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하나쯤이 아닌, 나만이라도 움직여야 세상이 바뀐다”
[여성의 힘, 세상을 바꾸는 작은 힘의 시작]‘논배미’ 생태교육· 환경운동가 조미경 씨
여성의 힘은 참으로 대단하다. 남성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며, 묵묵히 자신의 위치에서 최선을 다해 열심히 살아가는 우리 이웃들이다. 일터에서, 가정에서 평범한 삶을 살아가며 세상을 바꾸는 일에 작은 힘을 보태는 여성들을 만나본다.
<편집자 주>
“불현듯 뱃속 아이에게 매연에 찌든 서울의 공기를 마시게 하고 싶지 않았다. 비록 부부가 벌던 월급의 3분의 1밖에 못 벌어도 소통하는 이웃이 있고 건강한 먹거리가 있는 현재 삶에 만족한다”고 첫 마디를 뗐다. 조목조목 야무지게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는 조미경(홍동면 문당리. 42) 씨는 지혜로운 여성이었고, 건강한 엄마였으며, 사랑스런 아내였다.
여덟 살 연하 남편 이재혁(34) 씨와 다섯 살짜리 아들 샘과 함께 2008년에 귀농한 그녀는 홍동에 위치한 ‘논배미’에서 생태교육 활동가로 일하고 있다.
“같은 교회를 다니면서 늘 함께 일을 하다가 자연스럽게 결혼까지 이어졌다. 나이 차가 많다 보니 주위에서는 나를 꽤 능력 있는 여자라고 인정을 하는 눈치인데, 간혹 당황스런 경우도 있다. 남편은 풀무학교 전공부에서 2년간 공부를 마친 후 현재는 농사를 지으면서 정농회 사무국장을 맡고 있다. 원래 생태나 환경에 관심을 갖고 있지는 못했다. 홍동에 내려와 살다 보니 주변 사람들이 돈을 벌기 위해 농사를 짓는 것이 아니라, 흙을 살리고 자연과 어우러지는 삶을 살기 위해 일을 하더라. 그러한 마을 분위기 탓인지 저절로 이 분야에 관심을 갖게 됐다”
간신히 밥해 먹고 살 정도의 소득이지만 시간적 여유도 있고, 농사일이 바쁘긴 해도 매여 있는 일은 아니라, 지금의 삶의 질이 예전보다 훨씬 높아졌다고 평가했다. 또한 아이에게 억지로 공부를 시키기 위해 도시로 나갈 생각은 없다고 잘라 말했다.
‘논배미’는 2009년 자생한 조직으로 홍동에 유기농 농업단체들이 많은데도 외부에서 체험활동을 와도 논에서 마땅히 체험할 게 없다는 생각을 하다가 일본의 논활동을 벤치마킹해 만들었다고 한다. 도농교류 프로그램의 일종이면서 지역 학생들의 교육을 주로 담당한다.
“논에 사는 생물들은 5600여종이나 된다. 식물까지 합하면 7~8000 종류나 되는데 상상할 수 없는 수많은 생명들이 살고 있다. 논은 쌀을 생산하는 공간이며, 살아있는 공간이다. 주로 논의 작은 생명이 나와 어떤 관계인가를 아이들에게 가르친다. 가령 일 년에 하나씩 논생물이 사라지면 언젠가는 우리도 없어지게 될 수 있으며, 논은 수많은 생명을 살리는 공간이라고 강조한다. 그리고 그 공간에서 농사를 짓는 농부아저씨는 ‘생명 농부’라 칭하며 귀한 일을 하는 분이란 걸 강조한다”
그녀는 이내 건강한 논에서 나온 건강한 쌀은 우리의 몸을 건강하게 할뿐만 아니라 건강한 지구를 지키는 데 한 몫을 한다는 점을 염두해 둘 것을 조언했다.
“홍동엔 귀농자와 젊은 엄마들이 많아서 환경 문제에 민감하다. 일본의 원전사고를 접하면서 가슴이 조마조마했다. 원전을 잘 모르니까, 지난해부터 책 한권을 정해 돌아가면서 발제도 하고 10여명이 모여 공부를 시작했다. 특히 먹을거리에 대한 관심을 갖고 가정에서뿐만 아니라 학교 급식에도 반영될 수 있도록 다양한 의견을 건의하고 나눈다”
얼마 전에는 아이와 함께 충남 녹색당 탈핵희망버스를 타고 경북의 영덕에 다녀왔단다. 지난 총선 때 주위 엄마들과 함께 건강한 환경을 아이들에게 남겨 주기 위해 작은 힘을 모았다. 앞으로의 미래는 아이들의 것인데 이대론 장담할 수 없어 ‘아이들에게 건강한 미래 유산을 남겨 주고 싶다’는 일념으로 첫걸음을 뗀 것이 바로 충남녹색당 창당이었다는 게 조 씨의 설명이다. 이어 녹색당은 여성, 청년, 비정규직, 소수자를 포함한 풀뿌리 사람들의 힘으로 정치의 변화를 시도했다며 개인적으로 긍정적인 평가를 내렸다.
“예전에는 아이들을 건강하게 키우려면 환경이 좋은 곳으로 이사를 하면 되는 줄 알았다. 깨끗한 것을 골라 입에 넣어주면 되는 줄 알았다. 그러나 앞으로는 이사 갈 아무데도, 골라 먹일 아무 것도 없을지 모르겠다. 농사지어도 괜찮은 땅이 아직 남아 있을 때, 아이들이 들어가도 좋은 숲과 만져도 되는 나무들이 아직 곁에 있을 때, 실컷 들이마셔도 될 공기가 많이 남아 있을 때, 이때가 엄마인 제가 무언가 조금이라도 할 일이 남아 있는 때인 것 같다. 그래서 녹색당 활동도, 논 생태 교육과 환경보호운동도 더욱 열심히 하고 있다”
아이들은 부모의 뒷모습을 보고 자란다는 말이 있듯 다섯 살짜리 아들은 전기불 끄는 선수가 됐단다. 비록 별 것 아닐지라도 엄마가 실천하는 모습을 보여 주면 아이들이 희망적인 미래를 위한 싹을 틔울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할 것이란 주장이다. 한 번에 확 바뀌지는 않는다. 씨를 뿌리고 열매를 맺기까지 엄마의 힘, 여성의 힘이 가장 크게 작용할 것이란 생각에 변함이 없다고 덧붙였다.
조 씨는 “총선 결과에 아쉬움이 남긴 하지만 우리 엄마들은 선거 때문에 모인 것은 아니었다. 삶 속에서 녹색의 힘을 이어갈 수 있을까를 늘 고민한다. 예전에 환경과 정치 문제엔 주부들이 관심이 없었다. ‘나 하나쯤 참여한다고 해서 세상이 바뀌겠어?’ 란 생각을 가졌지만 최근 녹색당 활동을 하면서 ‘나만이라도 움직여야 한다’고 생각을 바꾸게 됐다. 아무도 안 하니까 ‘나만이라도 해야겠다‘는 생각을 가진 한 사람, 두 사람의 보이지 않는 작은 힘이 결국 세상을 바꿀 수 있는 커다란 힘이 될 것이라 믿는다”며 환한 미소로 대화를 마무리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