뜨거운 여름, 에어컨 바람을 쐬며 앉아 있을 사람들에게

2025-08-21     장정우 칼럼·독자위원
<strong>장정우</strong>

만약 날마다 일을 하는데도 생계를 유지할 수 없고, 그 원인이 개인의 잘못(과소비, 무능, 불성실함)이 아니라면, 명확히 드러나지 않은 다른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닐까? 새벽부터 한낮까지 뙤약볕 아래에서 일하는 농민들을 보며, 내가 보는 그들의 성실함과 그들의 경제적 상황과의 괴리가 더욱 크게 다가온다. 그리고 이는 농촌에서 자라 농사를 짓고 사는 내가 자주 떠올리는 고민과도 연결된다.

그건 바로 농사를 짓는 즐거움과 힘듦 사이의 격차였다. 모두 엄연히 실재하기 때문에 두 가지를 동시에 받아들이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리고 이러한 인식의 차이에서 오는 혼란은 비단 내 안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부모님이 귀농해 비슷한 배경에서 자란 친구들은 물론, 농가에서 나고 자라 학창 시절을 함께 보낸 친구들은 대체로 농촌을 떠나 도시에서 살거나 농촌에 살아도 농사가 아닌 택배, 자영업, 인근 도시의 사무직으로 일하고 있다. 다른 한편 지금 내가 마을에서 어울리는 친구들은 도시에서 생활하다 농촌이 좋다고 홍성으로 이사를 와서 작게나마 농사를 짓는 기쁨을 누리고 있다. 이런 상반되는 현상들이 단순히 개인의 사정·취향으로 치부될 수 있는 것일까.

그런 면에서 다른 나라의 이야기이지만, 가난한 농촌에서 성장한 세라 스마시의 《하틀랜드》는 지금 우리에게 농촌과 농민의 현실을 알려주는 하나의 새로운 안내서 역할을 해낸다. 조부모, 부모 그리고 저자까지 3대에 걸친 미국 캔자스 농촌 사람들의 삶을 기록한 이 책은, 옮긴이가 말하듯 “자신의 뿌리를 끊어내는 과정의 기록이면서 동시에 그 뿌리에 대한 애정과 긍정을 놓지 않는 기묘한 송가(頌歌)”로, 모 아니면 도라는 식으로 왜곡되기 쉬운 농촌의 현실을 담백하게 그려낸다. 그렇기에 저자의 이런 시선이 농촌과 농사에 대한 담론이 아예 소멸한 것처럼 보이거나, 있다면 농촌에 살아보지도 않고, 손에 흙도 묻혀보지도 않은 소위 전문가나 정치가들의 언설만 판치는 우리 사회에 꼭 필요하다고 여겨진다.

수십 년째 정체된 농산물 가격과 농사를 둘러싼 온갖 막말, 예컨대 농사를 지어보지도 않은 사람이 하는 ‘벼농사는 기계화가 되어 농사짓기 쉽다’라는 말이라든가, ‘농민들은 자기들이 과하게 많이 심어놓고 정부한테 팔아달라고 떼만 쓴다’라는 말이라거나, ‘정부 보조금이 너무 많아서 농민들의 자생력이 약해졌다’거나 그렇기 때문에 ‘지금이라도 보조금을 없애서 강한 농민만 살아남게 해야 한다’, ‘농사는 돈이 안 되기 때문에 농지에 아파트나 공장을 지어 지역을 살리자’, ‘우리나라는 농사에 적합한 땅이 아니다, 반도체 팔아서 농산물은 수입해서 먹으면 된다’라든가 하는 말들 속에서 농민의 가치는 농산물 가격처럼 후려쳐졌다. 그 결과는 역사상 처음으로 ‘생존’ 자체를 최우선으로 하는 생존자 계급(농민)이 생존을 걱정해야 하는 상황이다. 그리고 이는 황폐해지는 농촌과 인구 5000만 명의 인구를 평균 나이 67세, 200만 명의 농민들이 먹여 살리는 현실로 이어진다.

고향으로 다시 돌아와 농사를 짓기 시작했을 무렵, 나는 어렸을 때 친했던 친구를 만나면 농사가 얼마나 중요하고 즐거운지, 농촌에서도 꿈꿀 수 있는 다양한 삶의 모습에는 어떤 것이 있는지 등을 말하곤 했다. 그런 이야기를 듣고도 아무런 감흥이 없는 친구들을 보며 내 이야기가 왜 설득력이 없는지 고민하던 시기가 있었다. 시간이 흘러 이제는 안다. 내가 그렇게 말하는 반대편에서 우리 사회가, 미디어가, 전문가가 농민과 농사를 경시하는 데 그치지 않고 ‘소멸’시키기 위해 부단히 노력해 왔다는 것을.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나라에서 뼈 빠지게 일하고 쫄딱 망하는 삶에 관하여’라는 부제목을 단 이 책은, ‘세계에서 가장’이라는 형용사만 뺀다면 우리나라를 포함한 전 세계 농촌의 이야기이다. 농민들이 쫄딱 망하지 않기 위해 농촌을 탈출하려는 시도가 계속 이어진다면, 위기에 처하는 것은 농촌만이 아닌 우리 모두일 것이다. 얼마 전 지역의 공공건물에 기후위기 대응 적정기술인 쿨루프를 시공하는 캠페인을 열었다. 워크숍 진행을 위해 서울에서 오신 강사님은 이렇게 말했다. 향후 10년 내로 먹거리가 생산되는 곳으로 이주하지 않는다는 것은 아주 멍청한 생각이라고. 심각해지는 기후위기 속에서 우리는 농민과 농사를 다시 재발견해야 한다. 그리고 그 입문서로 이 책, 《하틀랜드》를 추천한다.


<이 칼럼은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