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갑산 품에 안은 청양, 돌이 많아 돌담과 돌담밭도 많네
충청문화유산 재발견, 옛담의 미학-돌담이 아름다운 마을〈5〉 청양 정산 내초리마을 돌담
칠갑산에 둘러 쌓인 청양, 정산·운곡·남양면 마을 주변 돌담 쉽게 발견돼
내초리마을 돌담, 자연석 강돌로 쌓은 돌담 대부분 허물어져 보존이 필요
돌담은 단순한 구조물을 넘어 마을 사람들의 생활과 밀접한 관계가 있어
자연석 돌담과 산간 특유의 계단식 다랭이논·돌담 밭 생태체험, 관광자원
충남 청양군 정산면은 청양군의 동부에 있는 면이다. 면적은 62.09㎢이며, 올해 5월 말 기준 인구는 3343명(1880세대)으로 법정리 16리, 행정리 21리 83반으로 구성돼 있다. 계봉산(鷄鳳山)·대덕봉(大德峰)·칠갑산(七甲山)·명덕봉(明德峰) 등의 봉우리에 의해서 동쪽은 목면(木面), 서쪽은 대치면(大峙面), 남쪽은 장평면(長坪面)과 청남면(靑南面), 북쪽은 공주시 우성면(牛城面)과 신풍면(新豊面)에 접한다. 산지가 첩첩해 잉화달천(仍火達川)과 치성천(致城川) 부근에서만 논농사가 이뤄질 뿐이며, 쌀 생산은 많지 않으나 예전에는 잎담배 재배를 많이 했다. 면소재지인 서정리(西亭里)에 정기시장이 열리며 교통은 청양·공주·부여 등과 연결돼 비교적 편리한 편이다.
칠갑산과 청양고추, 청양구기자, ‘콩밭 매는 아낙네야~’로 잘 알려진 청양은 중서부 내륙에 위치한 지역으로 ‘맑고 깨끗한 자연’과 ‘청정 농산물’ 그리고 ‘느림의 미학’이 살아있는 고장으로 잘 알려져 있다. 청양이라는 지명 자체도 ‘푸른 산’에서 유래됐을 만큼, 자연환경이 매우 빼어나고 맑은 공기와 청정한 물이 풍부한 지역이다. 청양의 대표적인 특산물은 단연 ‘청양고추’다. 매운맛이 강하면서도 감칠맛이 뛰어나 전국적으로 인지도가 높고, ‘청양’이라는 이름 자체가 고추의 한 종류처럼 쓰일 만큼 상징적인 작물이기도 하다. 이밖에도 청양구기자와 감, 밤 등의 농산물도 우수한 품질을 자랑한다. 또한, 청양 칠갑산은 등산객들에게 사랑받는 산으로, 사계절 내내 아름다운 풍경을 선사하며, 특히 가을 단풍과 겨울 설경이 매우 아름답다. 칠갑산 자락에는 칠갑산천문대, 천장호 출렁다리, 청양 알프스 마을 같은 관광명소들이 있어 가족 단위 여행객이나 자연을 즐기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인기가 높다. 문화적으로는 슬로시티로 지정될 만큼 삶의 속도를 늦추고 자연과 함께 살아가는 삶의 가치를 지향하고 있으며, 전통문화와 공동체 중심의 삶의 방식이 여전히 강하게 남아 있는 농촌지역이다.
■ 정산 내초리마을 돌담 ‘복원 필요해’
칠갑산에 둘러 쌓여있어서 그런지 청양은 칠갑산 자락의 주변 마을에서 돌담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정산면 내초리, 운곡면 신대리, 내직리, 남양면 봉암리와 백금리, 금정리, 비봉면 등이 그런 곳이다.
정산면 내초리(內草里) 마을의 경우 돌담이 잘 보존돼 있는 집들도 있지만 대부분의 집에 돌담이 있지만 허물어진 집들이 많은 것이 큰 아쉬움이다. 20여 세대에서 빈집도 6~7세대는 될 듯 싶은데, 동네의 절반 가까운 집에는 돌담이 있거나 무너졌지만 돌담의 흔적을 간직하고 있었다. 내초리 돌담은 주로 자연석 강돌로 쌓았는데, 집 주변을 자연석 돌담으로 완전히 감싸고 있었던 안순례(94세) 할머니는 “지금은 혼자 살고 있는데, 할아버지가 살았을 적에는 집을 완전히 둘러싸고 있었던 돌담이 참으로 멋있었어. 지금은 절반 가까이가 뭐여, 거의 다 무너져서 아쉽지”라고 연신 말하면서 “아들이 모처럼 집에 와도 돌담을 수리할 시간이 돼야지. 몇 년 전에 면사무소와 군청에서 나와서 무너진 돌담을 복구해 준다고 약속만 하고 감감무소식, 하세월이여”라며 “이 동네에 있는 돌담만 제대로 복구만 해도 멋있는 동네가 될 텐데 말여~, 부여에서는 돌담 보존에 신경을 써 준다고 하던데…”라며 아쉬운 심정에 말끝을 흐렸다.
청양 정산면 내초리는 정산면에서도 깊은 산골에 속했다. 내초리 마을에 돌담이 많은 이유는 이 지역의 지형적 특성과 오랜 생활방식, 그리고 문화적 배경에서 비롯됐다는 분석이다.
