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강점기 카프 이후 40여 년 맥이 끊겼던 노동문학 부활시킨 상징적 시집

신경림 시인의 첫 시집 《농무(農舞)》

2024-05-16     정세훈 칼럼·독자위원

카프(KAPF), ‘Korea Artista Proleta Federatio’의 머리글자를 딴 약칭이다. 조선프롤레타리아예술동맹으로 불린다. 일제강점기 사회주의 혁명을 위한 문학가들의 실천단체로써 1925년에 결성돼 일제의 강압에 의해 1935년에 해체됐다. 이들은 당시 문학작품에 일제하 공장에서 노동을 착취당하는 소년 소녀 노동자들의 실상을 담는 등 노동문제를 다룸으로써 우리나라 근현대 노동문학의 문을 열었다. 그러나, 해방 후 남북분단으로 노동문학은 정권 권력에 의해 금기가 되어 맥이 끊겼다.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

1970년 11월 13일 오후 1시 30분, 서울 청계천 평화시장 구름다리 밑에서 평화시장의 영세 봉제 공장 노동자 전태일이 분신하며 열악하기 짝이 없는 노동 조건에 목숨을 내놓고 항의한다. 그해 11월 27일 “내 죽음을 헛되이 말라”라는 전태일의 뜻을 기려 ‘전국연합노조 청계피복지부’가 조직됐다.

이에 영향을 받아, 카프 이후 40여 년 맥이 끊겼던 노동문학도 정권 권력의 핍박을 무릅쓴 의식이 있는 지식인 문학인들에 의해 부활했다. 그 상징적인 작품집이 신경림 시인이 1973년 3백 부 한정판으로 자비 출판, 제1회 만해문학상을 수상한 시집 《농무(農舞)》다. 현대 노동문학의 교과서나 다름없는 시집은 서점에 깔리자마자 바로 모두 판매됐으며, 증보판이 1975년 출판사 창착과비평사에서 ‘창비시선’ 첫 번째로 출간됐다. 1960년대 후반부터 1970년대 초반까지 전국에 산업공단이 조성되고 농경 위주의 우리 사회가 공업화로 이행되면서 당면한 당시 농촌 농민노동의 암울한 상황을 신랄하게 담은 시집은 출간된 지 50년이 지난 현재도 수많은 독자로부터 끊임없는 사랑을 받고 있다.

“징이 울린다 막이 내렸다/오동나무에 전등이 매어 달린 가설 무대/구경꾼이 돌아가고 난 텅 빈 운동장/우리는 분이 얼룩진 얼굴로/학교 앞 소줏집에 몰려 술을 마신다/답답하고 고달프게 사는 것이 원통하다/꽹과리를 앞장세워 장거리로 나서면/따라붙어 악을 쓰는 건 쪼무래기들뿐/처녀애들은 기름집 담벽에 붙어 서서/철없이 킬킬 대는구나 /보름달은 밝아 어떤 녀석은/꺽정이처럼 울부짖고 또 어떤 녀석은/서림이처럼 해해 대지만 이까짓/산구석에 처박혀 발버둥친들 무엇하랴/비료값도 안 나오는 농사 따위야/아예 여편네에게나 맡겨 두고/쇠전을 거쳐 도수장 앞에 와 돌 때/우리는 점점 신명이 난다/한 다리를 들고 날나리를 불꺼나/고갯짓을 하고 어깨를 흔들꺼나”(표제 시 ‘農舞’ 전문)

시집에 대해 이호철 소설가는 뒤표지글에서 “시인의 시를 대하면 아득하게 잊어버렸던 고향을 생생하게 되살아나게 하고 고향사람들의 얼굴이 가까이 보이곤 한다”고 논했으며, 김광섭 시인은 시집 말미에 수록한 ‘시집 농무에 대하여’라는 제목의 제1회 만해문학상 심사평에서 “오늘의 농촌을 반세기 후에 시에서 보려면 시집 ‘농무’에 그것이 있다 하겠다. 거기 그 이미지가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신경림 씨의 시가 가지는 문학사적 의미가 있다”고 평했다.

1935년 충북 충주에서 출생한 시인은 1955년 ‘문학예술’ 지로 등단했으며, 만해문학상, 한국문학작가상, 이산문학상 등 다수의 상을 수상했다. 시집 ‘농무’, ‘새재’, ‘남한강’, ‘뿔’, ‘낙타’ 등 다수를 출간했다.

정세훈 <시인, 노동문학관장, 칼럼·독자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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