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속가능발전 시대의 조직 패러다임 전환
“내일 지구의 종말이 온다 하더라도, 나는 오늘 한 그루의 사과나무를 심겠다”라는 말은 지난 반세기를 돌아봤을 때 가장 깊이 남는 문구 중 하나다. 처음 이 문장을 접했을 때 느낀 울림은 매우 강렬했고, 이후 후배들을 가르치며 자주 인용해 왔다. 특히 최근 들어 ‘지속가능성’이라는 시대적 과제를 접하며, 이 말만큼 지속가능발전의 의지를 간명하게 담은 표현은 드물다고 느낀다.
오늘날 작은 조직이든 거대한 국가 조직이든 그 목표는 인류의 공존과 지속가능성에 맞춰야 한다. 그러나 현실의 조직들은 임기제로 운영되는 CEO 중심 체제에서 단기간의 성과를 중시하는 압박에 노출되기 쉽다. 이 과정에서 환경·사회·경제의 균형은 뒷전으로 밀리곤 한다. 이러한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 우리나라는 2022년 7월 「지속가능발전 기본법」을 제정했다. 제정 이후 3년이 지난 지금, 이 법은 경제·사회·환경의 조화를 통해 지속가능한 성장, 포용적 사회, 기후 위기 극복을 지향하며 현재 세대와 미래 세대 모두가 더 나은 삶을 누릴 수 있도록 국가와 지방자치단체, 나아가 인류 사회 전체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해 왔다.
이 법은 국민과 기업 모두에게 책무를 부여한다. 국민은 일상에서 지속가능발전 실현을 위해 노력하고 정부 정책에 협력해야 하며, 기업은 경제 활동 과정에서 환경적·사회적·윤리적 책임을 다하며 지속가능경영을 실천해야 한다. 최근 들어 ESG 경영이 글로벌 경영·투자 표준으로 자리 잡으면서 후발주자인 일부 비영리법인도 이 개념을 접목해 지속가능발전을 모색할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되고 있다.
모든 경영조직에는 존재 이유를 나타내는 미션과 장기 목표인 비전이 있다. 그러나 이를 구체화하는 경영목표와 전략이 없다면 지속가능발전은 공허한 구호에 불과하다. 목표 없는 사업계획은 단순한 ‘할 일 목록’이나 ‘예상 지출표’에 지나지 않는다. 목표가 있어야만 성과를 평가하고 개선점을 도출할 수 있으며, 자원 낭비를 줄일 수 있다. 또한 경영목표와 연계되지 않은 예산은 단순한 비용 집계에 불과해 조직을 표류하게 만든다. 반대로 분명한 목표가 설정되면 사업계획은 전략 실행의 로드맵이 되고, 예산은 목표 달성을 위한 자원 배분 수단이 된다.
ESG 경영의 세 축 중 환경(Environment)과 사회(Social)는 외부적 책임에 방점을 둔다면, 내부적으로는 지배구조(Governance)가 핵심이다. 지배구조는 이사회를 비롯한 경영진의 투명성, 내부 통제 및 감사기구의 역할을 포함하며, 환경·사회적 이슈에 대한 책임 있는 결정을 필요로 한다. 이를 위해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부패 방지와 리스크 감소를 위한 윤리적 의사결정이다. 이를 뒷받침하려면 내부 규정의 정비가 필요하고, 그중에서도 정관은 법인의 헌법과 같아 가장 핵심적인 규범이다. 따라서 정관 개정은 일반 규정 개정보다 엄격한 요건이 요구된다.
그럼에도 일부 법인에서는 낮은 의사정족수로 정관을 개정해 임원의 중임 제한을 폐지하고 기존 회장이 연임하는 사례가 있다. 무제한 연임 자체도 문제지만, 이러한 사례는 조직의 대외적 신뢰를 훼손한다. 나아가 구성원의 참여 기회를 제한하고 권력이 소수에게 집중되어 조직이 비민주적으로 변질될 위험도 크다. 총회에서도 실제 참석자보다 많은 위임장이 의사결정을 좌우하고, 거수 표결로 회장을 선출하는 경우가 발생하는데 이는 의사 표현의 왜곡과 공정성·비밀성의 훼손이라는 문제를 낳는다. 따라서 권력과 직결된 사안일수록 무기명 비밀투표와 전자투표 같은 제도적 장치로 보완해야 한다.
임원추천위원회 구성에서도 이해충돌 방지 장치는 필수적이다. 기존 회장이 포함된 후보자를 같은 이사회 임원들이 심사한다면 공정성이 무너진다. 감사위원 역시 이사 중에서 선임된다면 독립성이 약화된다. 자신이 의결한 안건을 다시 감사하는 모순이 생기기 때문이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려면 외부 위원의 참여와 정관상의 제도적 보완이 반드시 필요하다.
투명한 공시 체계 또한 지속가능경영의 핵심 요건이다. 공시는 조직의 신뢰를 높이고 책임성을 강화한다. 경영목표 체계도, 재무제표, 이사회 및 총회 의결 사항, 내부 규정, 경영진 업무추진비 내역까지 공개 범위에 포함될 필요가 있다. 이러한 공시를 통해 조직의 성숙도를 평가할 수 있으며, 내부감사 역시 단순한 통제와 준법 여부 점검을 넘어서 ESG 리스크 사전 탐지와 대응 전략 실행을 모니터링하는 등 조직의 지속가능성을 보증하는 기능으로 발전해야 한다.
결국 지속가능발전 시대의 조직은 단기 성과에 매몰되는 관행에서 벗어나야 한다. 조직의 미션과 비전, 분명한 경영목표 아래 투명한 지배구조, 엄격한 제도 운영, 윤리적 의사결정, 신뢰성 있는 공시와 감사가 정착될 때 비로소 미래 세대와 공존하는 조직으로 성장할 수 있다. 오늘 심은 작은 사과나무들이 내일 인류의 삶을 지탱하는 숲으로 자라나도록, 지금이야말로 조직의 패러다임을 전환해야 할 시점이다.
<이 칼럼은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