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스피싱, 왜 끊이지 않을까?”
“검찰청입니다. 귀하의 계좌가 범죄에 연루됐습니다.”
“대출이 승인됐는데, 신용등급 향상을 위해 보증금이 필요합니다.”
“자녀분이 사고를 당했습니다. 당장 합의금이 필요합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누군가는 이처럼 긴박한 보이스피싱 전화를 받고 있다. 한 번의 전화로 노년의 평생 저축이 사라지고, 청년의 사회 첫걸음이 무너진다. 보이스피싱은 더 이상 생소하거나 남의 일이 아니다.
보이스피싱(Voice Phishing)은 ‘음성(Voice)’과 ‘개인정보 도용(Fishing)’의 합성어로, 전화나 문자 등을 통해 피해자의 금융정보를 탈취하거나 금전을 편취하는 범죄다. 단어는 익숙하지만 수법은 나날이 정교해지고 있고, 그로 인한 피해도 갈수록 커지고 있다.
경찰청 통계에 따르면, 2025년 1월부터 3월까지 보이스피싱 범죄 발생 건수는 5878건, 피해액은 3116억 원을 넘어섰다. 이 기간 동안 하루 평균 약 65건, 시간당 2.7건에 달하는 범죄가 전국에서 발생한 셈이다. 이 통계는 신고된 건수를 기준으로 집계된 것이며, 실제 피해 규모는 이보다 훨씬 클 가능성이 높다.
이처럼 피해가 광범위하고 반복되는 이유는, 보이스피싱이 단순한 개인 범행이 아니라 철저히 조직화된 구조적 범죄이기 때문이다. 이 범죄는 해외 총책을 정점으로 콜센터 운영자, 계좌 모집책, 수거책, 전달책, 환전책 등으로 세분화된 피라미드형 범죄 구조를 갖는다. 전화를 걸어 피해자를 속이는 주체는 대부분 해외에 있으며, 국내에서는 말단 실행자들만 검거되는 일이 반복되고 있다.
범행 과정은 치밀하게 짜여 있다. 중국이나 동남아의 콜센터에서 피해자에게 접근하면, 국내 수거책이 현금을 받아 전달책에게 넘긴다. 전달책은 돈을 계좌에 입금하거나 환전책에게 넘기고, 환전책은 이를 외화로 바꾸어 보이스피싱 조직에 전달한다. 수거책이나 전달책은 대부분 ‘고수익 단기 알바’라는 광고에 속아 가담한 20~30대 청년들이다.
이러한 구조가 성립 가능한 이유는, 보이스피싱이 사람의 심리를 정교하게 이용하는 범죄이기 때문이다. 범죄자는 검찰이나 경찰, 금융감독원을 사칭하거나, 자녀의 사고를 빌미로 긴박한 상황을 연출한다. 피해자는 공포와 불안 속에서 판단력을 잃고, 순식간에 돈을 송금하게 된다. 더욱이 범인은 피해자의 질문에 친절하게 대응하며 신뢰를 유도하는데, 실제 금융기관 직원보다 전문적으로 느껴질 정도다.
문제는 이런 정교한 범죄에 비해, 법과 제도의 대응이 지나치게 느리다는 점이다. 수사기관이 검거하는 피의자는 대부분 범죄 조직의 말단이며, 범죄 전체 구조에 대한 인식 없이 가담한 경우도 많다. 반면 실질적인 지시자나 이익을 챙긴 핵심 인물은 대부분 해외에 있어 처벌이 어렵다.
피해자가 입은 손해를 회복하는 일도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 보이스피싱 피해금은 여러 계좌를 거쳐 인출되거나 세탁되며, 피해자가 상황을 인지하고 계좌 지급정지를 신청하더라도 이미 자금은 사라진 경우가 많다. 실질적인 환급 가능성은 극히 낮다고 볼 수 있다.
보이스피싱은 단순한 경계심 부족이나 개인의 실수로만 설명되는 범죄가 아니다. 이 범죄는 디지털 정보 격차와 심리적 취약성을 겨냥해, 사회 구조의 가장 약한 지점을 파고드는 조직적 범죄다. 특히 고령자, 저소득층, 청년층처럼 정보 접근성이 떨어지고 제도적 방어력이 약한 계층을 정조준한다는 점에서, 이 범죄는 단순한 사기를 넘어선 경제적 약자를 향한 구조적 범죄라고 해야 한다.
이제는 피해자에게 경각심만을 요구하는 것을 넘어, 이러한 범죄가 반복될 수밖에 없는 구조와 법·제도의 사각지대를 함께 들여다봐야 한다. 다음 칼럼에서는 보이스피싱의 말단 역할을 맡게 된 ‘수거책’ 청년들의 현실을 통해, 단순 가담과 공범 사이의 경계를 짚어보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