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을 열어 놓고 즐겁게
어르신들의 이야기그림 〈44〉
연세가 많으신 어르신 중에도 그림 그리기에 특별한 흥미를 갖고 표현을 잘하시는 분이 계십니다. 그런 분들은 대부분 기억력이 좋으시고 생각을 진취적으로 하십니다. 그림에 재능이 있다기보다 자신감을 갖고 계시고 외부와 소통을 잘 하십니다.
그림을 잘 그린다는 긍지를 가지신 분들은 대게 자세하게 묘사를 하십니다. 학창 시절에 선생님에게 또는 어느 지도자나 선배에게 칭찬받았던 것을 기억하고 있다가 그 칭찬받았던 것대로 그리고자 하십니다. 그런 분들은 내가 하는 안내를 받아들이지 않고 갈등하다가 흥미를 잃으십니다.
연세가 많으실수록 생각을 열어 놓는 게 중요합니다. 내 것이 제일이라는 생각은 고집으로 이어지고 결국 외돌토리가 되게 합니다. 묘사를 잘하여 뭇사람들의 칭찬을 들은들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그림은 그리는 사람도 보는 사람도 즐거워야 하는 것입니다.
홍동면 문당리에서 그림 그리기 활동을 할 때의 일입니다. 8명 중 가장 연세가 많으신 90세의 어르신이 그림을 가장 열성적으로 그리셨습니다. 한 번은 댁에서 그림을 그려오셨는데 깜짝 놀라고 말았습니다. 어르신의 그림이라고 보기 어려울 만큼 열심히 그리셨는데 바로 대상물과 교감하면서 그리셨다는 것입니다. 어르신이 직접 기르시는 화초들을 관찰하면서 그리셨는데 그 집중력과 표현력에서 할 말을 잃었던 것입니다.
그 어르신은 몇 개월 후에 요양원에 들어가셨습니다. 불청객 치매가 찾아왔던 것입니다. 그 어르신에게 그림을 더 많이 그리게 했더라면 어땠을까 생각했습니다. 적어도 기념이 될 만한 그림 몇 점은 더 남기셨을 것 같습니다. 할 수 있을 때 하시는 게 좋습니다. 마음을 열어 놓고 즐겁게 하시면 더 좋습니다.
전만성 <미술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