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의 빈자리》를 읽다가

2025-04-10     주호창 <광천노인대학장>
주호창<br>광천노인대학장,

며칠 전에 우연히 20여 년 전 사서 읽었던 《아내의 빈자리》라는 책이 책꽂이에서 눈에 띄어서 읽다가 도중 멈췄다. 아마도 전에는 무심히 읽었을 테지만, 이제는 나의 심정과 같은 처지이기에 가슴 조이며 읽다가 눈시울이 뜨거워 계속 읽을 수가 없어 결국 책을 덮었다.

이 책은 아내의 부재로 인해 벌어진 가족의 일상을 담담히 그려냈다.

어느 날 아빠가 출장으로 늦게 돌아온 날, 아이는 “가스레인지는 켜지 말라”는 아빠의 당부를 지키기 위해 보일러 온도로 데운 물로 컵라면을 끓였다. 아이는 라면이 식지 않도록 이불 속에 넣어뒀지만 이를 깜빡 잊었다. 집에 돌아온 아빠는 피곤한 몸으로 침대에 앉았다가 라면 국물이 퍼져 바지를 버리게 됐고, 화가 나 아이를 혼냈다. 그러나 아이가 “아빠를 위해 라면을 준비했다”고 울먹이며 말하자, 아빠는 가슴이 먹먹해져 화장실에서 눈물을 쏟았다. 이 장면은 아내의 빈자리로 인해 서툴지만 서로를 생각하는 가족의 마음을 잘 보여준다.

그리고 또 어느 날 마을 우체국에서 전화가 왔는데 “댁의 아들이 수신자 주소는 하늘나라로 적혀 있어 배달을 못 하니 찾아가라”는 말이었다. 그것도 100여 통이나 되는 또박또박 쓴 편지였다. 아빠가 “왜? 엄마한테 편지를 썼느냐?”고 물으니 엄마가 보고 싶은데 꿈에도 안 나타나서 썼다고, “왜? 한꺼번에 보냈느냐?”하고 물으니 어렸을 때는 키가 작아서 우체통에 넣을 수 없어서 모아 뒀다가 지금은 조금 커서 넣을 수가 있어서 한꺼번에 넣었어”라고 말한다.

그 천진난만한 어린 아들의 나지막하게 대답했을 그 말에 나도 또 소리 없이 울었다. 도대체 아내의 빈자리는 언제쯤 채워질 수 있을까.

한편 생각하면 사람이 한 번 태어나서 90년이나 100년쯤 살다가 온 순서대로 차례차례 간다면 그런 슬픔은 없으련만, 부질없이 어리석은 생각의 나래를 펼치며 올 때는 순서가 있어도 갈 때는 순서가 없다는 말을 다시 음미해 본다.

이 지구상에 많은 사람에게 예고도 없이 갑자기 찾아오는 죽음의 검은 그림자 때문에 부모나 자식을 잃은 그 빈자리에 침통해 있는 수많은 이들의 괴롭고 힘든 처절한 삶을 누가 무엇으로 위로를 한단 말인가!

그러나 조물주의 섭리와 인간들의 생각에는 차이가 있어서 사람들의 마음 같아서는 작은 밤송이와 큰 호박을 비유할 때 튼튼한 밤나무에는 큰 호박이 달리고 연약한 호박 줄기에는 작은 밤송이가 달리면 좋으련만.

인간들의 마음대로 한다면 도리어 이 세상은 무질서하고 운행이 어려워질 것이며 “구름은 바람이 있어야 움직이고 사람은 사랑이 있어야 움직인다”는 말도 있다.

빈 땅은 메워야 평지가 되고 공허한 마음은 사랑으로 덮어야 평온을 찾을 수가 있기에 슬픔을 머금고 홀로 긴 여정을 걸어가야 하는 것이 인생이 아닌가.

사람의 일생은 서로 남남이었던 이들이 예식장에서 하얀 드레스를 입고 천사처럼 화장을 한 순결한 신부가 늠름한 신랑을 만나 부부로 새 출발을 하는데 그 순간부터 험한 인생 파도와 싸워야 하는 도전이 시작되는 것이다

한 쌍의 부부가 탄생하는 동시에 부부간에는 지켜야 할 4가지 의무가 있는데 첫째가 동거(同居)로 언제나 한집에서 같이 사는 것이고, 둘째는 협력(協力)으로 힘을 합해 서로 도와주는 것이라고 한다. 셋째는 부조(扶助)로 힘들 때 서로 붙들어 주고 인정해 주며 칭찬하고, 넷째는 지조(志操)로 약속한 대로 상대를 바꾸지 않고 일편단심으로 사는 것이라 했다.

그러나 현대는 결혼관의 변화로 이혼이나 졸혼이 등장해 서로가 남남처럼 사는 경우도 있지만 결혼의 본질은 창조의 질서대로 존속돼야 하지 않을까!

결국 부부의 행복은 꾸준한 정성의 산물이고 피땀으로 쌓아 올릴 공든 탑이며, 인내와 사랑으로 조각된 기념비요, 부부는 화음으로 연주하는 이중창과 같다.

남편이나 아내의 빈자리는 아무나 채울 수가 없기에 조강지처라는 말의 진미를 새삼 느끼게 되며 빈자리에 있는 사람들에게는 이것이 너무도 그리운 말이 아닐까!

<이 칼럼은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