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의 수용소에서

2024-08-01     김선옥 칼럼·독자위원

모든 공포를 불러일으키고도 남을 단어에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 아우슈비츠, 가스실, 대량학살, 화장터……. 생각만 해도 머리카락이 쭈뼛 서고 몸이 오싹해진다. 

이번 8월에 소개할 책은 정신 의학자인 빅터 프랭클(Viktor Emil Frankl) 박사의 대표적인 저서 《죽음의 수용소에서》이다. 이 책은 자전적 에세이로, 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 강제수용소에서 추위와 굶주림, 잔인한 학살의 공포, 시시때때로 찾아오는 생사의 기로,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수용소에서의 참혹한 생활을 담담한 시선으로 그려냈다. 그의 누이만 제외하고 부모, 아내, 형제가 모두 강제수용소와 가스실에서 몰살당했으며, 소유하고 있는 모든 것들을 잃고 자신의 벌거벗은 실존과 운명처럼 대면하게 된다. 그가 더는 기대할 것이 없다고 생각했을 때, 자신이 처한 상황을 따뜻한 마음의 눈으로 바라보게 되면서 남은 생애를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에 초점을 맞춰 선택하고 결정하게 된다. 그는 인간이 소유하고 있는 모든 것들을 빼앗길지라도 단 한 가지, 자기 생각으로 길을 선택하고 결정할 수 있는 ‘정신적 자유’만은 빼앗아 갈 수 없다고 말한다. 
 

죽음의 수용소에서 하루 한 번 배급되는 묽은 수프와 빵조각으로 연명하면서 중노동을 하니, 마지막 남은 피하 지방층이 사라지고 내장 기관이 자체의 단백질을 소화하면서 자신의 몸이 자신을 먹어 치우기 시작했다는 느낌을 받았을 때, 그 마음이 어떠했을까? 또한, 굶주린 동료들의 몸이 점점 해골처럼 변해가며 하나둘씩 죽어 나가는 모습을 옆에서 지켜봐야만 했다. 몇 주 전 이곳에 먼저 들어온 동료가 살아남는 방법을 알려줬다. “가능하면 매일같이 면도하게. 유리 조각으로 면도해야 하는 한이 있더라도. 그러면 더 젊어 보일 거야. 뺨을 문지르는 것도 혈색이 좋아 보이게 하는 한 가지 방법이지. 자네들이 살아남기를 바란다면 단 한 가지 방법밖에는 없어. 일할 능력이 있는 것처럼 보이는 거야. 만약 자네들 발뒤꿈치에 물집이 생겼다고 해 보자. 나치 대원이 그것을 알게 되는 날이면 당장 따로 분류하고, 다음 날 틀림없이 가스실로 보낼 거야.”

수용소 네 곳을 전전하면서 정신과 의사로서 끝까지 품위를 잃지 않고, 정신적으로 건강하게 생환한 빅터 프랭클 박사. 그는 삶의 의미를 끝까지 잃지 않고 인간 승리의 모습을 보여줘 현대인들에게 삶의 의미와 존재 가치를 일깨워 주고 있다. 강제수용소에서 죽음에 대한 공포와 날마다 싸우면서, 어떤 절망적인 상황일지라도 희망이 분명히 있다고 말한다. 산다는 것은 시련을 감내하는 것으로, 시련을 통해 무엇인가 성취할 기회를 만나게 되고, 그 어떠한 모욕적인 상황에도 도전할 힘이 있다면 살아남을 수 있다고 한다. 그는 니체의 말 “왜(why) 살아야 하는지 아는 사람은 어떤(how) 상황도 견딜 수 있다”를 인용해 삶에 어떤 의미가 있다는 것을 깨닫는 것이 최악의 상황에서 효과적으로 살아남는 방법이라고 했다. 인간은 ‘삶의 의미’를 찾으려고 노력하는 동물이다.

이 책은 죽음의 수용소에서 겪은 인간 문제의 심오한 의미에 초점을 둬 죽음조차 희망으로 승화시킨 인간 존엄성의 승리를 서술한 면에서 문학적 가치가 크다. 또한, 정신과 의사로서 수용소에서의 극적인 경험을 분석해 정신치료기법인 ‘로고테라피(Logotherapy)’를 정립하기도 했다.

오늘날은 물질적 풍요로움으로 맘껏 먹고 마시며 즐기는 시대이지만, 사람들은 우울과 불안, 공허와 고독으로 몸을 떨고 있다. 이 시대에 어떻게 살아야 진정 의미 있는 삶을 살 수 있을까? 도스토옙스키의 말에서 그 해답을 찾기 바란다. “내가 세상에서 한 가지 두려워하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내 고통이 가치 없는 게 되는 것이다.”

<이 칼럼은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