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문동 당간지주

2012-09-06     범상스님 칼럼·독자위원

역사·문화·관광이라는 이 세 단어는 한 몸처럼 붙어 다닌다.
이것의 본래 의미는 ‘우리 고장은 유서 깊은 역사와 멋진 문화가 있으니 구경 오세요’라는 의미일 것이다. 그런데 관광을 위해서 역사와 문화를 억지로 만들다보니 본질이라 할 수 있는 정신과 그것을 1차적으로 공유하는 지역민들의 삶의 변화에 대한 심각한 고민 없는 콘텐츠개발이니 마케팅이니 하는 일들만 난무하다.

이것은 바로 역사문화의 생명인 정신을 버리고 경제적 입장에서 접근하고 있음을 말한다. 다시 말하면 역사·문화를 경제와 접목시키는 것이 잘못되었다는 것이 아니라 선·후가 뒤바뀌었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경제는 고급문화를 만들어 내는데 필수조건이지만 선행되어야 할 정신이 빠지면 그것은 곧바로 쾌락과 폭력으로 변질되기 때문이다.

사회심리학자인 엘든 테일러는 이러한 현상을 다음과 같이 진단한다. 우리의 뇌는 지난 2~30년 동안 각종 미디어가 전해주는 폭력과 섹스 등에 무방비로 노출됨으로써 흥분의 한계치가 상승되었으며, 상업자본가들은 상승된 자극강도를 유지하기 위해 대중문화를 점점 더 노골적이고 선정적으로 이끌어 가고 있다. 그 결과 개인들은 복수, 분노, 폭력, 성 등에 대해서 내성과 욕구가 상승한 반면, 교육의 부재로 자신을 통제 할 수 있는 균형감각을 잃어 버렸다.

위의 비유가 역사문화를 말하는데 적절하지 않게 들릴 수 있다. 그러나 음식이 몸을 살리는 것처럼 역사문화는 인간정신의 양식된다는 점에서는 매우 의미 있는 진단이라고 본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요즘 심각한 사회문제가 되고 있는 ‘묻지마 폭행’과 ‘성폭력사건’ 등에 대해서 근본적 원인을 찾기보다는 사형과 같은 극형을 내려야 한다는 즉흥적 대책들만 난무하다. 뿐만 아니라 새로운 문화콘텐츠를 개발이라는 측면에서 시도된 여수세계엑스포에 필자는 물론 경북 울진에 사시는 80노모까지도 어쩔 수 없이 동원되었다. 여기에 목표관람객 800만 달성은 무슨 의미가 있을까 싶다.

 

 

 

 

 



우리 홍성의 예를 들어보자. 문화재가 있다는 것은 그것을 만들어낸 고도의 정신활동과 뒷받침이 되는 경제력이 있었음을 말한다. 홍성은 국보는 없고 보물 4점(신경리 마애석불, 용봉사 영산회괘불탱, 고산사 대광보전, 동문동 당간지주)이 있다. 그런데 현재 여기에 대한 연구보다는 유지와 보존 정도에 머무르고 있으며, 특히 보물538호인 동문동당간지주는 거의 방치상태에 놓여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당간지주는 전국에서도 매우 뛰어난 것으로 평가 받으며, 전문연구자들이나 관심 있는 분들이 종종 찾는 곳이기도 하다. 그런데 홍성의 문화와 관광지를 소개하는 안내책자에 빠져 있고, 이런 연유로 군민들은 아예 있다는 사실조차 모르는 사람이 태반이 넘는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문화재 때문에 개발과 재산권의 제한을 받고 있는 주민들에게는 자랑스러운 문화유산이 아니라 애물단지 골칫거리로 전락하였고, 역사 문화 관광을 말하는 홍성군정이 의심받고 있으니 이보다 불행한 일이 또 어디 있을까 싶다.


<홍주일보·홍주신문 칼럼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