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대째 내려오는, 호박 먹인 ‘추어 어죽’ 잡숴보셨슈?
끓일수록 상승하는 구수한 감칠맛의 비결, 오로지 미꾸라지로만 끓였다! 어머니 손맛 이어받아 2대째 운영되고 있는 35년 차 지역 맛집을 소개한다.
[홍주일보 홍성=이정은 기자] 광천역에서 광천오거리로 향하는 길목, 죽 늘어선 상점들이 완만한 능선처럼 부드러운 곡선을 이루며 자리 잡고 있다. 그중 유난히 낮은, 파란 함석지붕 앞에 사람들이 붐빈다. 이쑤시개를 입에 문 사내들, 허리 굽은 파마머리 할머니, 단정한 차림의 회사원들, 언뜻 기자와 또래로 보이는 젊은 이들까지 다양한 연령대가 모인 이곳 ‘광천원조어죽(대표 엄기중)’은 1990년부터 35년째 장사를 이어오고 있다. 불현듯 제비 한 쌍이 날아간다. 노란 부리를 오므렸다 펼쳤다 반복하며 여기에서 저기로, 나무에서 처마로 바람을 지휘하듯 날아다닌다. 간간이 들려오는 시장 상인들의 목소리와 오가는 사람들의 발걸음이 조용한 시골 마을에 활기를 더한다.
최근 부쩍 올라간 기온 탓에 가게 안은 에어컨이 가동되고 있다. 가만히 앉아, 조만간 사라질 보송한 추위를 느낀다. 주문한 ‘추어 어죽’이 나왔다. 배추와 무로 담근 김치 두 가지와 오이고추 그리고 가스버너 위에 나지막한 전골냄비가 놓인다. 엄기중 대표가 다가와 설명한다.
“국수가 바닥에 안 들러붙게 가끔씩 국자로 저서주셔유. 국수가 퍼지면 고때 잡수시면 돼유.”
불그스름한 국물이 끓어오른다. 가장자리에 보글보글 거품이 일고, 구수한 내음이 피어오른다. 이따금 국자로 저어준다. 동시에 냄비에 담긴 재료를 파악한다. 중면, 수제비, 밥알, 채썬 애호박, 깻잎, 부추, 서서히 국물의 농도가 무거워진다. 면발 몇 가닥을 들어 올려 호로록 씹어본다. 적당하게 쫄깃한 때, 불을 약하게 줄여놓고 드디어 식사가 시작된다.
급한 나머지 먼저 맛봤던 국물이 음?에서 음~으로, 의심의 기호에서 만족의 기호로 바뀌었다. 면발은 쫄깃하고 수제비는 부드럽다. 육수가 깊게 스민 깻잎, 부추, 애호박 등의 채소는 지지 않고 초록의 맛을 퍼트린다. 여기에 고추장 모자를 슬쩍 덮은 오이고추를 한 입 베어 물면, 싱그러운 여름이 더해진다. 시원한 공기 덕에 뜨거운 음식 앞에서도 쾌적한 식사가 이어진다. 어느새… 냄비 안은 빗물 고인 웅덩이마냥 야트막해지고, 먹는 이의 배는 높이 부풀어 올랐다.
“밥 하나 볶아드려유?”
망설이는 ‘척’하다 긍정한 뒤, 양손으로 배를 두들긴다. 밥 하나 더 들어갈 곳은 있지 않은가, 있어야 한다. ‘볶음밥’은 없는 공간도 만들어 내는 그런 음식이다. 흡족한 식사를 마쳤다.
‘광천원조어죽’은 다수의 방송에도 소개돼 지역민들뿐만 아니라 타지 손님들까지 불러 모으고 있는 맛집으로, 중소벤처기업부에서 우수성과 성장 가능성을 높게 평가받아 ‘백년가게’로 지정되기도 했다. 지역의 단골손님부터 타지의 방문객들까지, 한 번 맛보면 계속해 찾게 되는 광천원조어죽만의 비결은 무엇일까?
“보통 어죽은 잡어로 끓이는디 저희는 오로지 추어, 미꾸라지로만 끓여유. 그리고 미꾸라지한티 늙은 호박을 멕여유. 그러믄 미꾸라지가 며칠 동안 호박을 먹고 배설하면서 민물고기 특유의 흙내가 싹 빠지쥬. 그러고 미꾸라지 삶을 때도 늙은 호박을 넣어유. 이 방법은 어머님이 장사하실 적부터 쭉 그렇게 혔는데, 우연히 농사지은 늙은 호박을 미꾸라지한테 멕여봤더니 괜찮길래 지금껏 같은 방식으로 하고 있는 거유.”
엄기중 대표의 어머니, 김동춘 1대 대표는 1990년 지금의 가게와 멀지 않은 곳에서 처음으로 음식 장사를 시작했다. 당시엔 하나의 음식만을 전문으로 파는 식당보다는 백반·설렁탕·육개장·어죽·소머리국밥 등 다양한 음식을 판매하는 곳이 흔했다. 시간이 흐르면서 손님들께 가장 반응이 좋은 메뉴만이 살아남았고, 현재 광천원조어죽의 메뉴판에는 어죽을 비롯한 6개의 메뉴가 남아있다.
