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 詩] 한 울음

2023-07-27     서현진 <시인>

국민학교 2학년 그해 여름
학교가 파하고 
터덜터덜 집으로 걸어오던 길
햇빛은 어찌나 내리꽂히던지
전봇대에 덕지덕지 붙어 있던
하얀 속살 울렁이던 
삼류 극장의 영화 포스터들은
또 어찌나 낯간지럽던지
그날따라 친구들은 꼬빼기도 안보이고

실내화 주머니를 빙글빙글 돌리며
기찻길을 끼고 
살림이 훤희 보이던 판잣집을 지나
미로 같은 좁은 골목길로 접어드는데
왠지 좀 가벼워진 무게감에
실내화 주머니를 들춰보니
아뿔싸
사라진 꼬질꼬질
실내화 한 짝

급히 되잡아 가던 길
보이지 않고
할머니한테 혼날 게
무서워

파랗게 녹슨 대문이 삐그덕 
할머니 얼굴과 부딪치는 순간
나도 모르게
엉엉 

이야기를 한 바가지 쏟아놓자
굳은 얼굴로
아무 말씀 안 하시던 그 날

크게 울길 잘 했어
정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