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의대 신설, 의료격차의 해법
단순 의사 증원으로는 공백 해소 어려워 국립의대 신설·공공성 특화 의견 모아져
[홍주일보 김영정 기자] 충남 도민의 오랜 숙원 과제인 국립대 의과대학 신설에 대한 논의가 한층 구체화되고 있다. 지난 14일 충남도서관 대강당에서 열린 ‘충남 국립대 의대 신설 범도민 서명운동 100만 명 돌파 기념행사’에 이어, 현장의 문제와 정책적 해법을 함께 고민하는 전문가 토론회가 마련됐다. 이날 토론회는 충남 의료현실의 심각한 격차를 진단하고 국립의대 설립의 필요성과 타당성을 다각도로 논의한 자리였다.
먼저 발제를 맡은 문준동 국립공주대학교 응급구조학과 교수는 “충남은 인구 천 명당 활동 의사 수가 1.95명으로 전국 평균인 2.67명에 크게 못 미쳐 최하위권을 기록하고 있으며, 응급환자 전원율(응급환자가 처음 방문한 의료기관에서 치료가 어려워 더 높은 단계나 전문성을 갖춘 다른 의료기관으로 옮겨지는 비율)은 14.8%로 전국에서 가장 높다”며 충남 의료체계의 구조적 취약성을 지적했다. 그는 “의대 정원 자체는 부족하지 않지만 졸업 이후 대부분 수도권으로 유출되면서 지역 내 활동 의사가 절대 부족하다”며 “심장질환이나 뇌혈관질환과 같이 골든타임이 중요한 응급환자의 치료 접근성이 심각하게 떨어지고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 “단순히 의사 수를 늘리는 방식만으로는 문제 해결이 불가능하다”며 “국립의대와 국립대병원 설립을 통해 지역 의료인력을 안정적으로 확보하고, 충남형 공공의료 체계의 거점 기능을 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이어 토론자로 나선 신현웅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실장은 “정부가 새롭게 발표한 국정과제에서도 지역 격차 해소와 필수·공공의료 확충이 핵심으로 제시됐다”며 “특히 의대가 없는 지역에 국립의대와 국립대병원을 신설하겠다는 원칙은 충남 상황과 맞닿아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의사 증원 총량 문제는 의료계와의 갈등으로 쉽지 않지만 지역 격차 해소는 합의가 이루어진 영역”이라며 일본의 지역자치의과대학처럼 지역에만 근무할 수 있는 의사를 뽑는 국립의과대학을 만드는 공공형 의대 모델을 제시해 주목받았다.
박병태 가톨릭대 교수는 “의료체계가 수도권과 민간 중심으로 짜여 있다 보니 지방 환자 쏠림과 격차가 구조화됐다”며 “민간 대형병원은 절대 오지 않을 지역에 국립의대와 국립병원이야말로 유일한 해법”이라고 역설했다. 그는 또한 “헌법에는 국민의 건강을 보호해야 할 국가의 의무가 명시되어 있고 보건의료기본법에도 공공성이 강조돼 있다”며 법적 타당성을 부각했다. 이어 “공주대는 이미 국립대학이라는 기반이 있고, 보건 관련 학과도 충분히 갖춰져 있어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다”며 “단순한 의대가 아니라 공공 보건의료 사관학교로서 국가 전체 공공의료 확충에 기여하는 특화 모델이 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현장의 목소리로 나선 이해종 속초의료원장은 공공병원의 현실적인 어려움을 전했다. 그는 “공공병원은 수익성보다 공익성을 지향해야 하지만 열악한 재정과 인력 부족으로 본연의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기 어렵다”며 “좋은 인력을 확보하지 못하고 결국 환자는 서울로, 의사도 수도권으로 향하는 악순환이 이어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공공병원이 자율성을 확보하고 지역 대학병원과 연계해 필수·응급의료를 안정적으로 담당해야 한다”며 “공주대 의대가 설립된다면 단순한 교육기관을 넘어 지역 공공의료 체계의 중추로 자리매김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이날 토론회는 충남이 직면한 의료 격차와 구조적 현실을 보여주는 수치와 체험적 해석이 오갔다. 참석자들은 공통적으로 △의사 단순 증원만으로는 본질적 해결이 어렵다는 점 △‘국립의대 신설과 공공성 특화’라는 두 축이 충남의 해법이라는 점에 의견을 모았다.
충남의 국립의대 설립은 의료인력 확충 차원을 넘어 △지역 환자의 생명권 보장 △청년 일자리 창출과 지역 정주 여건 개선 △국가 의료체계 공공성 회복이라는 다층적 의미를 갖는 것으로 요약됐다.
100만 명의 서명으로 집결된 도민의 뜻은 이날 토론을 통해 ‘충남 국립의대 설립’이라는 분명한 방향성을 확인했다. 충남의 의료 사각지대를 해소하고 지역·국가 의료 균형 발전을 견인할 수 있을지, 국회와 정부의 결단에 지역사회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