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쓸모없는 당신을 축하합니다”
기후위기 시대다. 사과꽃이 피지 않아 내년에도 사과를 마음껏 먹을 수 없을 확률이 높은 상황이다. 사과꽃뿐만 아니라 자라나는 아이들도 장래에 대한 희망을 피워내기 어려운 시대다. 바다에는 방사능이, 먹거리엔 미세플라스틱이 인간의 건강과 안녕을 위협한다. 아이부터 청년까지 미래에 대한 설렘과 희망보다는 막막함과 공포감이 모두의 가슴 속에 스산하게 드리운 시대다. 과연 누가, 어떤 꿈을 꿀 수 있을까?
그러나 이 때야 말로 인간의 삶이란 것에 대해 근본적으로 고민해볼 수 있는 때이지 않은가? 끝이 보이지 않는 터널 속 낭떠러지같은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당연하게도 아이들조차 이미 똑부러지게 소득을 따져가며 장래희망을 고른다. 우리는 태어나서부터 쭉 생산성이 높은, 경쟁력있는 사람이 돼야 한다는 압박 속에 살아간다. 그렇지 않으면 돌아오는 것은 ‘죽음’, 과장같지만 절대 과장이 아닌 ‘끝’, ‘실패’, ‘낙오자’, ‘루저’, ‘쓸모없는 사람’이 되고 말기 때문이다.
인생의 목표는 행복하게 사는 것이라고도 한다. 행복은 무엇일까? 부, 명예, 성공, 유능하고 멋진 사람이 되는 것일까? SNS에서 볼 수 있는 인플루언서들과 TV 속 연예인들의 모습을 보며 사람들은 더 박차를 가한다. 나만의 컨텐츠를 개발하자. 아름답고 매력적으로 외모를 가꾸자. 수익이 높은 아이템을 개발하자. 하지만 모두가 인플루언서가 될 수 없다. 우리는 옆에 있는 사람을 보지 못하고 나 자신까지도 속이며 앞으로 앞으로만 나아간다. 이 과정에서 많은 이들이 지치고, 고꾸라진다. 실패자여서, 소수자라서, 우울증이 있어서, 사회부적응자라서, 그들은 이불 속에 웅크리고 있다. 성공하지 못한, 능력없는 자신을 혐오하고 자책하면서.
일본 작가 다카시마 린은 누구나 자기 모습 그대로 존재할 수 있는 세상을 위해 국가, 가부장제, 이성애 규범, 자본주의, 능력주의, 신자유주의에 저항하자고 주장한다. 그리고 이를 위해 모두에게 당장 ‘일어나라’고 하지 않는다. 일단은 살아남는 것, 이불 속에서라도 근근이 살아가는 삶 자체가 이미 혁명에 가담하는 것이라 말한다. 봉기에 필요한 것은 ‘생명’ 단 하나라고, 그는 저서 《이불 속에서 봉기하라》에서 전한다.
우리가 ‘더 할 수 있잖아, 진짜 실력을 아직 안보여준거지, 온 힘을 쏟아부어야만 해, 일어나!’ 라는 주문을 평생 들었다면, 다카시마 린은 ‘아무것도 하지 못해도 당연히 살아있어도 되고, 몸을 둘 곳 역시 잃지 않아야 한다’고 말한다. 오늘 하루의 가치, 성과를 어림잡아보고, 성과를 냈으니 존재 가치가 있다고 안심하고, 아무것도 하지 않은 날은 스스로를 용서하기 힘들었던 날들을 떠올려본다. 우리는 존재 자체로 이 시대의 요구에, 우리를 옭아매는 각종 통념과 압박에 저항하는 것이었다! 삶을 다 바치는 혁명가가 되지 않더라도 말이다!
꿈을 요구하고 행복을 전제로 하지 않는 세상을 상상해본다. 존재 자체로 이미 충분한 생은 이미 우리에게서 멀리 떨어져 있어 감 잡기가 힘들다. 하지만 극적인 일도 없고, 툭하면 헤매고, 나약하고, 주저하고, 종종 떳떳하지 못한 기분과 고독에 짓눌리는 생 자체를 받아들인다면, 더 많은 패배자들과 웅크린 사람들이 보이기 시작할 것이다. 통념을 벗어던지고 이들과 연대하기 위해 우리는 새로운 언어로 외칠 필요가 있다. 쓸모없는 우리 자신을 축복하자고. 근근이 사는 이 생은 그저 충분할 뿐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