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발하듯 터지고 만 봉오리, 그것은 꽃다발이 됐다
우리지역 각양각색 문화예술인 ⑦정일성 홍북커피 대표 ‘일단 하는 것’의 중요성 30여 년간 미술 강사로 활동하다 불쑥 개인작에 대한 욕구가 치솟은 그는 자신이 이름 지은 최초의 기법으로 작품 활동에 매진 중이며 오는 5월 개인전을 앞두고 있다.
[홍주일보 홍성=이정은 기자] 고등학교 입시 미술을 시작으로 서양화를 전공한 정일성 씨는 3년 전부터 홍북읍행정복지센터 앞에서 홍북커피를 운영하며, 공간 한편에 마련된 화실에서 개인 작업을 이어오고 있다.
그는 대학 졸업 후 30여 년간 대전과 서산 등 여러 지역에서 입시 미술을 가르치는 미술학원 강사로 근무했으며, 내포신도시에서 미술학원을 운영하기도 했다. 주거지를 내포로 옮기게 된 정 씨는 어느 날 대학 후배이자 후배 강사로 알게 된 지인의 카페인 홍북커피에 들르게 됐다.
“작업실도 딸려있고 카페를 참 예쁘게 잘 꾸며놨더라고요. 시간이 좀 흐르고 후배가 카페를 정리한다고 하길래 정말 갑자기, 욕심이 생기면서 인수하게 됐어요. 그 당시 직업에 대한 회의감이 좀 컸거든요.”
큰 꿈이나 뚜렷한 목표 없이 그저 미술이 재미있어 미대에 입학했다는 정 씨는 졸업 후 미술 강사로 학생들을 가르치며 어느 정도 채워지는 대리만족으로 인해 개인 작품에 대한 갈증이 크지 않았다고 한다.
“갈증이 없진 않았어요. 그러나 크지도 않았어요. 미술 강사라는 직업이 어떤 대체재 같은 역할이 됐던 것 같아요. 강사를 30년 했고 즉, 내 작품에 대한 욕심이 없는 상태가 매우 길었죠. 속으로 나는 화가는 아닌가 보다 하는 생각을 하기도 했고요. 그런데 불쑥 ‘나는 원래 꿈이 있던 사람인데, 죽기 전에 하고 죽어야겠다’란 생각이 들었어요. 이 작업실 딸린 카페를 인수해야겠단 욕심을 가지면서부터요.”
그는 미술학원 운영이 순탄치 않던 상황에서 홍북커피 인수를 염두하며 오래간 숨어있던 옛꿈을 발견하게 된다.
“막상 제 작품을 하려니 뭘 그릴지 몰라서 처음엔 일단 끄적였어요. 기술적 능력은 분명 있는데 무엇을 주제로 어떤 색을 써야 할지 몰라 오래 헤맸죠. 6개월이나 1년 정도면 내 스타일을 찾겠지 예상했지만 늘 뭔가 부족했어요. 이때 허기를 많이 느꼈죠.”
그러던 중 그는 전업 작가 문선미 씨를 만나 방향성을 찾게 된다. 지난해 가을 문 씨는 그의 정물화 ‘꽃병’을 보고선 이 스타일로 다작을 해보라 조언했고, 이후 정 씨는 ‘꽃’을 주제로 파고들기 시작했다.
“최근작은 좀 모인 느낌이 있어요. 전작들은 문장력이 없어 단어만의 나열처럼 느껴졌다면, 지금은 짧은 문장 정돈 된 듯해요. 한 권의 책은 아니더라도 짧은 글 정돈된 것처럼 느껴져요.”
정 씨의 작품은 재료부터 남다르다. 철망(스테인리스 메시)에 오일 스틱(고체 유화)을 사용하며, 순서 또한 일반 그림과는 반대로 진행된다. 먼저 철망의 앞면에 아크릴 펜으로 스케치를 한 뒤, 오일 스틱을 이용해 뒷면에서 색을 부여하기 시작한다. 정 씨의 말에 따르면 이러한 기법은 최초이며 때문에 명칭 또한 없어 그에 의해 ‘피어스 페인팅(Pierce painting)’이라 이름 지어졌다.
