈빛보다 매서울 때가 있다.

교육의 궁극적인 목적은 변화에 있다. 실제로 교육하는 일의 핵심은 ‘스스로 변화하도록 도와주는 것’에 있는 셈이다.

“난 난 꿈이 있었죠 / 버려지고 찢겨 남루하여도 / 내 가슴 깊숙이 보물과 같이 간직했던 꿈” 가수 인순이가 불러 큰 반향을 불러일으킨 ‘거위의 꿈’의 일부다. 혹독한 현실 속에서도 꿋꿋이 살아가겠다는 각오를 잘 표현하고 있다. 이 노랫말은 힘겨운 현실 속에서 꿈을 이루기 위해 노력하는 많은 이들에게 감동을 선사했다. “유행이 자신이 아니라 다른 사람의 기대에 맞추어 사는 것이라면, 스타일은 분명히 자기 자신의 것이다”라고 한 작가 김영의 말이 뜻 깊다.

‘너무 기쁠 때는 자기보다 나은 사람을 보라’한다. 나보다 더 갖춘 사람과 비교하면 더 나은 길을 갈 수 있어서다. ‘괴롭고 우울할 때는 자기보다 못한 사람을 보라’한다. 나보다 어려운 상황에 있는 사람을 보면 나를 다시 볼 수 있어서다. 정통의 권위에 편승하는 것은 속이 편하고 안전한 일이다. 자기 신뢰 없이는 변화보다 현실의 익숙한 고통이 낫기 때문이다. 불필요한 노력과 불가능한 목표 앞에 멈추지 못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포기하면 안 될 때도, 멈춰야 할 때가 있는 법이다. 그 둘의 구별 짓기는 오롯이 자기 몫이다. 주체적으로 어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자신의 내부에 논리적으로 체계를 세울만한 울타리 심리가 있어야 한다. 애써 공부해야 자신만의 특별한 관점도 생길 테니 말이다.

“내실 없이 겉꾸미기에만 급급하다 보니, 먹어도 배부르지 않고, 작은 시련에도 쉽게 부서져서 자취도 없이 스러지고 만다”라고 정민은 ‘죽비소리’에서 일갈한다. ‘명분’과 ‘실리’가 완전히 일치하면 고민 없이 한 길로 올곧게 가면 된다. 하지만 현실에서 그런 경우는 극히 드물다. 한쪽을 선택하거나 타협해야 하는 경우가 다반사다. 무릇 글로벌 불황이니 미·중 무역 전쟁이니 하며 남 탓할 때가 아니다. 나라 밖에선 드센 태풍이 몰아치는데 나라 안에선 산업과 기업 경쟁력을 망가뜨리는 정책이 여전하다. 정치개혁이 우선일까, 사법개혁이 우선일까. 막무가내 공화국 결정권자 곁에는 혓바닥으로 그의 구두를 닦는 정치인만 득실댄다. ‘일자리 정부’라고 우리나라 전체 면적(10만 387㎢) 곳곳에 홍보하더니 되레 국민 한숨 소리가 부메랑이 되어 돌아온다. 정부는 국민이 훌쩍이고 기업이 울상인데 세금 걷어다 선거용 복지 포퓰리즘 정책으로 생색을 낸다.

언제부턴가 우리 사회는 무조건적 반대와 암묵적 동조, 뿌리 없는 선동 구호가 미래에 대한 우려스러운 목소리를 압도하고 있다. 나를 바꾸고 세상을 바꾸는 일은 누가 해야 하는가. “씨앗 뿌리는 이 사라지니, 앞으로 무엇을 거둘 것인가?”하며 시대를 통탄한 사람도 있다. 나라가 백척간두의 상황인데도 정쟁을 일삼고, 기업을 겁박하고, 세금을 선심성 사업에 허투루 써서야 되겠는가. 태평성대에도 위기의식은 꼭 필요하다. 편협한 시야의 독불장군과 같은 방식을 탈피해 국민의 눈높이를 지향하는 올곧은 정치라야 한다. 혼돈의 세상일수록 국가의 근본 토대인 법치와 민주를 더 확고히 해야 하는 것은 더할 나위 없다. 대통령 박정희가 조국(祖國)을 가난에서 구해낸 근대화의 지도자로 남았다면, 대통령 문재인의 조국(曺國)은 도대체 무엇일까. 위정자는 존재감이 가볍고 백성마저 무지하니 한반도는 점차 동북아시아의 핫바지가 돼간다.

한학수 <청운대 방송영화영상학과 교수·칼럼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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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9-09-25 23:26:52
글 맥락 좀 잘 읽어주시기 바랍니다.
글쓴이의 의도나 생각을 전혀 빗나갔네요.
마지막 단락만으로 비판 하셨는데 이해를 잘못하신것 같습니다.

한심하네요 2019-09-20 13:55:56
참 한심한 글이네요
박정희가 조국을 구해낸 근대화 지도자라는 생각을 하고 있다니
어느 나라에서 왔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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