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마강에는 낙화암 -22

한지윤의 청소년 역사교육소설

2019-12-25     한지윤

‘이제 내가 설 자리는 어딘가? 아우를 볼 낯도 없고 부하들과 백성들을 볼 면목도 없다.’
밤늦게까지 이런 생각을 하면서 잠을 이루지 못하던 비류는 온조가 깊이 잠든 틈을 타서 자취 없이 밖으로 나갔다.
이튿날 아침, 형이 없어진 것을 안 온조는 깜짝 놀랐다.
“형님이 어디 갔소?”
“비류 왕자께서 어디 가셨나?”
온조와 부하들이 법석대면서 아무리 찾아보아도 비류는 온데간데 없었다.
“혹시 내가 대접을 잘못했다고 노여워서 미추홀로 가셨을까?”
온조는 적이 안달이 났다.
“아니요, 왕자께서는 미추홀로 가신 것이 아니요.”
부하 울음이 짚이는 데가 있는 듯 말하였다.
“그럼 어디로 가셨겠소?”
“저 부아악 꼭대기에 찬 기운이 서려 있는 것을 보니 아마 저기 올라가신 것 같소.”
“그럼 어서 가봅시다.”
온조는 부하들을 이끌고 부랴부랴 부아악 꼭대기로 올라갔다.
아니나 다를까, 전날 여러 사람들이 올라와서 사방을 살펴보던 그 자리 너럭바위 곁에 조용히 기대앉아 있는 사람이 있었다. 비류 왕자가 틀림없었다.
“형님, 웬 일이시오?”
온조가 달려가 보니 놀랍게도 그는 이미 가슴에 칼을 박고 저 세상 사람이 된지 오래였다.
“형님, 이게 웬 일이요  형제간에 무슨 말씀인들 못하겠다고 이런 길을 택하셨소?”
온조는 그제야 모든 것을 깨닫고 가슴을 치며 통곡하였다.

온조는 형의 시체를 거두어 후히 장사를 지내고 미추홀에 남아있는 그의 부하들과 백성들도 모두 한산에 불러왔다.
두 곳의 부하들과 백성들이 한 고장에 모이게 되니 한산은 흥성흥성하고 얼마 안가서 집들도 많이 늘어나고 농토도 갑절이나 늘어나게 되었다.
“이만하면 나라를 세울 때가 되었나 보오.”
오간, 마려, 을음등 부하들은 입을 모아 온조를 조르기 시작하였다.
온조는 그들의 말을 가상케 여기고 마침내 하남 위례성에 도읍을 정하고 나라를 세워 열 사람의 신하로서 보좌케 한다 하여 국호를 십제라 하였으니, 기원전 18년의 일이었다. 그 후 얼마 안가서 전날 이끌고 온 백성들이 다 즐겁게 따른다는 의미로 다시 국호를 백제(百濟)라고 하였다.
그러니까 지금으로부터 2천 년쯤 전인 기원전 18년, 하남 위례성에 도읍을 정하고 열 사람의 신하와 많은 백성들과 더불어 나라를 세우고 백제(百濟)라 일컬었을 때, 한 나라의 우두머리가 되고, 더구나 새로 나라의 기틀을 잡아간다는 것이 얼마나 벅찬 일인가를 온조는 날이 감에 따라 절감하게 되었다.
우선 한 나라의 기틀을 잡는 웅대한 기략(機略)이 자기 혼자의 힘으로는 너무나 빈약하다는 것이 느껴졌다. 슬기로운 인재(人材)의 올바른 조언(助言)이 목마르게 아쉬웠다.
다음에는 그 기략을 과감하게 실천에 옮길 과단성과 행동력이 자기에게는 너무나 결핍되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야 온후하고 너그럽고 다정한 자기 인품을 많은 사람이 좋아하고 따른다는 것을 그는 잘 알고 있었지만, 많은 사람을 거느리자면, 때로는 눈물과 인정을 버려야 했다. 사사롭게 볼 때엔 가혹하다고 할 만한 일을 시켜야 할 경우도 있고, 죄를 지은 자에겐 가차 없는 벌을 내려 법도를 세워야 하기도 했다.

그런데 어질기만 한 온조로서는 그것이 너무나 어려운 일이었다.
온조왕 2년, 나라의 일을 맡은 우보 을음은 우선 이런 제안을 했다.
“우리 땅 북쪽에 자리 잡은 말갈은 몹시 사나운데다가 잔꾀가 많소이다. 그들의 동태를 보건대 머지않아 우리 땅을 침범해 올것이 분명한 일이외다. 그러니 우리 쪽에서도 군사를 정비하고 먹을 것을 저장해서, 언제 그들이 침입해도 당해낼 힘을 길러야 할 줄로 아오.”
이것이 바로 그가 백성의 원망을 듣게 된 첫 번째 일이었다. 그리고 그는 그것을 이미 각오하고 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그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열 사람의 중신을 비롯한 여러 신하들이 일제히 반대했다.
“안 될 말이오.”
“나라를 다스리는 사람은 먼저 그 백성들을 생각해야 하지 않겠소?”  <다음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