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당의 국고지원금 대대적 수술이 필요하다

2012-05-24     전만수 본지 자문위원장

지난 4월 11일 19대 총선이 치러졌다. ‘정치는 내일을 모른다’는 명제에 걸맞게 각 정당마다 총선결과에 대한 희비가 엇갈렸다. 당락(當落)과 득표율에 따라서 유력 정치인들의 정치적 파워 블록도 급격하게 재편되는 양상이다. 특히 12월로 예정되어 있는 대통령 선거 변수가 정치 지형 변화를 재촉한다. 이미 대선 경쟁은 시작되었다. 게임으로만 본다면 이보다 더 재미있고 흥미진진한 게임이 있을까마는 여야의 입장에서 보면 양보할 수 없는 벽적대전이고 당사자인 후보자 개인사적으로 보면 물러설 수 없는 사생결단의 한판이다.

선거는 민주주의 정치체제를 유지하는 기본 요소이다. 그리고 선거에는 많은 비용이 수반된다. 선거에 소요되는 비용은 비경제적인 측면이 많다. 그러나 민주주의 유지비용으로 기꺼이 지불되는 사회적 비용이다. 그래서 선거는 유권자의 축제이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많은 세금이 수반되는 선거에 주인공인 유권자는 흥미를 느끼지 못한다. 재미는커녕 불편하다. 객으로 전락된 지 오래다. 선거법의 사생활 감시로 마음대로 동창회도 친목계도 참석하기가 껄끄럽다. 선의로 밥 한 그릇 사기도 얻어먹기도 불안하다. 선거가 ‘소득재분배’ 기능을 한다는 것은 언감생심이다. 주인공인 유권자는 선거라는 괴물이 총체적으로 불편한 과정일 뿐이다.

차선을 최선으로 선택이 강요되는 고역이야 기꺼이 견딘다 해도 어이없는 것은 선거비용의 대부분을 유권자가 지불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내가 감당한 세금으로 그들(정치인)은 장구치고 춤추며 자기들만의 장터를 연다. 주객이 바뀐 현실을 직시하고 반박하기엔 아직은 그들의 레토릭을 대적하기가 역부족이다. 그러나 주객이 바뀐 것은 사실이다.

중앙선관위는 지난 2월 15일 2012년 1분기 정당의 국고보조금 85억 9800여만원을 각 정당에 지급하였다. 새누리당 39억3961만원, 민주통합당 31억2400만원, 자유선진당 6억2004만원, 통합진보당 5억4603만원, 창조한국당 2억1853만원, 진보신당 1억7197만원 순이다. 분기마다 지급하니 년간 340억원 정도가 지급된다.

2012년 기준으로 유권자 1인당 910원이 예산에 계상되었다. 선거가 있는 해는 선거마다 동일한 액수가 추가로 지급된다. 340억원규모의 4·11총선 지원금도 이미 지급되었다. 금년은 총선과 대선이 치러지니 국고의 정당보조는 총 1020억원 규모에 달한다. 게다가 추가로 총선에서의 여성후보자 추천에 따른 인센티브지원 몫이 별도로 있다. 금년 예산에 유권자 1인당 100원이 계상되었다. 어디 그것뿐인가? 총선 출마자의 득표율에 따른 선거비용에 대한 국고지원이 그것이다. 선거 출마자가 유효득표의 15%이상 득표했을 경우는 선거비용의 100%를, 유효득표의 10%이상을 얻은 후보는 50%를 보전 받는다. 지난 4·11총선 입후보자에게 지급될 보전총액 예산은 990억원이다. 유효표의 15%이상 득표만 하면 결국은 본인 비용을 전혀 들이지 않고 선거를 치르는 셈이다. 중앙당은 선거마다 거액의 국고를 지원받아 선거비 명목으로 상당부분 정당의 운영비를 대체한다. 선거비용을 포함한 정치비용의 대부분이 국민세금으로 지불되고 있는 구조다. ‘정치하면 집안이 망한다’는 말은 고전이 되었다. 지난 17대 대선에 후보자에게 지급된 보전비용은 860억 규모였다. 총선, 대선 선거비용보전을 포함한 2012년 정치자금 국고 지원규모는 대략 3000억에 달한다. 대형 국책 프로젝트를 수행할 수 있는 규모다. 게다가 선관위에 기탁된 정치자금은 보너스 같이 정당에 배분된다. 정당입장에서 보면 꿩 먹고 알 먹기 구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거비용의 대부분은 일반국민과는 무관한 곳으로 흘러간다. 선거비용 중 선거종사원에 지급되는 인건비와 사무실 임대료를 제외하면 대부분이 홍보비로 지출된다. 홍보비는 인쇄물과 방송 내지 신문 광고료가 대부분이다. 일반 국민에게 흘러가는 금액은 미미하다. 대통령선거에는 그런 쏠림이 더욱 심하다. 선거의 주인공인 유권자는 선거판의 졸(卒)일 뿐이다. 우리사회의 보이지 않는 권력인 방송과 언론 그리고 정당에 관련된 기획사가 독식하고 있다. 이번 통합진보당 사태과정의 파편으로 알려진 바에 따르면 이석기 비례대표 당선자가 운영하는 회사가 그동안의 선거에서 기획인쇄물을 독식하여 자금을 만들었다고 한다. 2002년 정당의 국고지원이 시작된 이래 대부분의 선거비용이 ‘보이지 않는 손’이 좌우지하는 구조로 변모되었다. 매체와 소통의 기능 발달로 인한 선거 환경이 만든 필연의 결과일 수도 있으나 ‘보이지 않는 손’의 작동에 의한 결과 또한 무시할 수 없다.