지금으로부터 9년 전, 경기도 부천의 한 테마파크에서 마케팅 팀장으로 근무하던 엄기중 대표는 문득 어머니가 만드시는 ‘추어 어죽’의 희소성을 깨달으며 귀향을 결심했다.
“당시 ‘노포’가 유행할 때였거든유. 관련된 어떤 방송을 보다가 어머니가 고향서 장사를 하고 계시니께 문득 생각이 난 거쥬. 우리 집만의 특색이 있으니께, 비전이 있다고 봤슈. 그리고 제가 어머니 음식 맛을 아니께 확신이 있었쥬.”
엄 대표는 옛 방식 그대로를 고수하고 있는 어머니의 조리법과 비법을 고스란히 전수받은 것은 물론이고, 본인의 전직을 살려 블로그를 운영하는 등 마케팅에도 공을 들였다.
“제가 내려오기 전에는 가게 규모가 훨씬 즉었슈. 실내도 터서 넓히고 주방도 새로 삭 정비했슈. ‘호박 먹인 추어 어죽’이라는 게 다른 곳엔 없으니께 이걸 콘텐츠로다가 홍보해야겠다고 생각했쥬.”
광천원조어죽은 어머니께서 헌신해 지켜온 식당이자 삶의 터전이었으며 지켜내고 싶은 추억의 장소였다. 이에 엄기중 대표는 주변의 부정적인 반응에도 불구하고 어머니의 손맛과 희소성 높은 방식에 믿음을 갖고 식당을 점차 발전시켜 나갔다. 시골의 정겨운 분위기는 유지하되 쾌적한 실내 환경을 꾸리고, 손님들과 살갑게 소통하는 등 서비스 부분에도 신경 쓰고 있다.
“저는 항상 어르신 손님들과 말씀을 많이 나눠유. 단골손님들 오시면 그렇게 반갑고 가족 같고 그래유.”
광천원조어죽은 메뉴 특성상 10~20대의 젊은 세대보단 최소 30대부터 나이 지긋한 어르신들이 주 고객이며, 인기 메뉴는 단연 어죽과 소머리 수육이다.
“어죽은 기성세대들이 많이 찾으시구유. 어죽 못 드시는 분들이 제법 계신데, 그런 분들은 소머리 수육을 많이 잡숴유. 아무래도 저희 집은 손님 연령대가 높기 때문에 자극적이지 않은 부드러운 맛을 추구하쥬. 재료도 무조건 국내산만 써유. 김치도 직접 다 담그구유. 어제도 깍두기 담겄슈.”
추어 어죽에 들어가는 미꾸라지는 전라남도 장흥에서 올라오고, 나머지 재료들은 모두 광천 시장에서 장을 보고 있다.
“요즘엔 보통 추어탕 집이나 어죽 집 가면 큰 솥에다 미리 끓여놨다 퍼주는데, 저희 집은 주문 들어오면 그때 미꾸라지를 갈아서 사용해유. 그래서 테이블마다 끓여서 드시게끔 하는 거유. 그러니께 끓일수록 맛이 우러나오쥬. 즉석떡볶이랑 비슷하다고 보시믄 돼유.”
광천원조어죽의 주방은 새벽 다섯 시면 불이 켜진다. 핏물 뺀 소머리를 건져 한 차례 삶아낸 뒤, 찬물에 깨끗이 헹구고 다시금 물을 가득 받아 푹 끓여낸다. 이 과정을 통해 잡내와 불순물은 사라지고, 깔끔하고도 깊은 육수가 만들어진다. 태양이 어슴푸레 세상을 밝히고 길가에 사람들이 오갈 때까지, 육수는 은은히 끓어가며 뽀얗게 우러난다. 이렇게 우러난 진국은 소머리 국밥에도 쓰이지만, 추어 어죽의 육수로도 쓰인다. 이점 또한 다른 어죽과의 차이점이라 할 수 있다. 냄새에 민감한 기자는 광천원조어죽을 먹으며, 한 오라기의 잡내도 느끼지 못했다. 된장의 구수함이 지배적이며, 끓일수록 건강한 감칠맛이 솟아난다. 전체적인 식감은 마치 뜨거운 솜사탕이라도 먹는 듯 부드러운 인상을 남겼다.
◆광천원조어죽 메뉴
△추어어죽(2인이상 주문가능) 9,000원 △소머리수육 小20,000원 中30,000원 大40,000원 △소머리국밥 中10,000원 大13,000원 △추어튀김 小15,000원 中20,000원 大25,000원 △돼지족발 小13,000원 大25,000원 △돼지족탕 11,000원
·주소: 충남 홍성군 광천읍 광천리 178-6
·영업시간: 오전 11시 ~ 오후 8시 | 매주 월요일 정기휴무 | 쉬는시간 14:30 ~ 17:00
·전화번호: 0507-1400-257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