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 세상이 내 것 같아요 < 2 >
주민기자가 쓰는 청소년소설
"무슨 말씀이세요."
"학교만큼 관료주의에 찌든 곳이 없으니까요. 이곳에선 학생들뿐 아니라 교사들까지 아이취급이에요."
"이런 분위기에서 공부하는 아이들이 도대체 뭘 배우겠어요? 남한테 손이나 내밀고 눈치나 보고 아부하는 것밖에 더 배우겠어요? 전 정말 오늘만큼은 교직에 발을 들여놓은 게 후회스러워요."
소영은 거의 울상이 되어 창틀에 손을 올려놓고 바깥쪽을 물끄러미 내다보았다. 탁 트인 하늘을 보니 가슴이 더욱 답답해졌다. 사는 게 이렇게 힘든 일일 줄 정말 몰랐었는데... 자기도 모르게 콧등이 시큰해졌다.
"민선생."
어깨에 느껴져 오는 손길에 소영은 고개를 돌렸다.
강선생이 담배를 빼물고 수심 가득한 얼굴로 소영을 바라보고 있었다.
"난 민선생을 보면 느끼는 게 있어요. 그건 부러움과 부끄러움이지요. 그리고 또 바라는 것도 있어요. 민선생의 그 건강하고 상큼한 용기가 꺾이지 않았으면 하는 거요. 지난번에도 말했다시피 많은 교사들이 너무도 쉽게 용기를 포기해 왔습니다. 민선생이 좀더 버텨준다면 나도 다시 옛날의 모습을 찾을 수 잇을 것 같소. 도와주지 않겠소?"
소영을 응시하는 강선생의 눈에 이슬이 고였다. 한줄기 빛을 잡으려는 맹인의 그것처럼 절실해 보이는 눈빛이었다.
소영은 그런 강선생의 모습이 이제 막 여드름이 돋기 시작하는 사춘기 소년 같아 보여 자기도 모르게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건 제가 드릴 말씀이에요. 선배님이 저를 도와 주셔야죠. 이렇게 지켜봐주시면서요."
강선생이 흐뭇한 얼굴로 소영의 가냘픈 어깨 너머로 창밖을 내다보았다. 하늘이 유난히 파랗게 높아 있었다.
미라는 우물쭈물 대며 앉아 있었다.
"미라야, 가자."
은희가 책상 앞에 서서 재촉했다.
"잠깐만."
"왜 그래? 무슨 일 있니?"
미라의 볼그스레한 얼굴을 들여다보면서 은희가 걱정스레 물었다.
"아, 아냐."
미라는 말없이 고개를 돌렸다.
"은희야."
한참을 망설이던 미라가 앞을 본채로 은희를 불렀다.
"왜?"
"너 먼저 가."
"어머 얘, 너 오늘 나랑 쇼핑가기로 했잖아. 자기가 예쁜 옷 봐둔 게 있다고 거기로 가자고 했으면서......"
은희가 샐쭉한 얼굴로 미라를 흘겨보았다.
"미안해. 다음에 가자. 오늘은 급한 일이 생겨서 그래. 다음에 꼭 함께 가줄게."
미라는 일어서서 은희의 등을 밀었다.
"급한 일? 무슨 일인데? 일어날 생각을 않는걸 보니 급한 일이란 게 교실 안에 있나보구나."
현우를 흘긋 보며 내뱉는 가시 돋친 은희의 말에 미라는 아무 말 없이 고개를 숙였다.
"알았어. 오늘은 그냥 갈게. 그 대신 토요일에 꼭 함께 나가는 거다. 응? 약속해."
손을 내민 은희는 힘없이 올린 미라의 새끼손가락을 걸고 힘껏 흔들다가 뚜벅뚜벅 걸어 나갔다.
이제 교실엔 대여섯 명의 아이들밖에 남아있지 않았다.
…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