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기억하는, 부모의 노래에 담긴 의미
음악은 인간과 뗄 수 없는 관계이다. 언어와 문화 차이를 뛰어넘어 사람 간의 교류를 도와주고, 삶을 위로해주는 매개체이다.
필자는 대학에서 ‘가족치료’를 강의한다. 학생들에게 가족생활주기에 따른 자신이 기억한 부모의 노래를 나눴다. 기억 속의 노래와 상황을 얘기하면서 함께 웃고 울었던 것이 의미 있게 남아 있다. 2025년 설 명절을 맞이하면서 필자는 원가족에게 부모님과의 추억 있는 노래를 물었다.
큰오빠는 아버지(26세)와 어머니(20세)가 결혼해 얻은 첫째 아들이다. 아버지는 ‘님 그리워(1986)’, 어머니는 ‘처녀 농군(1968)’을, 종교를 개종하신 후엔 찬송가 ‘나 같은 죄인 살리신’을 즐겨 부르신 것으로 기억한다. 특히 어머니는 ‘처녀 농군’을 자주 부르셨는데, 외할아버지와 외삼촌이 일찍 돌아가신 후 딸로서 홀어머니를 모시는 서러움과 안타까움을 이겨내시려는 강한 의지였던 것 같다고 고백한다.
둘째 오빠는 아버지께서 술을 드시고 집에 들어오실 때, 대문 기둥에 손을 걸치시고 ‘짝사랑(1936)’을 목청껏 뿜으신 것을 흉내 냈다. 또한 오빠가 MBC공채 탤런트로 합격 후 힘들어할 때 “쨍하고 해 뜰 날 돌아온단다(생략)”를 불러주신 어머니의 희망 노래도 읊조린다. 역시 연예인이다.
셋째인 언니는 아버지가 파리를 두 손으로 잡으면서 ‘짝사랑’을, 어머니는 ‘희망가(1921)’를 즐겨 부르셨다고 한다. 희망가는 1910년 기독교 신자 임학천이 ‘이 풍진 세상을’이란 제목으로 작사했고, 원곡은 1850년 영국 춤곡을 바탕으로 미국인 제레미아 인갈스의 찬송 모음집에 수록된 ‘The Lord into his Garden Comes’이라는 찬송가이다. 어머니는 30대 후반에 매우 몸이 아프셨고, 그로 인해 40대 초반에 개종하셨다. 그 시절의 힘듦을 기독교 배경인 희망가를 통해서 위로받으신 것으로 추측된다.
넷째인 필자는 외할머니가 불러주신 ‘달아 달아 밝은 달아(1972)’, 어머니의 ‘험한 시험 물속에서(찬송가 400장)’를 기억한다. 어린 시절, 필자는 외할머니와 함께 잠을 잤다. 그때마다 한 손으로는 팔베개를, 다른 손으로는 배를 다독다독하시며 노래를 불러주셨다. 그래서인지, 필자는 어머니와 같이 잠을 잔 적이 없음을 돌아가신 이후에야 깨달았다. 어머니는 따뜻한 팔베개보다는 험한 상황 속에서도 신앙으로 견뎌낸 강인한 분으로 기억되고 있음을 재인식하게 된다.
막내인 남동생은 ‘나의 등 뒤에서 나를 도우시는 주(복음성가)’, ‘최진사댁 셋째 딸(1969)’을 기억한다. 둘째 오빠 결혼식 때 버스로 이동 중 남동생이 이 노래를 불렀는데 어머니가 너무 좋아하셨고, 그때부터 어머니와 함께 자주 불렀다고 회상한다.
끝으로 아버지에게 여쭸다. 아버지는 ‘삼팔선의 봄(1958)’, ‘노랫가락 차차차(1962)’, ‘물레방아 도는데(1976)’, ‘울 밑에 선 봉선화(1989)’, ‘백마강(1954)’, ‘비 내리는 고모령(1948)’을 기억한다. 그중에서도 ‘비 내리는 고모령’을 아주 많이 불렀다. “어머님의 손을 놓고 돌아설 때엔/부엉새도 울었다오 나도 울었오/가랑잎이 휘날리는 산마루 턱을/넘어오던 그날 밤이 그리웁구나(중략)”<비 내리는 고모령>
위 노래는 대구광역시에 있는 고모령(顧母嶺) 고개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고모령은 일제 강점기 때 징병이나 징용으로 떠나는 자식과 어머니가 이별한 장소였다. 1937년생인 아버지는 초등학교 6학년 때, 할머니가 느닷없이 돌아가셨다. 장날에 마늘과 콩을 머리에 이고 시장에 가시다가 총에 맞으셨고, 75년 동안 그 장소를 오가신다. 그때마다 할머니에 대한 그리움과 슬픔이 섬진강 운하(雲霞)가 됐을 것 같다.
필자는 오남매가 기억하는 부모의 노래를 통해 가족생활주기를 몇 가지로 정리할 수 있었다. 첫째, 발달단계마다 채우지 못한 결핍을 아버지는 그리움과 사랑의 노래로, 어머니는 견딤과 강인한 의지의 노래로 버티셨다. 둘째, 부모님에 대한 오남매의 기억과 경험은 각기 다르기에 어떤 상황이 발생하면 대처가 다를 수 있다는 것이다. 셋째, 필자의 원가족은 한국 전쟁과 어머니의 신체적 통증에 따른 기독교로의 개종이 소백산맥처럼 유유히 흐르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노래는 기억이고, 행복이며, 미래를 위한 현재의 버팀목이다. 필자도 자녀들이 우리들의 삶의 노래를 어떻게 기억하고 있을지 궁금하다. 여러분들도 가족들과 발달 주기에 따른 기억하는 노래가 무엇인지 나눠보는 시간을 가져보시기를 권면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