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마강에는 낙화암 -24

한지윤의 청소년 역사교육소설

2020-01-08     한지윤

모두 이런 식이었다.
적을 격파하고 왕성으로 개선해 보니 궁궐 후원에는 초겨울에 접어드는 10월 달인데 도화가 만발해 있었다.
그것은 마치 군공(軍功)을 세우고, 돌아온 을음을 한낱 초목까지도 반겨 맞아 주는 듯싶었다.
온조왕은 도화 만발한 후원에 술자리를 마련하고 을음의 공훈을 치사했다.
그러나 어디까지나 을음을 싫어하는 신하들은 이 10월 달에 도화가 만발한 것까지 트집이었다.
“초겨울에 도화가 만발하다니! 이 어쩐 흉조란 말인가?”
“이게 다 백성을 괴롭힌다고 하늘이 노하신 것이지 뭔가.”
“젠장 잔치는커녕 제단을 모아 하늘에 사과해야 옳을 것을…….”
신하들의 투덜거리는 소리는 왕과 술자리에 마주앉은 을음의 귀에까지 들려왔다.
그러나 을음은 어디까지나 태연했다. 기꺼이 술잔을 기울이며 콧노래까지 부르고 있었다.
그 이듬해인 온조왕 4년에 접어들자, 어쩐 까닭인지 비가 내리지 않았다. 씨를 뿌릴 때가 되어도 바싹 메마른 밭에는 먼지만 포삭포삭 했다.
“정말 하늘이 이 나라를 벌하시는 거야.”
백성들은 구름 한 점 없이 쨍쨍한 하늘을 보며 탄식했다.
“글쎄 하느님도 딱하시지. 벌을 하시려거든 모든 죄가 을음에게 있으니 을음 한 사람만 벌하실 일이지, 모든 백성들을 다 괴롭힐 게 뭐람.”

이렇게 짜증을 내는 백성도 있었다.
비는 좀처럼 내리지 않았다. 3, 4월 봄도 지나고 5, 6월 여름에 접어들어도 비 한 방울 볼 수가 없었다.
농사는 고사하고 잡초나 수목까지도 모조리 시들어 버렸다.
냇물과 우물은 말라붙어 백성들은 식수에도 곤란을 겪을 지경이었다.
굶주림과 목마름으로 죽어가는 사람들이 집집마다 하나 둘씩 생겼으며, 산이란 산, 들이란 들은 나무뿌리와 풀뿌리를 캐려는 사람들로 새하얗게 뒤덮혔다. 게다가 가뭄에서 오는 여러 가지 병까지 유행되었다.
거리마다 골목마다 시체 썩는 냄새가 코를 찔렀고, 굶주림과 병으로 시달릴 대로 시달린 백성들은 마침내 사나운 이리떼처럼 되었다.
“국고(國庫)를 풀어라!”
“군량으로 삼는다고 우리에게서 걷어간 곡식들이 많지 않느냐!”
“우리 곡식을 우리에게 돌려다오!”
눈이 뒤집힌 백성들은 궁궐로 모여들었다.
손에는 몽둥이며 농기구며 심지어는 돌멩이까지 들고 모여 들었다.
그 중에는 장정들은 말할 것도 없고, 노인이며 부녀자들까지 섞여 있었다.
이 기별을 받은 온조왕은 을음을 돌아보며 의논한다.
“국고를 풀어서라도 굶주린 백성을 구해야 하지 않겠소.”
온조의 어질디 어진 눈가에는 수심이 가득했다.
그러나 을음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건 안됩니다. 백성들이 다 들고 일어나도 국고를 풀면 큰일입니다.”
을음의 대답은 천만 뜻밖이었다. 예로부터 백성이 굶주렸을 때 국고를 풀어 구제한다는 것은 당연한 일로 보아왔던 것이다.

“아니, 안 되다니?”
“생각해 보십시오. 지난 해 말갈이 우리 땅을 침범했을 때, 비록 크게 패했다고는 합니다만 그 국력이 아주 기울어진 것은 아닙니다. 그들은 필경 재침의 기회를 노리고 병력을 기르기에 여념이 없을 겁니다. 그런데 우리나라에 흉년이 들었다는 소식을 그 자들이 들어보십시오. 그 자들이 생각하기엔 우리가 반드시 국고를 풀어 백성들을 구제했기 때문에 국고가 텅 빈 것으로 생각하고 그 자들이 재침해 온다면 우리는 무슨 힘으로 막겠습니까.”
사리에 맞는 을음의 말에 온조왕은 더 뭐라고 할 말이 없었다.
“알았소. 만사를 그대에게 맡길 테니 잘 처리하시오.”
을음은 곧 군졸들을 불러 모았다.
“너희들은 어떠한 일이 있더라도 국고를 단단히 지켜라. 그리고 국고를 침범하는 자가 있거든 용서 없이 처치해라.”
그러자 한 부장이 심히 난처한 낯으로
“우보어른의 말씀이기는 합니다만, 어떻게 병들고 굶주린 백성들을 벌할 수 있겠습니까?”
그 말이 떨어지기도 전에 을음은 그 무서운 두 눈알을 부라리며 호통을 쳤다 

<다음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