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지는 꿀벌이 말하는 것
장마가 오기 전 집 주변 풀을 깎았다. 풀 위로 밤꽃이 떨어지고 있다. 우리가 주로 보는 밤나무 꽃은 수꽃이다. 수꽃은 떨어지고, 암꽃이 여름내 몸을 키워 차례상에 오르는 밤이 된다. 아까시에 이어 밤꽃까지. 수분을 마치면 꿀벌도, 꽃도 임무가 끝난다. 벌꿀을 거둘 때가 됐다. 가을걷이를 하는 논밭과 다르게 꿀벌은 지금이 한 해 농사를 갈무리하는 시기다.
마당에 벌을 둔 지 사 년 차. 지난 연말 느낌이 왔다. 다가올 새해(올해)야말로 양봉 원년이라고. 잘될 것 같았다. 아홉 개 벌통 모두 일벌 가득했다. 올해 꿀 농사가 잘되어 감당 못 할 만큼 꿀이 넘치면 어쩌나. 달달한 꿈이었다. 봄이 되어 살아남은 벌통은 네 개뿐이었다. 유독 따듯했던 겨울이 독이 됐다. 봄이 왔으나 어려움은 끝나지 않았다. 이번엔 추위였다. 곤충은 기후 변화에 민감할 수밖에 없다. 농사도 마찬가지다. 낮은 기온으로 볍씨가 늦게 트거나 아예 트지 않은 모가 많다고 했다.
꿀벌은 알면 알수록 흥미로운 곤충이다. 우선 노란 털복숭이의 외모가 호감을 주는데, 우리와 같이 사회를 이루는 모습은 특히 더 신기하다. 꿀벌이 속한 벌목 곤충은 지구상에 십만여 종 넘게 존재한다. 곤충은 영장류보다 더 성공한 생물체다. 학자들은 외계에 생명체가 있다면 곤충일 것이라고도 한다. 특유의 적응력으로 번성을 해냈다. 곤충 중에서도 벌과 딱정벌레, 나방, 파리가 주류를 이룬다. 이 네 가지 곤충이 특별히 성공할 수 있었던 이유는 식물과 공진화한 덕이 크다. 수분매개다. 곤충과 식물은 서로를 자극해 다양한 종을 만들었다. 꿀벌만이 아니라 각 곤충 종 모두 자신만의 이야기를 갖고 있다. 곤충들의 진화, 생활사는 흙 위에 상영 중인 넷플릭스다.
꿀벌이 사라지는 시대라고 한다. 하지만 절멸을 향해 달리는 것은 꿀벌만이 아니다. 곤충 총량은 계속해서 감소하고 있다. 인간이 관리하는 꿀벌에까지 피해가 오고 나서야 관심을 가지게 됐다. 아니라고 생각할 수 있다. 지긋지긋한 해충과 특정 곤충이 폭증하는 사례가 반복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것은 생태계가 생물다양성이라는 균형을 잃은 부분적 현상에 가깝다.
“곤충의 감소는 이 작은 동물들을 사랑하며 그 자체로 존재 가치가 있다고 여기는 우리 같은 사람들에게도 무척 슬픈 일이지만, 인류의 삶도 위협한다. 우리의 작물을 수정시키고, 배설물과 낙엽과 사체를 재순환하게 만들고, 토질을 건강하게 유지하고, 해충을 방제하는 등의 온갖 일들에 곤충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곤충이 적어질수록 우리 세상도 서서히 멈출 것이다. 곤충이 없다면 세상은 제 기능을 할 수가 없다.”(12쪽)
책 《침묵의 지구》는 곤충을 사랑하는 과학자가 인류에게 보내는 편지이자, 보고서다. 저자 자신의 30년 연구를 바탕으로 곤충이 줄어든 문제의 심각성을 알린다. 지구 생물들에게 곤충이 중요한 이유, 그러한 곤충이 줄어들고 있는 증거, 감소의 원인을 밝히고 우리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를 말한다. 각 챕터가 머리, 가슴, 배로 떨어진 딱딱한 교과서가 아니라 살아있는 이야기처럼 곤충을 이해할 수 있다. 저자는 생물들이 우리와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지 명쾌하게 말한다. 아이러니하게도 인류 식량생산 체계가 인류 생존 기반을 파괴하고 있다.
낮은 출산율은 한국 사회에 ‘소멸론’ 화두를 던졌다. 《침묵의 지구》는 국가보다 더 큰 생명계의 화두를 우리에게 던진다. 현재 지구상에 있는 식물 90%는 꽃을 피우는 식물이다. 현화식물은 수분매개 곤충이 있어야 재생산이 가능하도록 진화해 왔다. 공진화의 단점은 한쪽이 사라지면 다른 한쪽도 무너진다는 데 있다. 곤충이 사라지는 것은 조류, 양서류, 어류가 지탱되지 못하는 피라미드형 먹이사슬 정도의 일로 끝나지 않는다. 책을 덮으며 유기농 특구에 살고 있는 것에 다시 한번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물론 넓은 바다에 겨우 한 바가지일 뿐이다. 그럼에도 여기서 시작해 가야 한다. 모두가 각자의 자리에서, 그리고 또 함께 ‘아직 남아있는 시간’ 동안 무엇을 하면 좋을 지 이 책을 읽으며 생각해 보면 좋겠다.
<이 칼럼은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