멕시코 태권도의 대사부, ‘홍성사람 문대원 관장’
홍성 태권도의 산실 제일체육관, ‘무덕관’의 정신 잇고 있다
홍성고 시절, 송병의·이강범·이종세·이영태 등 함께 운동했다
2012-06-28 서울 / 한지윤 기자
홍성 태권도의 역사는 1950년대로 거슬러 올라가 ‘무덕관’으로부터 시작된다. 지금은 작고한 초대 서울시태권도협회 전무이사를 지낸 전용하 무덕관 관장의 지도를 받은 제자들이 충남서부지역을 시작으로 충남지역은 물론이고 국내외까지 진출하면서 그 정신과 전통을 이어가고 있다. 명맥을 잇고 있는 대표적인 도장이 홍성 태권도 역사의 산실이며, 무덕관의 전통을 잇고 있는 홍성교육청 인가 제1호인 현재의 제일태권도장(관장 표승범)이다. 제일태권도장은 고인이 된 이명교 관장이 1969년경 홍성읍 대교리 논바닥에서 시작해 2~3대를 거쳤고, 지금은 제4대 표승범 관장이 홍남초등학교 근처로 옮겨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 홍성 태권도의 원조인 ‘무덕관’과 고 전용하 관장의 수제자 중에는 멕시코에서 태권도를 가르치는 ‘문대원’ 관장을 빼놓을 수 없다. 문 관장은 1957년 홍성고 1학년(홍성고 15회) 때부터 경희대 정외과 2학년에 재학 중 미국으로 유학을 갈 때까지 태권도뿐만 아니라 학업성적도 우수해 문무를 겸비한 노력파였다고 한다. 그 당시 문대원 관장과 함께 운동을 했던 초대 홍성군태권도협회 회장을 지낸 송병의(홍성고 15회) 금강원조경 대표를 비롯해 홍성고 15회인 이강범, 이종세(미국 거주), 1년 후배인 이영태 홍성군체육회 고문(홍성고 16회) 등이 현재 홍성에 살고 있다.
멕시코서 일장기 내리고 태극기 걸고 태권도지도
멕시코 태권도장 무덕관의 문대원 관장의 성공 일대기가 지난 4월 14일 오후 KBS 1TV에서 방송됐다. 미국 텍사스대학에서 건축학을 공부하면서 미국에서 열리는 각종 무술대회에 나가 수차 우승을 했는데, 이를 지켜본 어떤 사람이 문 관장을 멕시코로 초대 했다고 한다. 그런데 초대한 곳이 멕시코 가라데 도장이었다. 그곳에서 가라데 사범들과 대결해서 모두를 꺾으면서 일장기를 내렸고, 태극기를 걸고 멕시코에서 태권도를 가르치기 시작한지 어언 43년이 지났다. 지금은 멕시코에서 대사부로 통한다는 문대원 사범에 대한 일대기가 너무 감동적이었다는 반응이다. 이 프로그램은 멕시코에서 세계 최초의 프로 태권도 리그가 지난 3월 10일 출범하면서 기획된 것으로 풀이된다. 세계적인 인터넷 방송국 테라를 통해 전 세계에 생중계된 ‘Tk-5’. 여느 태권도대회와는 달리 박진감 넘치는 경기를 펼쳐 세계인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이 대회를 관장한 사람은 멕시코 태권도장 무덕관의 문대원(70) 관장이다. 태권도장 이름인 무덕관은 홍성의 제일체육관의 전신이라고 한다. 현재 홍성의 제일체육관은 무덕관의 정신을 올곧이 이어가고 있다.
