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디스토피아-《시녀 이야기》를 읽고

2024-09-26     이예이 <홍성녹색당>

최근 《시녀 이야기》를 다시 읽었다. 몇 해 전 화제가 됐던 드라마의 원작 소설이다. 이야기의 배경은 근미래 미국으로, 환경오염으로 불임이 증가하자 백인종 감소를 우려한 기독교 근본주의자들이 쿠데타로 집권한다는 설정이다. 이 신생 국가의 이름은 길리어드 공화국이다. 집권층은 여성의 신체에 대한 자기 결정권이 결과적으로 에이즈, 피임, 낙태 등의 확산을 초래했다고 주장한다. 이런 논리를 바탕으로 국가의 재건-출산율을 높이기 위해 ‘전통적 가치’로 돌아가 절대적 가부장 사회를 부활시키고자 한다. 여성들은 기능에 따라 철저히 구분된다. 가장 높은 계급인 아내, 하녀 그리고 이 책의 화자처럼 시녀 등으로 나뉜다. 시녀는 가임 여성들로 지배층 존속을 위한 대리모 계급이다. 이들은 엽기적 ‘의식’을 통해 임신과 출산 과정을 겪는다. 늙었거나 불임인 여성은 콜로니라는 식민지로 추방된다. 페미니스트, 반체제 여성들도 추방되어 평생 방사능 폐기물을 처리하게 된다. 

이 책이 처음 출판됐던 1985년 당시 미국에서는 ‘상상력이 부족한, 전혀 일어날 법하지 않은 이야기’로 평가됐다고 한다. 그러나 2016년 미국 대선에서 트럼프가 대통령에 당선되며 이 책의 판매율은 200% 증가한다. 백인 우월주의, 합법적 낙태 서비스의 위협 등 길리어드의 공포와 같은 두려움을 불러왔을 것이다. 
 

2024년 한국을 사는 우리 역시 이 책을 단순히 ‘소설’로 치부할 수만 없다. 딥페이크 성범죄 영상에 관한 폭로 기사들이 매일 쏟아지고 있다. 엔(n)번방 사건의 충격이 가시기도 전이라 범행의 내용과 22만 명이라는 가담자 수, 피해 범위 등 사태의 심각성에 참담한 기분이다. 이런 일련의 일들이 반복적으로 일어나는 이유는 뭘까?

이 소설의 화자이자 주인공은 도서관에서 일하는 평범한 시민이었다가 정권이 바뀌며 시녀 계급이 된다. 이러한 변화는 하루아침에 일어나지 않았다. 길리어드 조직은 처음에는 진지하게 대할 필요 없는 우스꽝스러운 집단 취급을 받았지만 자신들의 주장을 끊임없이 피력해 왔다. 전복 이전의 어수선하고 기괴한 분위기는 드라마에 잘 표현되어 있다. 등장인물들은 달리기하다가도 느닷없이 구타를 당한다. 여성이 달린다는 이유로 말이다. 그들은 이런 폭력에 분노하고 믿을 수 없어 하지만 다가올 미래를 예견이라도 하듯 두려움에 떤다. 

처음 이 소설을 읽었던 몇 년 전에는 찜찜하지만 희망을 내포한 결말이라 생각했다. 모두 지난 과거의 일이 된 시점에서 소설이 끝나기 때문이다. 주인공이자 화자인 시녀 ‘오프프레드’의 긴 독백 뒤에 하나의 부록이 붙어있는 형식으로 이야기는 끝난다. 먼 미래에 개최된 ‘길리어드 연구학’ 심포지엄의 속기록이다. 다시 읽으니 작가가 길리어드의 멸망을 분명히 하기 위해 이런 구조를 택했다기보다는 어두운 미래의 씨앗을 심어뒀다는 생각이 든다. 디스토피아는 언제든 다시 도래할 수 있다는 경고로써 말이다. 이 소설의 결말을 두고 다양한 해석이 나와 있다. 그중 하나는 여성의 증언을 대하는 엘리트 집단의 태도에 대한 비판이다. 이 학회의 구성원 대부분은 남성이다. 이들은 녹음본의 형태로 줄곧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준 시녀의 증언이 사실인지 입증하기 위해 모였다. 그들은 문제를 정확히 진단할 능력이 없어 보인다. 여성을 주제로 농담을 주고받는다. 성폭력 문제를 대하는 정부 기관들의 적절치 못한 대응 방식들과 사태를 축소하려는 태도들과도 겹쳐 보이는 대목이다. 

한국성폭력상담소는 이번 사태 이후 ‘딥페이크 22만 명’ 발생 전조 ‘22개 장면’을 꼽았다. ‘다섯 달 넘게 여성가족부 장관 임명 안 하는 대통령’부터 ‘포괄적 성교육, 청소년 성평등 교육 막던 기독교 혐오 세력’, ‘공공도서관 내 성평등, 성교육 도서 열람 제한 및 폐기하라는 민원 동조하는 차별행정’, ‘여성노동자 사상 검증, 해고한 게임 회사 등 기업’ 등이 있다. 마거릿 애트우드는 멸망의 전조가 보이는 세계와 이를 다루는 권력 집단의 관계에 주목해 왔다. 작가는 이때 제일 먼저 통제의 대상이 되기 쉬운 것은 여성의 몸이라 말한다. 그가 창조한 세계는 무섭도록 현실과 닮았다. 지금 우리 일상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들은 미래의 구체적 현실을 이루게 될 부분들이다. 앞으로 우리가 맞게 될 사회는 어떤 모습일까? 당신이 SF 작가라면 오늘의 증거들을 가지고 어떤 세계를 창조하겠는가?

<이 칼럼은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