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천 문산면 1176명·시초면 1155명, 인구 1000명대도 붕괴?

지방소멸 인구감소시대, 충청의 마을공동체 소멸위기 현장을 가다〈9〉

2025-08-28     취재·사진=한기원·김경미 기자

서천 문산면에서 인구가 가장 적은 마을, 수암2리마을 20세대 27명
“건암마을 중앙에 건암서원이 있었는데, 인재 육성과 학문의 도장”
서천 시초면에서 인구가 가장 적은 마을, 태성2리마을 18세대 26명
봉선저수지 제방 아래에 있는 마을로 ‘물의 흐름이 끊어졌다’는 뜻

 

서천군 문산면은 천방산(千房山)의 중앙지대에 위치한 조선 시대에 대부분이 서천군 두산동면(豆山洞面)에 속했다. 조선 시대 초기까지는 번거로운 곳은 아니었으나 광해군(光海君)과 인조(仁祖) 때 명문들이 정착함으로써 은거지로 굴지의 고을로 꼽혔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문장면(文章面)과 병합해 문장(文章)과 두산(豆山)의 이름을 따서 문산면(文山面)이라 했다.

서천 문산면에서 가장 인구가 적은 수암2리마을은 천방산 자락의 아늑한 곳에 문산저수지를 바라보고 있는 마을이다. 백제 때 설림군이었던 지역으로 신라와 고려 시대에는 서림군에 속했다. 조선 초 서천군이었고 조선 말 서천군 두산면의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건암리, 정수리, 유망리 일부를 합해 ‘정수’와 ‘건암’의 이름을 따서 ‘수암리’라 해 서천군 문산면에 편입됐다. 수암리는 수암1리와 수암2리로 나눠진다. 

서천의 시초면은 천방산(千房山) 기슭 아래 길산천(吉山川)과 도마천(渡馬川)이 흐르고 80%가 들판인 서천평야의 기름진 땅, 이 지역은 풀이 많은 서천군 지역으로 새울의 이름을 따서 초처면(草處面)이라 불렀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시왕면(草王面)과 병합해 시왕(時旺)과 초처(草處)의 이름을 따서 ‘시초면(時草面)’이라 했다.

‘서천엔 뭐가 유명하지’라는 질문을 받는다면 ‘한산 세모시, 소곡주, 월남 이상재 선생 출생지, 목은 선생의 문헌서원 등…’ 몇 가지를 늘어놓지만 결국은 알지게 익어가는 벼 이삭, 황금들판이 아닐까. 댐 건설로 만들어진 호수가 아닌 순수하게 농사를 위해 만들어져 예당저수지 다음으로 큰 ‘봉선저수지’ 면적에 비해 물막이 둑 길이가 100m 남짓으로 관리가 가장 수월하다는 평가를 받는 저수지가 봉선지다. 바위산이 봉선지의 명물이고 풍광을 아름답게 하는 요소이기도 하다. 때문에 봉선지는 몰라도 ‘부엉바위’를 모르는 사람이 없고 바위 이름을 딴 단체들의 활동도 많다. 봉선지를 비롯해 인근 지역은 그만큼 청정했고 아직도 깨끗하다는 뜻이다.


■ 문산면 수암2리마을, 20세대 인구 27명
서천 문산면은 올해(2025년) 6월 30일 기준 총인구수가 1176명(남자 591명, 여자 585명)이며, 세대수는 724세대, 세대당 인구는 1.62명, 남여 비율은 1.01이다. 총인구수 추이를 보면 1개월 전(2025년 5월)과는 주민등록 인구수가 1164명에서 1176으로 12명(1.03%) 증가했고, 1년 전(2024년 6월)과는 1171명에서 1176으로 5명(0.43%) 증가했다. 하지만 2년 전(2023년 6월)과는 주민등록 인구수 1208명에서 1176으로 32명(-2.65%)이 감소했다. 2023년 말에는 1192명으로 16명이 줄었다. 이 수치는 문산면이 전국 1172개 읍면 중에서 1101위를 차지할 정도로 인구소멸위기가 심각한 수준이라는 의미다.

2025년 6월 30일 기준 서천군 문산면의 인구는 유아기 5명(0.43%), 학령기 46명(3.91%), 청년기 30명(2.55%), 중년기 106명( 9.01%), 장년기 268명(22.79%), 노령기 721명(61.31%)으로 구성돼 있다. 출생부터 6세까지 유아기 인구수 추이를 보면 1개월 전(2025년 5월)과는 6명에서 5명으로 1명(-16.67%) 감소했으며, 1년 전(2024년 6월)과는 11명에서 5명으로 6명(-54.55%)이 감소했다. 2년 전(2023년 6월)과 비교했을 때는 16명에서 5명으로 11명(-68.75%)이 감소한 결과다. 이 기간 출생등록자 수가 0명으로 출생아가 없는 실정이다.

특히 문산면에서 인구가 가장 적은 수암2리마을의 경우 전체인구가 20세대에 27명(남자 14명, 여자 13명)이 사는 가운데 65세 이상 고령화율이 절반을 훨씬 넘고 있어 초고령화 지역으로 꼽히는 곳이다.