멕시코 태권도계의 상징적 인물, 문대원 관장
한국의 태권도가 넘치는 에너지를 가진 멕시코인들에게 절제와 한국 정신을 심어주고 있다. 멕시코 사람들에게 무도로서의 태권도를 전한 한국인은 바로 홍성사람인 문대원 무덕관 관장이다. 그는 멕시코 국회로부터 모범적인 멕시코인을 배출한 공로로 표창을 받았을 만큼 멕시코인에게 많은 영향을 끼친 자랑스러운 한국인이다. 멕시코 태권도인들로부터 ‘그랑 마에스트로(대사부)’라고 불리는 문대원 관장은 태권도의 진정한 위상을 세계에 알리고 태권도 활성화를 꿈꾸고 있다고 한다. 20대 초반, 건축가를 꿈꾸며 미국 유학을 떠났던 그는 유학생활의 어려움을 견뎌내기 위해 태권도에 열중했다고 한다. 타고난 성실함으로 태권도에 매진, 전 미국 무술챔피언십대회에서 3연속 패권을 잡는 대기록을 세우며 스타덤에 올랐다. 그리고 그는 멕시코인의 초청으로 1969년 멕시코 땅을 밟았다. 당시 멕시코 땅에는 일본 가라데가 판을 치고 있었는데, 그 도장에 태극기를 걸고 태권도를 전파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이후 43년간 다혈질의 멕시코인들에게 한국의 태권도정신을 심어준 그는 모범적인 멕시코인들을 많이 배출한 공로로 멕시코 정부로부터 표창을 받기도 했다. 특히 빈부의 격차가 심한 멕시코에서 문 관장은 지난 15년간 가난한 아이들의 기숙학교인 ‘찰코 소녀의 집’에서 태권도를 가르쳐오고 있다. 그가 일생일대의 과제로 내세우는 태권도의 전 세계화. ‘Tk-5’ 출범으로 그 꿈에 바짝 다가선 그를 KBS TV 글로벌 성공시대를 통해 방영한 ‘홍성사람 문대원 관장’을 만나 보았다.
멕시코는 땅의 넓이가 200만 제곱킬로미터인 광대한 나라이다. 그 중에 수도 멕시코 시티는 인구 1000만 명이 넘는 세계에서 두 번째로 넓은 도시다. 이곳에서 문대원 관장은 태권도 도장을 최초로 열었다. 1969년도에 멕시코시티에 처음 설립한 도장은 무덕관이다. 문대원 관장은 태권도를 통하여 절도 있는 동작을 가르치고 또렷한 우리말 구령을 사용하여 이국 땅 멕시코에서 멕시코 사람들에게 한국을 심어놓고 더 나아가서는 한국인의 정신을 자연스럽게 접목시키고 있다. 1969년 문대원 관장이 멕시코에 처음 설립한 도장 무덕관은 멕시코 태권도의 역사가 시작된 곳이다. ‘손으로 치고, 동시에 발을 놀려 차는 무도’라는 뜻의 태권도를 가르치는데 있어서 문대원 관장은 처음부터 온몸으로 공격과 방어를 동시에 행하는 강렬한 태권도를 가르쳤다. 쉽게 가르치려는 생각도 했으나 본래 태권도의 수련 방식을 고수하는 것이 오히려 멕시코인들에게 태권도의 바른 정신을 가르쳐 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처음이라고 해서 적당한 선에서 타협한다면 영원히 제대로 된 태권도를 가르칠 수 없을 것이라는 생각에서였다 이러한 가르침은 다행히 멕시코인의 정렬적인 기질에 딱 들어맞았다. 동양과 서양적인 기질을 함께 가진 멕시코인들에게 힘과 정신이 조화를 이룬 태권도는 멕시코인들을 매료시켰던 것이다. 또한 그들의 기질에 맞는 새롭고 놀라운 운동을 가르쳐준 문대원 관장을 멕시코인들은 그랑 마에스트로, ‘대사부’라고 부른다. 멕시코인들은 문 관장을 통해 처음 접하는 한국의 태권도에 매료되었다. 단숨에 태권도를 통해 멕시코인들을 사로잡았던 것이다.
