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마강에는 낙화암 -20

한지윤의 청소년 역사교육소설

2019-12-11     한지윤

승패(勝敗)는 이미 결정이 난 싸움이나 다름없었고 온조와 비류의 군사는 몇 번 싸우는 척하다가 남쪽으로 남쪽으로 패주하기 시작했다.
유리는 반나절 싸움 끝에 군사를 거둬들였다.
패주하는 군사를 따를 필요가 없다고 여긴 까닭이었다.
이것이 이긴 자의 넓고 어진 너그러움 바로 그것이었다.

<온조가 백제를 세우다>
패망을 가장한 비류와 온조는 따르는 군사들을 데리고 남쪽으로 남쪽으로 내려왔다.
비류와 온조가 데리고 온 군사들 중에는 오간, 마려, 을음 등 열 사람의 신하들과 함께 고구려를 떠나 남쪽을 바라보며 정처 없는 길을 떠났던 것이다. 지금까지 두 왕자를 따르던 백성들도 그들의 뒤를 따랐다.
가시덤불을 헤치고 산 넘어 강 건너 남쪽으로 내려가던 비류와 온조 일행은 어느 덧 한산(漢山)이라는 곳에 이르렀다.
줄곧 산등성이를 타고 내려오던 그들이었던지라 한산에 이르니 앞이 좀 트이는 듯하였다. 지세는 의연히 험준하고 부아악(지금의 삼각산)이라는 산이 뭇 산을 누르고 우뚝 서 있었다.
“우리 저 산위에 올라가 사방을 살피도록 합시다.”
오간이 이렇게 말하자 여러 사람들이 다 좋다고 하기에 일행은 마침내 부아악 꼭대기에 올라가 보았다.
높은 산정에서 바라보니 북으로는 한수가 굽이쳐 흐르고 동으로는 높은 산이 가로 막혀있고 남으로는 허허벌판이 펼쳐져 있었으며 서쪽은 망망대해에 잇닿아 있었다.
“아주 좋은 고장이로군!”온조가 한동안 바라보다가 이렇게 말하자 거기까지 따라온 백성들이며 신하들 모두가 입을 모아 동조하였다.
“참으로 얻기 어려운 고장입니다.”
“이 고장에 도읍을 정하고 나라를 세울까 합니다.”

그러나 왕자 비류만은 어쩐지 말없이 못마땅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형님 보기에는 어떠하신지요 ”
온조가 이렇게 묻자 비류 왕자는 한숨을 내쉬며 작은 소리로 말하였다.
“너희들은 다 좋다고 하지만 내가 보기엔 틀렸다.
“아닙니다. 좋은 고장입니다. 곡식을 심기에도 좋고 적을 막기에도 좋은 이런 고장을 어디 가서 얻는단 말입니까 ”
“참으로 좋은 곳입니다. 여기서 발을 붙였다가 장차 나라를 세우면 반드시 융성할 것입니다.”
부하들은 한결같이 좋은 터전이라면서 여기서 우선 발을 붙이자고 하였다. 그러나 비류는 끝내 그 말을 듣지 않았다.
“이런 데서 살다간 기가 막혀 죽겠다. 얼마나 탐탐한 고장이냐! 그렇게 좋다면 너희들이나 여기서 살도록 하여라. 나는 더 좋은 곳을 찾아가야겠다.”
“아니, 형님! 왜 그러시는 거유  이 좋은 고장을 버리고 어디로 가신단 말이요?”
온조는 형의 팔을 붙잡고 눈물이 그렁하니 애원하였지만 매정한 비류는 온조의 손을 뿌리치더니 그의 부하들과 백성들을 이끌고 다시 남쪽을 향해 내려갔다.
“형님, 두루 돌아보시고 더 좋은 고장이 없으면 다시 이리로 오십시오.”
온조는 형의 거동에 매우 섭섭했으나 기어코 간다는 데는 그로서도 별수가 없었다. 특히 형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몰라 굳이 말릴 수도 없었다.
비류가 다시 남으로 내려간 다음. 온조는 부하들과 백성들을 지휘하여 집을 짓는다, 농토를 일군다 하며 새 터전을 닦기에 바빴다.
그러던 어느 날 이었다. 말을 탄 무사 수십명이 먼지를 뽀얗게 일구면서 남쪽으로부터 급히 달려왔다. 온조와 신하들은 깜작 놀랐다.
“그대들은 어디서 온 사람들인데 왜 남의 나라 땅을 침범하였는가?”

황금갑옷을 떨쳐입고 앞에서 달려오던 우두머리인 듯한 사람이 말에 앉은 채 눈을 치뜨고 물었다. 마려가 온조 왕자와 눈길을 마주치더니 앞으로 나서면서 허리를 약간 굽혔다.
“외뢰오, 우리들은 북쪽나라 고구려에서 살기 구차하여 남쪽으로 내려온 사람들이요. 그런데 어르신님은 누구이신지요?”
“나로 말하면 마한 왕이고 이 땅은 바로 마한의 땅이라 그대들은 두 말 말고 당장 물러갈지어다. 그렇지 않으면 재미가 없을 것이니 그리 알거라.”
그 때 조선반도 남쪽에는 마한(馬韓), 진한(辰韓), 변한(弁韓)이라는 3한이 있었는데, 온조 일행이 들어선 땅은 바로 마한 땅 이었다.  <다음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