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마강에는 낙화암 -71

2020-12-23     한지윤

계백은 부인과 자식들을 몸 가까이 불러 앉히고 땅이 꺼지게 한숨을 지었다.
“지금 당나라의 13만 대군과 신라의 5만 대군이 기벌포와 탄현을 지나 물밀 듯 쳐들어오고 있소. 백제 사직이 위태하게 되었소.”
장군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다시 말을 이었다.
“나는 내일 왕명을 받들고 황산벌로 신라군을 치러가오. 이번 싸움은 백제의 운명을 건 싸움이요. 어찌하면 백제로서는 마지막 큰 싸움일 수도 있소. 5천의 적은 군사로 5만명 대군을 막는다는 것은 말도 안되오. 그러니 나는 살아서 돌아오리라고 생각지 않소. 나라와 운명을 같이하여 싸움터에서 깨끗이 죽을 뿐이요.”
“장군, 왜 그렇게 불길한 말씀을 하세요? 혹시 하늘이 도울지 알아요?”
“아니요, 대세는 기울어진지 이미 오래오. 그런데 부인은…”
계백 장군은 말끝을 흐리고 눈을 딱 감았다.
“그런데 뭐예요? 어서 말씀해보세요.”
계백 장군은 무서운 고통을 속으로 새기며 떨리는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그런데 부인은 구차히 살아서 남의 종으로 되겠소, 아니면 깨끗이 죽어서 백제의 귀신이 되겠소? 그리고 얘들아, 너희들 생각은 어떠냐?”
부인은 장군의 말뜻을 금방 알아차리고 선뜻 대답하였다.
“구차히 살아서 남의 종이 되느니 깨끗이 죽어서 백제의 귀신이 되고 싶어요.”
어머니가 이렇게 말하자 자식들도 따라서 한결같이 대답하였다.
“우리들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깨끗이 죽어 백제의 귀신이 되겠습니다.”
“장하오, 부인! 장하다, 얘들아! 그러면 모두 물러가거라!”
계백 장군은 집식구들을 물리치고 긴긴밤을 뜬 눈으로 새우며 이제 닥쳐올 싸움을 그려보았다.

이른 아침, 갑옷을 입고 투구를 쓴 계백 장군은 시퍼런 장검을 뽑아들고 내실로 들어갔다. 부인도 밤늦게 잠이 들었는지 가볍게 코를 골고 있었다.
‘부인, 한 발자국 먼저 가시오!’
계백 장군은 칼을 높이 쳐들었다가 부인의 목을 쳤다. 그리고 자식들 방에 들어가서 차례로 그들의 목을 쳤다. 계백은 피 묻은 칼을 집에 꽂고 뒤도 돌아보지 않고 성큼성큼 집을 나섰다.
계백 장군은 곧 군사들을 휘몰아 황산벌로 질주하였다. 계백 장군은 말 위에 높이 앉아 선두에서 달리고 있었다.
계백 장군이 이번의 결사전을 위하여 가족을 모조리 죽였다는 소문은 어느덧 전군에 쫙 퍼지게 되었다. 모든 장수들과 군졸들은 계백 장군의 애국심에 감동하여 눈물을 흘리면서 목숨 바쳐 싸울 것을 두 번 세 번 굳게 맹세하였다.
어느덧 황산벌에 이르렀다. 계백 장군은 황산벌이 내려다보이는 험준한 산기슭에 진을 치고 신라군과 대치하였다.
‘아, 나에게 2만명의 군사만 있다면……’
계백 장군은 속으로 이런 생각을 하면서 말없이 신라군 진지를 살펴보았다. 황산벌에는 신라 대군이 새까맣게 덮여 있었고 깃발은 하늘을 덮을 듯하였다.
마침내 싸움은 시작되었다. 신라군은 백제 군사들이 적은 것을 얕보고 만여명의 군사를 풀어 돌격해왔다. 함성은 천치를 진동하였으며, 먼지는 뽀얗게 일어 황산벌을 뒤덮었다.
“신라의 하잘 것 없는 것들이 당나라를 등에 업고 분별없이 날뛰고 있으니 저놈들의 콧대를 꺾어 놓아야 한다. 죽기를 두려워하지 않는 자는 나를 따르라.”

계백 장군은 칼등을 말에 채를 얹더니 선두에 달려나가 적군을 풀 베듯 하였다. 그 뒤로 백제 군사들이 노도처럼 쓸어나가 적군을 무찔렀다. 신라군도 악에 받쳐 죽기 살기로 싸웠으나 죽음을 각오하고 싸우는 백제 군사들의 서슬을 당해낼 수 없었다. 이리하여 백제군은 신라군의 첫 번째 공격을 보기 좋게 꺾어버렸다.
악에 받친 신라군은 두 번, 세 번, 네 번, 하루 동안에 연속 네 번이나 맹공격을 퍼부었다. 그러나 백제군의 결사적인 반항으로 번번이 실패하고 말았다.
백전노장 김유신 장군도 그만 초조해지지 않을 수 없었다.
“적군은 비록 5천에 불과하다 하지만 죽기를 각오하고 싸우니 그 서슬을 당하기 어렵소. 무슨 방책으로든지 우리 군사들의 사기를 높여야겠소.”
김유신 장군은 수하 장수들을 모아 놓고 긴급대책을 강구하였다.
김유신 장군의 아우인 김흠순 장군은 형의 뜻을 금방 헤아리고 아들 반굴(盤屈)을 장막에 불러들였다. 열 대여섯 살 되어보이는 어린 소년이었다.
“얘, 반굴아! 너는 신라의 화랑(花郞)이 옳으냐?”
“그렇소이다.”
“너에게 화랑의 정신이 있으냐?”
“네, 분부만 기다립니다.”
반굴은 신라의 화랑답게 떳떳이 대답하였다. 이른바 화랑이란 것은 신라에서 귀족 출신의 청소년들을 양성하는 제도로서 화랑단의 우두머리를 화랑이라 하였으며, 그에 망라된 청소년들을 낭도(郎徒)라 불렀다. 어려서부터 정치군사적으로 엄격한 훈련을 받은 그들은 언제나 싸움에서 앞장에 서곤 하였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