문산면 수암1리마을은 중앙에 물맛이 좋고 가뭄을 타지 않는 샘물이 있어 ‘정수마을’이라고도 부른다. 이 마을에는 ‘수암리 삼층석탑(水岩里 三層石塔)’이 1984년 5월 17일 충청남도문화재자료 129호로 지정됐다. 이런 연유로 ‘탑골’이라고 부르는 지역이 있고, 응달진 곳에 있다 해서 음지뜸, 위쪽에 자리 잡고 있는 윗골이 있다.

노훈래 이장에 따르면 “수암2리마을은 건암과 윗골로 구성돼 있으며, 옛날에는 부촌이었으나 마을 앞에 저수지가 생기면서 농지를 잃어 지금은 작은 마을로 변했다”며 “건암마을 중앙에는 ‘건암서원’이 있었는데, 현종3년(1662년)에 지방 유림들의 발의로 명곡 이산보, 임진왜란 때 의병대장 중봉 조헌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해 세워졌으며, 서천의 인재를 육성했던 학문의 도장이었으나 대원군의 서원 철폐령에 따라 훼철됐다”는 설명이다. 마을 앞에는 큰 바위가 있어 이 바위를 선바위(建岩)라고 불렀는데 이 바위로 인해 붙여진 이름이라 하며, 윗골은 산모퉁이를 돌아 한참을 올라가면 몇 집이 따로 자리 잡고 있다고 한다. 

한편 수암리 산 79-1에 있는 박해시대 서천지역 신앙 선조들의 삶의 터전이자 무덤 터인 이곳 ‘천방산 작은재’는 ‘30여 기의 작은 줄무덤이 있었다’고 전해진다. 

특히 문산면 수암리 산 78번지의 천방산 기슭은 수암리의 ‘독뫼공소’ 터와 판교면 금덕리의 ‘작은재공소’ 터를 이어주는 고갯마루였다고 한다.
 

■ 시초면 태성2리마을, 18세대 인구 26명
서천 시초면의 2025년 6월 30일 기준 총인구수는 1155명(남자 571명, 여자 584명)이며, 세대수는 679세대, 세대당 인구는 1.7명, 남여 비율은 0.98이다. 총인구수 추이를 살펴보면 1개월 전(2025년 5월)과는 1154명에서 1155명으로 1명(0.09%) 증가했고, 1년 전(2024년 6월)과는 1174명에서 1155으로 19명(-1.62%)이 감소했으며, 2년 전(2023년 6월)과 비교할 때 1207명에서 1155으로 52명(-4.31%)이 감소했다. 

올해(2025년) 6월 30일 기준 서천 시초면의 인구는 유아기 10명(0.87%), 학령기 33명(2.86%), 청년기 47명(4.07%), 중년기 105명( 9.09%), 장년기 288명(24.94%), 노령기 672명(58.18%)으로 구성돼 있다. 출생부터 6세까지 유아기 인구수 추이를 보면, 1개월 전(2025년 5월)과는 9명에서 10명으로 1명(11.11%) 증가했고, 1년 전(2024년 6월)과는 15명에서 10명으로 5명(-33.33%)이 감소했으며, 2년 전(2023년 6월)과는 20명에서 10명으로 10명(-50.00%)이 감소했다. 반면 65세 이상 노령기 인구수 추이는 1개월 전(2025년 5월)과는 669명에서 672명으로 3명(0.45%) 증가했으며, 1년 전(2024년 6월)과는 668명에서 672명으로 4명(0.60%)이, 2년 전(2023년 6월)과는 670명에서 672명으로 2명(0.30%)이 증가했으며, 전체 평균연령은 65.2세(남자 62.5세, 여자 67.8세)다. 한편 출생아는 2023년부터 매년 1명 씩이다.

시초면에서 가장 인구가 적은 태성2리마을의 경우 전체인구가 18세대에 26명(남자 9명, 여자 17명)이다.

태성리(台城里)는 조선 시대 서천군 시왕면(時旺面)으로 주절리(注切里)와 얼달리(乻達里) 일부, 초처면(草處面)의 지곡리(芝谷里)와 용구리(龍九里) 일부를 합해 ‘태성리’라 하고 서천군 시초면에 편입된 마을이다. 태성리는 태성1리 ‘수왕굴’과 태성2리 ‘주절’로 나누는데, 마을 복판에 있는 느티나무는 태조의 선사 목으로 전해지는데, 매년 정원 대보름날에는 이곳에서 ‘고목제’를 지낸다고 한다.

태성2리 주절마을은 봉선저수지 제방 아래에 있는 마을로 ‘물의 흐름이 끊어졌다’는 뜻이라고 한다. 건너편 마산면 이사리 산줄기 사이로 길산천이 흐르는데, 1926년 일제가 제방을 막아 이름 그대로 물의 흐름이 끊어졌다는 것인데, 제방의 길이는 불과 100여m에 불과하다.

고광엽 이장에 따르면 “제방 아래 물문까지 뱀장어와 참게가 올라와 밤에 횃불을 켜고 뱀장어와 참게 등을 무수히 포획하기도 했다”고 한다. 

태성2리 주절마을에는 서씨들이 많이 살고 있다고 한다. 마을 입구의 정자나무 곁에는 이 마을의 ‘효자 서희진 정려문’이 세워져 있다. ‘서희진은 효성이 지극해 가난했지만 품팔이를 해 부모를 봉양했으며, 부친이 위독하자 손가락을 베어 피를 드려 목숨을 연장했다’고 전해지는 효자다.

 

<이 기사는 충청남도 지역미디어육성지원사업의 지원을 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