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道)
길! 길어서 길인가? 길은 시간이고 시간은 곧 삶이며 나그네 인생길 9만 리. 인간은 이 세상에 태어나는 순간부터 길이 열리고 그 길을 죽을 때까지 가야 하고 몸이 쉬는 동안에도 시간은 흘러가듯이 그 길을 따라가게 된다.
길에는 가까운 길, 먼 길, 좁은 길 넓은 길, 바른길, 굽은 길, 기쁜 길, 슬픈 길, 평탄한 길, 험난한 길, 옳은 길, 그릇된 길, 오르막길, 내리막길 등 우리는 이 수많은 길 중에 때로는 갈등의 쌍갈래 길에서 한 길만을 택해야 한다.
사람은 혼자 태어나서 젊은 시절에 배우자를 만나 둘이 가다가 여러 명의 가족과 동행하지만 어느 때가 되면 하나씩 헤어져 외로운 길을 걸어가기도 한다.
먼 길을 가다가 잠시 정신이 몽롱해 길을 잃고 허둥지둥 방황하기도 하며 가던 길에서 뒤돌아보니 아득히 먼 뒤안길에서 분명 앞으로 살아갈 길이 살아온 날보다 짧음을 느끼게 된다.
각자 가는 길이 다르기에 천차만별의 길에서 혹시 내가 가는 길이 다른 사람들과 다르다고 해서 길을 잃은 것은 아니기에 쉬지 말고 꾸준히 걸어가면 된다.
지난번에 광천노인대학에서 어르신들에게 ‘내가 살아온 길’이란 제목으로 글을 쓰고 발표하며 나름대로 가시밭길을 걸어오신 발자국에 눈시울이 뜨거웠다.
‘길’이란 글에서 “처음 가는 길이고 한 번도 가본 적이 없는 길이며 무엇 하나 처음 아닌 것이 없지만 늙어가는 이 길은 몸이 마음 같지 않고 방향 감각도 매우 둔하기만 하다. 처음 늙어가는 이 길이 너무나도 어렵고 시리도록 외로울 때도 있고 아리도록 그리울 때도 있다. 한발 한발 더디게 걸으면서 발자국 뒤에 새겨지는 뒷모습만은 노을처럼 아름답기를 소망하면서 황혼 길을 천천히 걸어간다. 꽃보다 곱다는 단풍처럼 해돋이 못지않은 저녁노을처럼 아름답게 걸어가고 싶다”라는 구절이 되뇌어진다.
어느새 길가 풀잎에 서리가 내리고 길어진 머리카락에는 흰 눈이 내리겠지!
‘빨리 가려거든 혼자 가고 멀리 가려거든 함께 가라’는 말도 있지만 이제는 빨리 갈 필요도 없고 멀리 갈 수도 없기에 지금 이 자리에서 허탈하게 길을 찾는 방랑자처럼 머뭇거리지만 결코 멈출 수 없는 길, 더구나 되돌아갈 수도 없는 길 위에서 끝까지 가야만 하는 인생길!
그 많은 사람 중에 거기 누구 없소? 함께 걸어가고 싶은 사람! 외쳐보지만, 어떤 일이든 포기하지 않으면 길이 보이듯이 망망대해에서도 끝까지 가다 보면 저 멀리에 아련하게 등대가 보인다.
현대는 과거에 없던 길을 새로 만든 자동차 길, 기차길, 바닷길, 비행기 길에서 사통팔달로 거미줄처럼 연결된 세상에서 빨리 가지만 결코 빠른 것만이 좋은 것이 아니기에 때로는 여유를 갖고 천천히 생각하며 걷는 길도 필요한 것 같다.
이제는 가던 길에서 잠시 신발 끈을 조이고 무거운 짐에서 덜 필요한 것은 덜어내고 조금은 가벼운 차림으로 남은 길을 걸어가야 하겠다.
처음 가는 길을 개척자의 심정으로 ‘돌부리에 걸리고 가시덤불이 앞을 가로막아도 헤쳐나가자’는 구호를 외치며 앞에 보이는 희망봉을 향해서 뚜벅뚜벅 걸어가리라!
길은 곧 도(道)를 뜻하기에 석가는 “아침에 도를 들으면 저녁에 죽어도 좋다”고 했으며 예수는 “내가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다”고 했다.
‘천리 길도 한 걸음부터’이기에 한발 한발 걷다 보니 어느새 금년도 이제 마지막 달에 이르게 되니 ‘올바른 길을 걷는 인간상’이 떠오른다.
생각하는 두뇌, 미래를 내다보는 눈, 역사의 소리를 듣는 귀, 진실을 말하는 입, 자유를 호흡하는 코, 양심을 지키는 가슴, 창조하는 손, 선을 행하는 발, 미소 짓는 얼굴, 건강을 지키는 몸을 돌아보며 한해를 미련 없이 마무리하고 싶다.
가파른 길에서 밤하늘의 달과 별 속에 그 누가 있을 것만 같고 올해 1월에 영원히 돌아올 수 없는 먼 길을 떠난 아내가 돌아올 것만 같은 심정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