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한 인간의 사회를 만들고자 하는 노동시의 가편 가득히 담다
김기홍 시인의 두 번째 시집 〈슬픈 희망〉
‘김기홍(시인)씨 별세, 김민혁씨 부친상=26일 오전 6시께, 전남 순천의료원 장례식장 7호실, 발인 28일 오전 8시. ☎061-759-9187.’ 지난 2019년 7월 27일 13시 30분, 연합뉴스가 인터넷 기사로 김기홍 시인의 타계를 알린 소식이다.
1980년대 박노해, 백무산, 김해화 시인 등과 함께 노동현장의 체험을 바탕으로 한 노동시의 확장을 통해 문단과 사회에 ‘노동’이란 커다란 화두를 심은 김기홍 시인이 2002년 1월 출판사 ‘갈무리’에서 두 번째 시집 <슬픈 희망>을 마이노리티시선 13번째로 출간했다.
첫 시집 <공친 날> 출간 이후 무려 15년 만에 출간한 시집은, 시인이 후기에서 “남들이 재산을 축적하고 명예를 빛낼 때 나는 남들이 쉽게 겪지 못하는 고통들을 겪어보지 않는가. 이것이 나에게는 재산이며 지혜의 거름이지 않는가. 제 몸의 일부를 스스로 떨구어 삭힌 잘 썩은 거름이라야 나무가 탐스럽게 자라지 않는가”라고 밝혔듯, 희망이 없는 절망의 노동에서 건져 올린, 건강한 인간의 사회를 만들고자 하는 노동시의 가편들을 가득히 담고 있다.
시인 맹문재는 시집에 대해 ‘패스 카드 시대의 의리지기’라는 제목의 해설에서 “한국의 민중시 또는 노동시의 한 축은 화폐의 조종을 받는 이 기계에 대한 저항이다. 점점 기계화됨으로 인해 점점 무너지는 인간의 의리를 지키려는 지난한 노력인 것이다”라며 “‘아무리 작은 몸이라도 날아가면/큰 무기가 되는/이 귀엽고 부드러운 곡선으로 더욱 단단해진 돌멩이’(자갈)에 ‘연초록 진초록 울울창창 어우러질/꿈’(봄날)이 피어오를 것을 우리는 시인과 함께 희망한다. 슬프고도 단단한 희망이여”라고 평했다. 시인 도종환은 뒤표지 글에서 “살기 위해, 오늘 또 하루를 살아있기 위해 노동으로, 굳건한 뼈대로 서 있는 시, 병들고 지친 육신으로, 상처투성이의 몸으로 굳게 버티며 쓰는 시, 돌멩이 같기도 하고 철근 같기도 한 시를 다시 만난다”고 논했다.
“슬프다는 것은/사랑한다는 것이다.//날마다 평안을 가져다주는 어둠이 다칠까/풀 죽은 아내와 봄풀 같은 아이들을 침묵의 기도로 바라보다/소심한 도둑처럼 집을 나선다./대형 마켓에 밀려/큰 기대 없이 문을 여는 가게 앞 빈 술병은/어디선가 밤새 지친 육신을 싣고 달리는 택시 불빛에 놀라 몸을 흔들고/로터리에 가까울수록 귀에 익은 발자국 소리들/병원 모퉁이를 돌아서면/먼 여행을 떠나는 길손을 도와 꽃을 장식한 낡은 버스/가로등 불빛에 잠 못 드는 이국의 가로수는/상처 많은 넓은 잎사귀를 몇 개 던진다./아직도 살아있구나!/은행 정문을 점거한 사람들은 말없는 인사를 나눈다./여관을 나서는 낯익은 여인의 발자국을/청소부가 쓸어간다./우리들의 몸값은 얼마일까/내심 한 푼을 더 염원하며/삼삼오오 짝을 이뤄/멀고 가까운 곳으로 팔려가고/주인을 만나지 못한 낡은 몸 몇은/꿈이 되지 않는 날카로운 비를 맞으며/깡소주 몇 잔으로 흘리지 못한 눈물을 녹인다.//슬프다는 것은/희망이 있다는 것이다.”(표제시 ‘슬픈 희망’ 부분)
1957년 전남 순천시 주암면 구산리 금곡마을에서 태어난 시인은 순천농림전문학교(현 순천대학교)에서 수학했다. 승주문학회, 사계문학 동인으로 활동하다가 1984년 <실천문학>에 시 ‘강선을 풀며’ 외 4편을 발표하면서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해방시 동인, 일과시 동인, 순천 놀이패 두엄자리 등에서 활동했다. 시집 <공친 날> <슬픈 희망>, 유고 시집 <뼈의 노래> 등이 있다. 제1회 농민문학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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