정당의 국고 지원은 여러모로 정당하다. 이미 민주주의를 채택하고 있는 많은 나라에서 채택되고 있는 제도이다. 그러나 우리의 현행 제도가 합리적인지 따져 볼 시점이다. 국고 지원은 결국 내 호주머니 돈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1%와 99%’로 설명되는 양극화를 조장하는 자금의 역행 흐름(flow)이 현실이기 때문이다. 거대 언론재벌과 방송사 그리고 정치권력을 좌우지하는 곳으로 대부분의 선거비용이 흘러간다는 것은 결코 건강한 자본주의는 아니다.

예나 지금이나 돈은 정치의 필요조건이다. 비합리적인 정치자금에 의존되는 정치는 부패하기 쉽다. 그래서 깨끗한 정치문화를 만들자는 취지에서 도입된 제도이다. 그러나 그동안 지급되는 지원금의 규모가 많은지 적은지, 또 합리적으로 배분되고 있는지 따져 보지도 않았다. 그저 쉬쉬했다. 국회의원들은 결코 공론화되는 걸 원치 않기 때문이다. 지급된 지원금이 적절하게 지출되고 있는지 철저한 회계 검증도 필요하다. 그리고 통상적 정당운영을 위해 지급되는 국고보조금의 자동적 상승 시스템이 과연 정당한가? 특히 지방선거, 총선 그리고 대통령선거에 따른 선거의 종류와 관계없이 선거가 있는 당해 연도는 선거마다 통상년도에 지급되는 규모로 선거비용 명목으로 지급되는 것이 지나친 단순화는 아닌가? 그리고 소수의 선택도 존중한다는 취지로 지원근거를 두어 군소정당의 난립을 방조 내지 조장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실제로 지난 4·11 총선에 등록된 정당 수가 20여개에 달하였다. 국고 지원에 대한 대대적인 수술이 필요하다. 고양이 앞에 생선을 바친 격이나 국회 스스로 자정의 수술을 해야 한다. 직접지원 외에도 국회를 통한 정당의 간접적 국고지원은 많다. 정치를 하면서 국민의 대표 기관으로서 온갖 특혜와 명예를 누리면서도 오히려 개인의 재산을 증식하는 수단이 되는 구조라면 이율배반이고 그 자체가 부패다.

2002년 정당의 국고지원이 시작된 이래 진보정당에 지원된 국고지원의 총규모는 300억원에 이른다. 국가 정체성을 인정하지도 않으면서 애국가를 부르지도 않고 국민은 아랑곳하지 않는 그런 정당을 국민의 세금으로 유지시켜서는 결코 안 된다. 국고를 주인 없는 눈먼 돈처럼 입막음을 위해 나눠먹기식 배분원칙을 정한 정치권 전체의 미필적 고의의 산물이다. 정치가 표방하는 바처럼 정의 구현을 위해서라면 반드시 정치자금의 정당성이 우선 확보되어야 한다. 무엇보다도 제19대 국회의 우선 과제로 정치자금법상 국고지원 조항의 합리적 대 개정을 촉구한다. 결자해지의 단호한 각오가 필요하다. 국회의원 스스로 그런 자정의 노력을 펼칠 때 정치는 국민들로부터 박수를 받는 정의의 보루가 될 것이다.


<홍주일보·홍주신문 칼럼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