촘촘히 뚫린 격자로 이뤄진 철망의 틈새를 오일 스틱이라는 작대기가 분해되면서 동시에 채워지고 입체감 있는 그림이 완성되는 것이다. 그리고 뒷면엔 과정으로써 남겨진 얼룩만이 남게 된다.
“이 기법은 뒷면에 어떤 색을 얼마만큼 쓰느냐에 따라 앞면에서 보이는 조형이 달라집니다.”
이어 정 씨는 이러한 기법을 고수하는 이유를 보존성과 독창성 때문이라고 말했다.
“고체 물감을 이용해 덩어리 감이 생기게끔 만든 작품이 최초이다 보니 사례가 없어 이 부분은 잘 모르겠지만, 철망은 스테인리스 소재라 녹이 안 슬어 보존력이 좋아요. 그리고 남들이 시도해 본 적 없는 기법이라는 점, 이 기법 특유의 수놓은 듯한 질감이 가장 큰 매력이에요.”
정 씨의 작업 방식은 정확한 구상 없이 큰 틀과 방향만을 정하고 일단 시작하는 것이다. 과정에서 사색할 뿐 후퇴는 없다. 즉, 추가만 있을 뿐 수정은 없다.
“하면서 느끼는 것들이 있어요. 늘 의구심과 불안감이 동반되지만 하다 보면 결국 되더라고요. 이렇게 끝까지 완성해 보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하나를 완성했을 때마다 느껴지는 만족감도 그렇고 완성작이 제게 주는 긍정적인 방향의 생각들이 있거든요. 다른 그림들은 덧칠해 가릴 수 있으나, 제 작품은 기법 특성상 수정은 안 되고 추가만 가능해요. 뒤돌아보지 않고 직진만 하게 되는 거죠.”
정 씨는 물감이 굳는 데 소요되는 시간 탓에 동시다발적으로 작업하고 있으며, 카페를 운영하며 일주일에 평균 한 작품을 완성하고 있다.
“작품의 크기보다는 색깔의 가짓수에 따라 시간이 결정돼요. 팔레트에서 조색해 페인팅하는 게 아니라 스틱 자체로 써먹는 거라 보통의 그림들과는 다르죠. 간혹 색을 섞기도 하지만 조색 효과와는 전혀 다르고요.”
정 씨는 2023년 개인전과 2024년 개인전에 이어 오는 5월 13일 충남도서관 갤러리에서 개인전을 앞두고 있으며, 카페 운영과 개인 작업뿐만 아니라 성인반 취미 미술 수업 또한 진행하고 있다.
“숨어있어 흐리멍덩했던 옛꿈을 발견하게 되면서 일단 ‘하다’ 보니까 재룟값을 벌어야겠단 목표가 생기고, 기법이 생기고 거기에서 텍스쳐가 생겨나고, 또 다른 목표로 이어지고 점점 꿈이 커지더라고요. 이제는 제 이름과 작품이 알려졌으면 좋겠어요.”
오일 스틱은 철망의 뒷면을 입구로, 철망의 앞면을 출구로 제 몸을 으스러트리며 색을 나타낸다. 관통하면서 동시에 채워지는 방식으로 부각되며 이윽고 하나의 형상으로써 완성되어 감에 따라 아름다움이 점차로 발산되는 것이다. 이러한 과정은 인간의 탄생과 죽음을 떠오르게 하고 그사이에 놓인 인생(과정)을 철학하게 한다. 역순으로 완성된 작품은 중요한 무엇을 담고 있는 듯 느껴지고, 어디가 가려운지도 모르고 벅벅 긁어대는 무지몽매함만이 또렷할 뿐이다. 아직 과정에 있어서 그런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