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자리로 돌아가는 길가에서

2020-03-26     선상화 청소년동반자

상담을 하다보면 여러 가지 사연을 가진 아이들을 만나게 된다. 그중에서 오랫동안 가슴이 먹먹했던 친구가 생각이 난다. 센터에서 의뢰받은 원고를 작성하다가 오랜만에 그 친구에게 전화를 했고 그 친구는 자신의 사연을 직접 적어 내게 보내기로 했다. 내용이 다시금 가슴에 밀려왔다. 아이는 자신의 이야기를 또박또박 적고 있었다.

갑자기 엄마가 돌아가셨다. 감당할 수 없는 많은 일들이 나를 더 힘들게 했고 엄마 죽음과 관련한 자책 속에서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았다. 엄마 장례식 후 서울에서 혼자 학교를 다니며 아무일 없던 것처럼 일상생활을 하는 건 나를 더 지치게 했다. 틈만 나면 엄마 생각이 났었고, 내 자신을 자책하며 점점 그냥 혼자 우는 시간이 많아졌다. 그렇게 하루하루를 겨우겨우 버티는 마음으로 학교를 다니다가 휴학을 하고 본가로 돌아왔으나 상황은 비슷했다. 아빠가 출근하시고 동생은 공부하러 나가면 나 혼자 집에서 엄마와 찍은 사진이나 주고받은 문자를 읽고 울었다가 좀 괜찮아지거나 아님 계속 누워있거나 그렇게 무기력한 생활을 반복하는 날 보며, 어느 날 아빠가 내게 상담을 권하셨고 그렇게 홍성군청소년상담복지센터에서 상담을 받기 시작했다.

처음 선생님을 뵀던 날, 2시간 동안 나는 나에게 있었던 일을 말하면서 정말 많이 울었다. 그렇게 울고 난 내게 지금까지 버티느라 힘들었겠다. 고생했다.’라는 말과 내가 잘못한 것이 아니라는 말을 들었다. 들은 순간 또 눈물이 났다. 그런 얘기를 듣고 싶었나 보다. 내가 힘든 것을 이해해주시고 공감해주셔서 그냥 감사했다.

그 후로 일주일에 한 번씩 상담을 받게 되었고 초반에는 상담을 받으며 약간 의심이 들기도 했다.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의 입장이 되어 생각해보는 과정은 받아들이기 쉽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괜히 집중이 안 되는 것 같았고, 과연 이것이 나에게 효과가 있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그런데 그 과정들 속에서 조금씩 마음이 가벼워짐을 느꼈고, 이제는 그 과정들을 더 잘 받아들일 수 있었다. 그러다보니 무슨 힘든 일이 생기면 선생님을 만나는 날을 기다리게 되었다.

그렇게 상담을 시작 하면서 집에만 있던 나는 조금씩 밖에 나가게 되었다. 점차 밝아지는 내 모습이 마음도 들었다. 그러던 중에 선생님께서 나에게 혼자 여행가기라는 숙제를 내주셨다. 여행 장소로 엄마와 같이 와봤던 만리포 바다를 혼자 보면서 많이 울었다. 엄마에 대한 미안함과 죄책감, 원망, 그리고 그리움 등 여러 감정이 스쳐갔다. 엄마 생각 때문에 너무 울 것 같아서 가고 싶지 않았던 곳을 갔고 직접 마주하며 감정을 토해내니 생각보다 후련했다. 울면서 강해져야겠다는 생각도 했던 것 같고 이겨낼 수 있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엄마에게 나 잘 살다 갈게 걱정하지 말라고 마음을 다잡을 수 있던 좋은 여행이었다.

상담을 받기 전에는 떠올리기 힘든 과거를 기억하고 말해야 하는 과정 때문에 겁이 났었다. 하지만 상담 중에 선생님이 나의 이야기를 들어주시고 공감해주시는 것만으로도 좋았다. 상담을 통해 다른 관점에서 나와 주변사람을 바라보게 되었고 내가 생각해보지 못한 얘기를 듣는 상담과정은 내게 오히려 힘을 줬으며, 무엇보다도 내 상황을 잘 알고 이해해주시는 선생님이 존재한다는 것 자체가 힘이 되고 왠지 모르게 든든한 느낌이 든다. 그렇게 선생님과 나 자신을 믿고 상담을 따라가니 점점 좋아지는 나를 볼 수 있었고 내면적으로 조금은 성장한 느낌을 받았다.

내가 지나온 길을 되돌아보면 휴학 후, 홍성군청소년상담복지센터에서 상담을 꾸준히 받은 것이 정말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제 상담은 끝났고, 다시 서울에 있는 학교로 다시 복학하면서 잘 할 수 있을까?’라는 두려움과 걱정이 앞서지만 선생님과 함께했던 3개월의 시간 속에서 얻은 내용은 내가 힘들 때 마다 다시 떠오를 것 같다.
오늘도 나는 따스한 햇살을 가르며 마음이 아픈 아이들을 만나러 간다.

 

선상화<청소년동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