싸이의 '젠틀맨'을 보며

2013-04-27     권기복(홍주중 교감, 시인/극작가)

대한민국의 정치, 경제, 외교, 국방 등 총체적으로 우울하던 2012년 하반기에 싸이의 '강남스타일'은 유일하게 신바람을 일으킨 소재였다. 한류 바람을 전 세계에 휘몰아치게 하고, '오빤, 강남스타일!'을 전 세계인이 외치게 만들었다. 기존의 한류 영향도 있었겠지만, 색깔이 달랐다. W그룹 또는 G그룹 등의 인형 같은 몸매나 영어 반, 우리말 반으로 뒤섞여 의미를 모르는 가요가 아니었다. 싸이 가수에게는 미안한 말이지만 몸매나 인물로 보아도 한국 남자의 평균에 못 미칠 것이다. 그렇다고 세계 사람들이 한국말을 잘 알아들어서 노래 가사에 매료된 것도 아니다. 다만, 듣다보면 저절로 몸을 흔들게 만드는 음원과 독특한 말춤에 매료된 것이다.

적절하게 섹시하고, 파괴적인 장면도 그 독특한 맛을 가미해주고 있다. 한국인으로 한국 땅에서 활동하면서 미국의 빌보드차트 2위를 5주 이상 차지한 것도 시기상조라고 할 정도로 획기적인 일이다. 세계 사람들이 싸이 열풍에 빠졌는데, 어찌 같은 한국 사람이 덜 할 수 있겠는가! 싸이의 후속곡에 대한 관심은 그만큼 뜨거울 수밖에 없었다. 한국 사람이라면 누구나 기대 반, 걱정 반이었다. 그런 기다림 속에 '젠틀맨'이 나왔다. 정말 반갑게 기다린 것은 한국 사람만이 아니었나 보다. 발표한 지 일주일 만에 뮤직비디오 인터넷 접속이 1억 5000만 유트브를 넘었다고 한다.

이는 유례가 없는 접속률이라고 한다. 지구촌은 또다시 싸이 열풍에 빠지고 있다. 불과 1주일 만에 빌보드차트 등에도 상위 랭킹에 올랐다고 한다. 그저 대단하고, 대견하다고 혀를 내두를 수밖에 없을 지도 모른다. 매스미디어 시대를 맞이한 이후, 매스컴의 주인공은 영어권을 비롯한 알파벳 문화권 사람들뿐이었다. 그들이 세계의 문화를 좌지우지했고, 유통망도 그들의 손에 달려 있었다. 이는 아직까지 그러한 상황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북한 및 재외 동포들을 다 포함하여 1억 명이 안 되는 우리말로 된 가요가 전 세계에서 애창되고 있다. 가수로서 싸이가 세계의 정상에 우뚝 서는 모습이 바로 눈앞에서 맴돌고 있다.

그러나 필자는 '젠틀맨' 뮤직비디오를 보고 실망을 금치 못했다. 대히트를 친 후에 후속곡의 부담이 어려울 수밖에 없고, 금세 또 다시 완전히 색다른 창조물을 내놓는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는 것도 이해할 수 있다. 비록 대중성에 가장 큰 기반을 두는 것이 대중가요라 하지만, 거기에도 그에 맞는 품격이 있어야 한다.'강남스타일'은 가사 면에서 좀 더 한국적이고, 해학과 풍자가 돋보였다. 또한 말춤이라는 독특한 무대가 지구촌을 휘어잡게 만들었다. 그에 비하면 '젠틀맨'은 세계 시장을 겨냥한 것이라 하지만, 너무나 외색적이다. 게다가 놀부에 상응하는데, '놀부로서의 젠틀맨'이 와 닿지 않는다. 무대는 기존의 말춤에 브아걸의 시건방춤을 도입했다고 하는데, 두 가지 춤의 특색은 죽고 저속함만 남는 것 같아 안타까웠다. 차라리 비보이의 경쟁적 양상을 도입하여 재구성하였더라면 어떨까 싶었다.

이번에 KBS가 "방송 부적격 판정"을 내린 것에 대해 민주당 허영일 부대변인이 "뮤직비디오를 전체 맥락에서 파악하지 않고 특정한 장면만을 문제 삼는 것은 과도한 조치"라며 "전 세계의 웃음거리가 될 수도 있는 고루한 결정"이라고 한 것이나 YG 엔터테인먼트의 "박근혜 대통령께서도 싸이씨의 젠틀맨을 창조경제의 모범이라고 평가까지 한 마당에 KBS가 70년대에나 있을법한 심의 기준으로 뮤직 비디오를 재단하는 것은 과유불급"이라고 비난한 것에 대해 필자는 바람직하게 여기지 않는다.

언론 독재 시절에는 연예인의 활동을 매장시킨 것이지만, 이번에는 KBS의 자체 심의에 의해 방송윤리규정에 맞지 않다는 것뿐이다. 필자는 오히려 대통령께서 어떤 근거로 싸이의 젠틀맨을 창조경제의 모범이라고 평가한 것인지 궁금하다. 어쨌든 간에 싸이의 '젠틀맨'이 세계 가요계에 회오리바람을 치고 있다. 필자도 KBS가 신중한 판정을 내렸기를 빌며, 잘 나가기를 바라는 마음은 간절하다. 그러나 홍콩의 느와르 영화가 잠시 세계 영화계에 센세이션을 일으키고 사라진 것처럼 되지 않기를 바란다.

K-pop이 세계 가요계를 오래도록 정상에 머물기 위해서는 모든 국민의 관심과 비판적 사고를 바탕으로 한 재창조정신이 요구된다. 우리 자체의 비판은 "방송 부적격 판정이라는 권위적인 잣대보다는 젠틀맨의 경제 효과, 국위 선양, 표현의 자유문제 등을 총체적으로 고려하길 바란다."는 충고 이전에, 이를 실현하기 위해 꼭 필요한 통과의례와 같다는 생각을 먼저 해야 한다. 앞으로 더 깊은 고민을 통해 '강남스타일'과 '젠틀맨'을 초월하여 제3집, 4집 앨범이 나올 때마다 지구촌이 더욱 싸이에게 열광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