미국 유학시절, 건축가 대신 태권도 선택했다
문 관장이 처음 태권도를 시작한 것은 초등학교 시절부터였다고 한다. 그러나 20대 초반까지 태권도는 그저 좋아하는 운동일 뿐, 문대원 관장에게는 미국 유학시절에는 건축가를 꿈꾸는 건축학도였다. 그러나 힘든 유학시절을 견뎌내기 위해 그는 태권도에 열중했던 것이다. 그 결과 전 미국 태권도챔피언대회에 참가해 3연승을 거두며 유명해졌고, 이후 건축가의 길 대신 태권도를 선택하게 되었다고 한다. 20대 중반쯤에 그의 이름은 이웃한 멕시코에까지 알려져 새로운 무술에 처음 관심을 가진 멕시코 청년에게 첫 초청을 받게 된다. 10일이라는 짧은 기간이었지만 멕시코인들은 한국의 태권도에 매료되었고, 미국까지 그를 따라오며 자신들에게 태권도를 가르쳐 달라고 부탁했던 것이다. 일본의 가라데가 한창 인기를 누리고 있어, 태권도조차도 가라데 태권도라 불리던 시절이었다. 어렵게 그들의 부탁을 받아들여 처음 멕시코에 도장을 세웠을 때부터 문 관장은 태권도의 국적부터 되찾았다고 한다.
멕시코인들에게 그가 태권도와 함께, 멕시코인으로서의 자긍심을 심어나간 지 43년 동안에 결실은 그의 생각보다 더 빨랐다. 멕시코에 도장을 설립한 지 불과 4년 만에 그는 서울에서 열린 세계태권도선수권대회에 처음 참가해 한국, 미국의 뒤를 이어 3위 입상을 했다. 1975년에는 전 멕시코를 대표하는 태권도협회를 결성하기에 이른다. 또한 문 관장이 주축이 되어 결성한 34개 아메리카의 태권도국제대회 패남, 1978년 멕시코에서 개최된 첫 대회에서 멕시코 선수들은 우승을 거둔다. 1983년부터 개최되기 시작한 문대원컵대회는 32개 주 전 지역에서 선발된 선수들이 겨루는 이 대회는 이제 멕시코인들의 전국체전 같은 축제로 자리 잡은 지 오래다. 가장 권위 있는 태권도대회에 개인, 그것도 외국인의 이름을 붙였다는 것은 단순한 그만의 영광이 아닐 것이다.
이제는 절정기 때의 날렵한 모습들을 다시 보여줄 수 없는 나이가 되었지만, 문 관장은 현재 자신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 현란한 기교보다 우선한다는, 그가 역설한 태권도 정신을 보여주고 싶었으리라. 멕시코 국회로부터 모범적인 멕시코 인을 배출한 공로로 표창장을 받았을 만큼 전 국민의 사랑을 받는 문대원 관장. 태권도를 통해 그는 살아서 이미 멕시코인들의 신화 속 주인공이 되었다. 멕시코시티 허름한 한 이층 건물에 개원한 무덕관이 멕시코 전역에 지부를 두기까지 43년이라는 기간은 문 관장이 길에서 보낸 시간과 세월을 가늠해볼 수 있는 세월과 시간이다.
멕시코에서 태권도와 한글 엄격하게 가르친다
멕시코에서 그가 얻은 그 어떤 명성보다도 더 값지고 부러운 점은 그에 대한 멕시코 사람들의 전폭적인 믿음과 애정이었다고 회고한다. 문 관장을 대하는 멕시코인들의 사랑은 그의 사람에 대한 믿음과 애정의 되울림처럼도 보인다. 그는 어떤 자리에서도 가장 자연스러운 모습을 보여주며, 자신의 온 마음을 함께 한 사람들에게 내어준다. 아이들에게 한글과 모국어를 엄격하게 가르치는 한국인. 그러나 멕시코 사람 틈에서 그는 멕시코 사람들조차 외국인임을 잊을 정도로 편하게 어울린다. 그 점이 그가 성공할 수 있었던 최고의 자산이 아니었을까? 43년을 넘게 살았지만 둘러보면 문득문득 낯설고 외로워지는 이방의 거리, 그러나 최선을 다하며 살아온 생애가 그런 외로움을 위로한다. 아직도 힘들 때면 한국을 생각하고 고향 거리와 음식냄새를 그리워하는 어쩔 수 없는 한국인이다. 그러나 단신으로 이주해 온 멕시코에서 그는 태권도의 영웅이 되었다. 그의 43년 이주기가 곧 멕시코 태권도의 역사와 고스란히 겹칠 정도로 영예로운 생애이다.