내초리는 산과 계곡이 가까운 산간지형에 위치해 있어, 예로부터 농사를 짓기 위해 밭이나 집 주변의 돌을 제거해야 했다. 그렇게 모인 돌은 그냥 버려지는 것이 아니라, 실용적인 용도로 재활용됐는데, 대표적인 예가 바로 돌담이다. 이 돌들은 집을 둘러싸거나 밭의 경계를 짓는 데 사용됐고, 흙이나 나무보다 튼튼하고 오래가는 재료로 여겨졌다. 또한 돌담은 단순한 구조물을 넘어 마을 사람들의 생활과 밀접한 관계가 있었다. 외부의 바람이나 짐승을 막아주는 역할뿐 아니라, 이웃과의 경계를 자연스럽게 형성해주는 기능도 했다. 당시 농촌 사회에서는 이처럼 돌담을 쌓는 일이 혼자만의 작업이 아니라 마을 사람들이 함께 도우며 공동체 문화를 실현하는 활동이기도 했다.
이처럼 실용성과 공동체적 의미를 지닌 돌담은 시간이 흐르며 내초리 마을의 고유한 경관으로 자리 잡았다. 지금은 그 돌담길이 지역의 전통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요소가 됐지만 인구감소와 소멸시대, 사람들이 떠나고 노령화되면서 관리가 잘되지 않아 돌담이 무너진 집들이 많다.
돌담의 복원은 아름다운 농촌 풍경의 일부로 관광객들의 눈길을 끌고 있기도 하다. 따라서 자연석 돌담의 원형복원이 절실히 필요한 시점이라는 것이 동네 주민들의 바람이기도 하다.
결국, 내초리 마을에 돌담이 많은 것은 단순히 돌이 많아서가 아니라, 자연환경에 적응하며 살아온 사람들의 지혜와 공동체 문화, 그리고 그 속에서 형성된 전통적인 미의식이 결합된 결과라 할 수 있다.
■ 청양의 돌담과 돌담밭, 공동체 전통유산
청양군은 산이 많고 돌이 많은 지형적 특성으로 인해 예로부터 돌을 활용한 전통적인 농업 문화가 발달한 지역이다. 청양의 여러 마을에서는 돌을 이용해 밭의 경계를 만들거나, 집이나 골목길을 따라 돌담을 쌓는 풍경이 지금까지도 남아 있어 이 지역만의 독특한 경관을 이루고 있다. 특히 정산면 내초리 마을은 마을 전체가 돌담으로 둘러싸여 있는 듯한 전통적인 경관을 간직하고 있는 곳으로 유명하다. 이곳의 돌담은 단순한 경계나 구조물이 아니라, 오랜 세월 마을 주민들이 자연 속에서 노동과 지혜로 쌓아 올린 삶의 흔적이라 할 수 있다. 돌담길은 자연석을 그대로 쌓은 형태가 많으며, 시멘트를 사용하지 않고 돌끼리 균형을 이루도록 정성껏 쌓은 방식이 특징이다.
또한 운곡면의 위라리와 신대리, 그리고 장평면 일대 역시 돌담과 돌담밭이 잘 보존된 지역으로 꼽힌다. 이들 지역은 산이 많은 지형으로 인해 밭을 일구기 전 돌을 정리해야 했고, 그렇게 생긴 돌로 밭의 경계를 둘러싼 낮은 담장을 만들었다. 이 돌담밭은 경계 역할뿐 아니라 경사진 땅에서 흙이 무너지는 것을 막아주는 기능도 하며, 생태적으로는 이끼, 들꽃, 곤충 등 다양한 생명체가 서식하는 공간으로도 작용한다.
제주도에서나 볼 수 있는 청양의 돌담과 돌담밭은 단순히 농업적 필요에 의해 만들어진 구조물이 아니라, 지역 주민들의 오랜 삶의 방식과 공동체 문화를 보여주는 중요한 전통유산이다.
운곡면 신대2리 사자미마을에는 산비탈을 개간, 층층이 자연석 강돌을 쌓아 계단식으로 만든 논이 있다. 바로 다랑이논이다. 다랑이논은 춥고 배고팠던 시절 주민의 목숨을 이어 왔지만, 현재는 농촌인력 고령화 때문에 농사를 짓지 않고 자취만 남아 있다. 하지만, 최근 다랑이논과 석축을 복원해 농촌관광자원으로 활용하려는 시도가 있다고 전한다.
이처럼 자연석 돌담과 산간농지 특유의 계단식 다랭이논과 돌담밭은 자연과 조화를 이루며 살아온 사람들의 지혜가 담겨있으며, 오늘날에는 전통 경관 보존과 생태체험, 문화관광 자원으로도 그 가치가 점차 부각되고 있다.
돌담의 원형을 복원하고 이를 지속적으로 유지하기 위해 지자체가 해야 할 일은 단순히 외형을 복구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돌담이 지닌 역사적, 문화적, 공동체적 가치를 존중하며 종합적인 보존 전략을 수립하는 데 있다. 우선, 지자체는 돌담의 역사적 자료를 조사하고 기록하는 작업을 선행해야 한다. 마을별로 남아 있는 돌담의 형태, 구조, 사용된 돌의 종류, 축조 방식 등을 정리하고, 이를 기반으로 원형에 가까운 복원이 가능하도록 하는 기초자료 구축이 필요하다. 동시에 돌담이 단지 과거의 유산이 아니라 현대와 이어지는 문화자산으로 자리잡을 수 있도록, 복원된 돌담을 활용한 전시, 교육, 체험프로그램 등을 개발해 문화적 가치를 확산시켜야 한다. 아울러 돌담길을 중심으로 한 생태 관광 자원화나 문화경관 조성 사업 등과 연계하면, 지역 경제 활성화에도 기여할 수 있다. 이를 위해 지자체는 돌담 복원과 관련된 조례 제정 등을 비롯해 지방문화재 등록 추진, 예산 확보 등을 통해 제도적 기반을 마련하고, 보존 사업이 일회성에 그치지 않고 지속적으로 추진될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다.
<이 기사는 충청남도지역미디어육성지원사업의 지원을 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