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 덕분에 고등학생 됐어요”
전국 주한베트남이주가정 수기공모 최우수상 수상한 레티탄투엔 씨
경기일보사에서는 한국-베트남 양국 간 수교 20주년을 맞는 뜻 깊은 해를 맞아 주한 베트남 이주가정의 수기를 공모했다. 이번 수기 공모전에서 갈산면에 거주하고 있는 레티탄투엔 씨가 영예의 최우수상을 수상해 주목을 받고 있다. 남편과 함께 농사일을 거들며 두 아이를 키우고 있는 행복한 주부 레티탄투엔 씨를 만났다. <편집자 주>
베트남에서 시집 온 레티탄투엔(갈산면 신안리. 24) 씨는 비록 나이는 어리지만 한국에 온 지 벌써 6년차 된 베테랑 주부다. 농사를 짓는 남편과 함께 시아버지를 모시고 살고 있는 그녀는 열여덟에 지금의 남편 김형운(47) 씨를 만나 결혼해 융성이(6)와 혜민이(4) 남매를 두고 있지만 한 눈에 봐도 앳된 얼굴이다. 공모전에서 최우수상을 수상할 만큼 한국어 실력이 뛰어난 그녀는 이야기를 나눌수록 영락없는 우리나라 새댁 모습 그대로다.
“처음 한국에 왔을 때 말을 잘 못하다보니 남편과 자주 싸우고 많이 힘들었어요. 시어머니께선 안타깝게도 제가 한국에 온 지 4개월 만에 돌아가셨어요. 5남매의 장남인 남편 덕분에 홀로 되신 시아버지를 모시면서 맏며느리 역할까지 해야 돼서 더욱 어려웠어요”
명절을 포함해 일 년에 제사만 5번. 이제는 여느 아줌마 못지않게 제사상을 홀로 뚝딱 차릴 만큼 음식 솜씨도 늘었다.
레티탄투엔 씨는 베트남에서 초등학교 2학년 정도밖에 다니지 못할 정도로 가정 형편이 어려웠다. 학교를 그만 두고 집에서 부모의 농사일을 도와 드리며 어린 동생들을 돌봤다. 그러다보니 학교에 다니는 친구들을 볼 때마다 너무 속상하고 부러웠다는 그녀는 한국으로 시집 와 좋은 남편을 만나서 배움을 이어갈 수 있게 됐다고 고백했다.
“남편은 대학을 졸업했는데도 제가 배우지 못했다고 부끄러워 한 적이 없어요. 오히려 제가 모르는 것을 질문할 때가 제일 행복하다며 항상 용기를 북돋아 줍니다. 그래서 너무 고맙고 미안해서 더 열심히 하려고 해요”
그녀는 2년에 걸쳐 초등학교와 중학교 검정고시를 모두 합격하고 현재 방송통신고등학교에 다니고 있다. 남편 형운 씨는 아내가 학교를 다닌 추억이 부족하다는 점을 안타깝게 여겨 올해 3월 방송통신고등학교에 입학하도록 권유했다. 농사일과 집안일 모두 힘이 들고 시간도 부족하지만 새벽 4시부터 일어나 기도하면서 열심히 공부한다.
“처음에는 많이 쑥스럽고 과연 잘 적응할 수 있을지 걱정이 앞섰습니다. 하지만 학교 선생님들도 잘 대해 주시고 친구들도 사귀게 됐어요. 지금도 학교 갈 시간이 다가오면 가슴이 설레요. 이렇게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가다보면 언젠가는 저의 꿈인 공무원 시험에 합격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해요”
레티탄투엔 씨는 지난 2009년 1종 보통 운전면허를 취득했다. 한국어가 서툴다보니 다섯 번이나 떨어졌다.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도전한 결과 요즘은 남편의 농사일을 돕는 데 제몫을 하게 됐다며 자랑스러워했다. 만약 베트남에 살았다면 평생 운전을 해보지도 못했을텐데 한국에 살면서부터는 점점 욕심과 경쟁심이 생겼다며 그녀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공무원 시험에 응시하고 싶다며 야무진 소망을 드러냈다.
“저에겐 벅차고 어려운 도전이라는 걸 알아요. 그래도 끊임없이 계속 도전할 거예요. 예전에는 아이들이 배움이 부족한 저에게 무슨 질문이라도 하면 어쩌나 걱정했지만 지금은 그런 걱정에서 어느 정도 해방이 된 것 같아요. 요즘 다섯 살 큰아이가 부쩍 호기심이 많아져서 이것저것 묻곤 하는데 아직까지는 어려움 없이 답변을 해주고 있어요. 이렇게 제가 아이들에게 글을 읽어주고 공부를 가르칠 때면 꿈만 같고 얼마나 행복한지 모릅니다. 제가 지치고 힘들 때마다 희망과 용기를 주고 기댈 수 있는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주는 남편이 제일 고맙고 사랑해요”
부부는 인터뷰 내내 웃음이 끊이지 않았다. 서로의 눈빛을 바라보며 대화를 나누기도 하고, 서로 의견이 다르면 토닥토닥 충돌도 빚으면서 그들은 그렇게 평범하면서도 행복한 가정을 꾸려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