문 관장은 매년, 멕시코 32개 주 300여 명의 사범들을 모두 한 자리에 불러 한해를 결산한다. 유단자가 된 후에도 다섯 번의 전체 세미나를 통과해야 하는 엄격한 사범 선발 기준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일단 한 가족으로 받아들이면 문 관장은 무덕관의 모든 일들을 사범들과 함께 의논하고 결정한다고 한다. 지난 2000년에는 무덕관에는 더욱 뜻 깊은 해였다. 이 해에 무덕관은 처음으로 사회주의 국가 쿠바로까지 그 영역을 넓히게 되었던 것이다. 쿠바는 북한태권도를 일찍 받아들인 태권도 강국이다. 네 체급 이상의 출전을 금지하고 있는 올림픽에서도 네 체급 모두 참가할 만큼 무술로서의 태권도가 강한 나라이다. 그런 태권도 강국이 무덕관 도장 설립을 허용하며 변화를 모색했던 것이다. 쿠바인들이 문 관장에게 무덕관의 태권도를, 무도로서의 태권도를 가르쳐달라고 요청해 왔던 것이다. 그것은 43년 동안 태권도에 철학을 담아온 문 관장과 무덕관 식구 모두가 거둔 값진 승리였던 것이다.
멀기만 한 한국, 그러나 문 관장은 태권도 하나로 가장 단단한 다리를 놓아 멕시코와 고국인 한국과의 먼 거리를 좁혔던 것이다. 이미 국경이나 국적은 무의미해 졌다. 태권도를 통해 그는 멕시코 땅에서도 조국과 함께 있고, 태권도를 통해 만난 친구들 곁에 있어 더 이상 외롭지 않다고 한다. 자신의 분야에서 성공한 사람은 다른 일을 했더라도 성공 할 수 있었을 사람이다. 이것은 문대원 관장의 성공 철학이기도 하다. 멕시코여서 그가 태권도의 영웅이 된 것은 아니다. 한국에 있었더라도 그는 태권도의 영웅이 되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문대원 관장은 홍성이 낳은 또 한 사람의 영웅, 위대한 민간 스포츠외교관임에 틀림없다.
태권도 2013 세계선수권 대회, 멕시코서 개최
한편 멕시코 쁘에블라(Puebla)시에서 2013 세계태권도선수권대회가 개최된다. 최고의 세계대회로 꼽히는 이 대회의 멕시코 유치활동 전면에 나선 사람이 바로 문대원 관장이다. 문 관장은 WTF 집행위원이기도 한데, “이렇게 긴장해 본 적이 없었던 것 같다”며 “멕시코 정부와 국민들의 힘을 모아 반드시 성공적인 대회를 개최하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멕시코에서 네 번째로 큰 도시인 쁘에블라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콜로니아’가 있는 곳으로도 유명하다. 전 세계적으로 한국의 태권도가 안 퍼져있는 곳이 없다. 그리고 태권도는 한국의 문화와 정신을 세계에 알리는 중요한 역할을 해 왔다. 40여 년 전 멕시코에는 일본의 가라데, 중국의 쿵푸가 자리 잡고 있었다. 이런 땅에 태권도를 자리 잡게 하고, 한국의 문화와 정신을 알리며, 멕시코에서 태권도와 함께 하며 인생을 보낸 사람이 문대원 관장이다. 문 관장은 그 어떤 무도보다 태권도는 강하며 철학이 있는 무도라는 것을 가르쳤고, 태권도를 통해 멕시코 사회에 기여하고자 했던 것이다. 결국 한국 태권도의 역량을 멕시코에 떨칠 수 있었으며, 멕시코 태권도의 위상을 높일 수 있었던 핵심에 홍성사람 문대원 관장이 있었기에 가능했다는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