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남정맥 종주를 마치며

2025-02-13     김영만 <홍성군산악연맹 회장>

호남정맥(湖南正脈)이란 전북 장수군 주화산에서 시작해 내장산을 지나 전남 제암산, 백운산을 거쳐 광양 망덕포구에 이르는 약 460여km에 이르는 산줄기를 말한다. 남한 지역의 1대간 9정맥 중 가장 길고 험한 산길로, 백두대간에서 분기해 호남지역 전역을 동서로 이동하는 힘들고 고된 여정이다.

이 종주를 계획했던 것은 홍성군산악연맹을 이끌면서 우리지역의 건각(健脚)을 모집해 장거리 산행 경험을 체득하고, 홍성군수배 등산대회와 충남도민체전 등산대회에 대비하는 기본 목적이 있었지만, 무엇보다 우리지역 산악인들의 소통과 화합에 기여하는 하나의 이정표가 되고 싶다는 의지가 있었다.

이 계획이 알려지자 다양한 연령층의 산악인 30여 명이 참여 의사를 밝혔고, 약 2년에 걸친 총 22구간의 산행계획이 수립됐다. 모두 굳건한 마음가짐으로 어느 정도의 고됨을 예상했지만, 30여km에 이르는 첫 구간에서의 쓴맛을 보고 나서 마음이 흔들렸다. 지친 대원들을 어르고 달래서 다음 산행을 이어가는 일도 쉽지 않았다. 매번 거미줄로 세수를 하고 길도 없는 무성한 수풀과 하루 종일 씨름하느라 지친 몸을 이끌고 집으로 돌아가기 일쑤였다.

어떤 날은 빨래판 같은 17개의 크고 작은 봉우리를 넘어야 했고, 어떤 날은 험준한 바위에 놓인 동아줄이 끊어지는 바람에 대원 한 명이 15m가량 추락, 헬기로 대학병원까지 이송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약간의 골절이 있었지만 다행히 큰 부상은 아니어서 한 달가량의 입원치료 후에 일상으로 회복한 경우도 있었다.

하지만 매번 힘든 일만 있는 건 아니었다. 풀독에 오른 상처를 서로 보여주며 누가 더 심한지 비교하며 웃기도 했고, 눈앞에 나타난 커다란 산을 보며 한숨을 지었는데 막상 가보니 그 산은 코스에서 빠져있기에 크게 안심한 적도 있었다. 산길에서 점심을 먹다가 슬리퍼 신은 동네 아저씨가 가져온 막걸리를 나누어 먹으며 서로 신나게 웃고 떠들다가 헤어졌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그 지역의 군수님이라 서로 놀라기도 했다.

구간 중에 ‘천왕산’이 있어 크게 걱정했는데 높이가 225m밖에 되지 않았고, ‘작은 산’이 있어 편하게 생각하다 막상 가보니 689m나 되는 ‘큰 산’이었다. 

힘든 일정을 마친 후 저녁식사 자리에서 비장한 목소리로 ‘다음엔 죽어도 안 와’라고 하는 분들이 많았는데, 매번 다시 오는 이유를 물어보니 ‘나이 들수록 건망증이 심해져서 저번에 어려웠던 게 기억나지 않는다’는 재밌는 이야기도 있었다. 

광양의 백운산에서 바라본 지리산의 능선은 아직도 눈에 선하다. 노고단부터 천왕봉까지 한눈에 들어오는 그 장면은 오래도록 잊히지 않는다. 숱하게 다녔던 지리산의 주능선을 한 발짝 물러나서 바라보자니 분주하게 앞만 보고 살아왔던 내 인생이 떠올랐고, 말할 수 없는 복잡한 감정과 회한이 교차하는 경험을 했다. 

호남정맥을 걷는 동안 수많은 산봉우리를 넘고, 깊은 계곡을 지나며, 울창한 숲길을 지났다. 때로는 가파른 바위에 지칠 때도 있었고, 비바람에 흔들릴 때도 있었다. 하지만 그런 고통스러운 순간일수록 정상에 서서 바라보는 풍경은 더욱 값지게 느껴졌다.

등산은 단순히 육체적인 힘을 시험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마음의 힘, 끈기, 그리고 인내를 유지하는 과정이다. 호남정맥 종주를 하며 나는 내 한계를 넘어서는 법을 배웠다. 발이 아파도, 몸이 무거워도, 한 걸음 한 걸음 내딛는 것이 중요했으며 그 과정에서 느낀 성취감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컸다.

이제 일상으로 돌아와서도 그 성취감은 여전히 내 마음속에 남아 있다. 그 힘들고 험난했던 길에서 얻은 보람과 긍지는 내 삶의 원동력이 되고 있다. 일상의 작은 어려움도 이제는 더 이상 두렵지 않게 된 것은 산에서 배운 끈기와 인내가 나를 더 강하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호남정맥 종주는 단순한 등산이 아니었다. 그것은 나를 찾아가는 여정이었고, 자연과 하나 되는 경험이었다. 우리나라 산하의 아름다움을 다시 한번 느끼며, 앞으로도 더 많은 산을 오르고 싶다는 열망이 생겼다. 어렵고 힘들었던 종주를 마친 지금, 나는 새로운 시작을 준비하고 있다. 

지난 2년간 함께 웃고 함께 땀 흘리며 진실한 마음으로 서로를 위로해주신 동료 대원 여러분께 이 자리를 빌려 깊은 감사와 존경의 말씀을 올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