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을 유배당한 노동(자)을 육체적 노동시로 굳건히 지키다

이웃 사랑 투철한 조선남 시인의 첫 번째 시집

2025-03-20     정세훈 칼럼·독자위원
<strong>정세훈</strong><br>시인,

희망을 유배당한 노동(자)과 노동현장을 육체적 노동시로 굳건히 지키고 있는 조선남 시인이 2000년 11월 출판사 문예미학사에서 첫 시집 <희망수첩>을 ‘문예미학노동시집’ 첫 번째로 출간했다.

조선남 시인은, 시인이 시집 후기에 “민주노조 사수를 위해 본사 점거 투쟁에서 관리자들의 비웃음, 사과탄 파편에 얼굴이 찢어진 포장반 아줌마들, 언제 덮쳐 올지 모르는 전경들 앞에 노조를 사수하고, 우리 자신을 지키는 유일한 길이라고 생각하고 신나를 붓고 공권력 폭력 앞에 나섰을 때 같이 죽자며 달려들던 조합원들, 그리고 살아서 싸워요 하던 어머니 같은 여성조합원의 피 묻은 얼굴들”이라고 진술했듯, 노동(자)을 위해 자신을 희생했으며 그로 인해 투옥되기도 했던, 동료와 이웃사랑이 투철하며 진솔한 현장 노동자 출신 시인이다.

따라서 각각 부제가 붙은 ‘희망수첩’ 연작시가 절반을 차지하고 있는 시집에는 조직화 된 노동현장뿐 만이 아니라, 조직조차 이루지 못한 비루한 노동(자)에 대한 시편들이 읽는 이로 하여금 가슴 저리게 하고, 눈물 나게 하고, 분노를 유발케 한다.

“불을 밝혔다/마누라까지 공사장 데불고 나와/해장 소주부터 큰 잔으로 들이붓고/칼자루를 잡았다//미친 듯이 돈내기에 매달려/공사장에서 전기장판 한 장으로/작업복을 입은 채 쓰러져 잠들고//백열등 불빛에/칼춤 추듯 출렁이는 그림자는/몇 사람의 일을 한꺼번에 하고도/한목숨 지탱할 수 없었다//질긴 목숨, 몇 번이나 끈을 놓고 싶어/아찔한 외벽 타기 미다시 작업에/밥줄 메어 보기도 했다//아! 이제는 정말/뜨겁게 목줄 타고 흐르는 소주 한 잔 없으면/손이 떨리고 벽이 흔들린다./이러다 얼마나 더 버틸는지/질긴 목숨 얼마나 더 붙어 있을는지”(시 ‘희망수첩-미장 서 씨-’ 전문)

시집에 대해 시인 정인화는 ‘고난의 길, 그래도 희망은 있다’라는 제목의 시집 해설에서 “잡동사니로 뒤엉켜 자본의 부패한 냄새를 폴폴 풍기는 필자 같은 어쭙잖은 시인이 만들어 낸 시들이 행세를 하는 이 더러운 풍토에 그나마 조선남 시인을 비롯한 ‘구로노동자문학회’, ‘일과 시’ 동인, 그리고 각 지역에서 소리 없이 생활에 고투하고 계시는 적지 않은 시인, 작가들이 있어 여간 고마운 일이 아닙니다”라고 논했다.

이일재 전 민주노총지도위원장은 “그는 1920년대의 ‘카프’ 운동 시기, 1945년 해방공간의 노동자 시인들과 오랜 단절을 거쳐 1987년 노동자 대투쟁이 산출한 노동자 시인들이 반동의 회오리바람에 휩쓸려 가 버렸거나 스스로 깃발을 접은 사이비 노동자 시인들과는 달리 신자유주의의 광폭 속에서도 남아 노동자들의 처참한 참상을 그리고 희망을 노래하고 있다”고 평했다.

1966년 대구에서 태어난 시인은 중퇴한 고등학교 재학 시절부터 문학의 꿈을 키워왔다. 노동운동으로 시인의 꿈을 접었다가, 대구 남선알미늄 논공지부 파업 주도 건으로 첫 번째 옥고를 치르는 상황에서 1989년 ‘백두산 모임’으로 전태일문학상에 추천됐으며, <노동해방문학>으로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시집으로 <희망수첩>, <눈물도 때로는 희망>, <겨울나무로 우는 바람의 소리> 등이 있다. 노나메기새뚝이상, 작가정신문학상을 수상했으며, 현재 ‘해방글터’ 동인, (사)전태일의 친구들 이사, 목재 교육 전문가로 목공 인문학 강의 활동을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