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경제와 기후를 모두 살린 물의 힘 ‘장흥물축제’

지역축제 포화시대, 지역성을 담은 축제로 변해야 한다⑤

2025-09-11     <공동취재단>

지역축제를 둘러싼 논란과 비판은 해마다 반복된다. 과도한 상행위, 주민 동원, 유사 콘텐츠, 과장된 실적 등은 축제의 본질을 흐리고 있다. 축제는 관광을 넘어 지역 고유의 문화와 정체성을 담는 공공의 장이어야 한다. 이에 홍주신문을 비롯한 5개 지역언론이 지역신문발전위원회의 2025 공동주제심층보도지원 사업을 통해 국내·외 축제 현장을 공동 취재·보도함으로써 지역축제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모색하고자 한다. <편집자주>

‘군(郡) 단위 축제’의 경계를 넘어서다 
“이게 정말로 군 단위 지역축제 맞아?” 

2025년 여름 장흥에서 열린 ‘제18회 정남진 장흥물축제’는 많은 이들에게 놀라움을 안겼다. 
코로나19 이후 몇 년간의 축소 운영을 거쳐 다시 본격화된 이번 축제는 규모와 완성도 면에서 광역지자체급 대형 축제 못지않은 모습을 보여줬다. 

‘장흥은 지금 즐거움이 콸콸콸!’이란 슬로건으로 열린 올해 장흥물축제는 장흥 물이 가진 치유와 건강 브랜드 확립과 글로벌 축제로의 도약을 목표로 내세웠다.

축제 예산만 총 28억 2400만 원이 투입됐는데 특히 군비만 27억 원이 넘는 단독 투자는 장흥군의 이번 축제에 대한 강한 의지를 보여줬다. 

지난 7월 26일부터 8월 3일까지 이어지는 9일 동안 살수대첩 퍼레이드, 지상 최대의 물싸움, K-POP 콘서트, 락 페스티벌, 글로벌 워터비트 등 테마영 야간 콘텐츠도 하루도 빠짐없이 구성됐다. 

‘낮엔 물, 밤엔 예술’이라는 테마 아래 설계된 이번 축제는 단기 방문이 아닌 체류형 관광으로 이어지도록 전략적 구성까지 갖췄다.

대부분의 군 단위 축제가 소극적인 예산, 짧은 일정, 제한된 참여로 운영되는 현실 속에서 장흥은 과감한 투자, 치밀한 기획, 지역민의 주도적 참여를 통해 정반대의 길을 걸으며 ‘군 단위 축제도 달라질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준 것이다.
 

면(面) 단위 살수차 퍼레이드 참여
단연코 축제의 주인공은 ‘지역주민’

가장 인상 깊었던 장면 중 하나는 첫날 열린 글로벌 살수대첩 퍼레이드였다. 면 단위별로 등장한 살수차가 좁은 골목을 가르며 물대포를 쏘고 주민들은 그 위에서 붉은 바가지와 알록달록한 물총을 들고 환호했다. 

누구는 차량 지붕 위에서 물을 뿌리고 누구는 얼음물을 통째로 끼얹는다. 살수차 위에서 남의 눈을 의식하지 않고 리듬을 타며 흥겹게 물을 뿌리던 부산면장은 관광객들에게 큰 호응을 받았고 아이부터 어르신까지 동심으로 돌아가 하나가 돼 퍼레이드를 즐기는 모습은 장흥 물축제가 주민에 의한 주민을 위한 축제라는 점을 극명하게 보여줬다.
 

지역소상공인에겐 한숨 돌리는 기회
탐진강 치유의 물, 함께 나누는 물로

전국 곳곳에서 수해로 인해 물 축제가 취소되거나 축소돼 일각에서는 장흥물축제에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기도 했다. 하지만 장흥지역 소상공인들과 주민들은 오히려 이 시점에 축제를 여는 것이 ‘지역경제를 살릴 수 있는 유일한 기회’라며 한목소리로 환영했다. 지역 상권이 활기를 되찾는 동시에 전국적인 재난에 연대하는 방식으로 축제를 구성했다. 장흥군은 축제 개최와 함께 입장권 수익 전액을 수해피해 지역에 기부하기로 결정해 지역경제 회복과 전국적 연대를 동시에 추구하는 선택을 했다. 축제장에는 수재의연금 모금함을 설치해 관광객과 지역민의 동참도 이끌었다.

축제 마지막 날 기금 전달식을 통해 축제에서 발생한 수익금 5000만 원과 장흥군여성단체협의회 등이 참여한 수재의연금 모금액 1060여만 원을 더해 약 6060만 원을 수해 피해지역에 기탁했다. 

이는 축제를 즐기면서도 수해로 고통받는 이웃을 도울 수 있는 참여형 기부 플랫폼으로 확장 한 것이다.

또한 장흥은 오래전부터 물의 고장으로 불려왔다. 약수터와 온천, 탐진강을 따라 형성된 삶의 터전은 ‘치유의 물’이라는 별칭을 얻을 만큼 맑고 깊은 물 문화를 품고 있다. 10개 읍면의 지역민들이 가져온 치유의 물을 뿜어내는 거리퍼레이드는 단순한 물싸움으로 끝나지 않았다. 사회자의 퍼레이드 시작을 알리는 외침과 함께 공중으로 퍼진 수천 개의 비누방울은 곧 기후위기를 앞당기는 오염물질로 상징됐다. 그리고 참가자들이 함께 쏴 올린 물줄기는 그 비누방울을 하나둘 씻어내며 ‘장흥의 치유의 물로 오염된 지구를 정화하자’는 퍼포먼스로 이어졌다. 

퍼레이드의 마지막은 장관이었다. 도로 위에 설치된 장치는 불기둥 퍼포먼스를 통해 기후위기의 현실을 드러냈고 뜨거워진 지구를 식히듯 주민들과 관객들이 수백 개의 물줄기를 하늘로 향해 쐈다. 

퍼레이드가 끝나고 메인무대에서 이어지는 지상최대의 물싸움은 기후위기 시대에 물은 더 이상 놀잇감이 아니라 재난에 맞서는 상징, 공동체의 힘, 자연과의 연결고리로 자리잡는 스토리를 퍼레이드에 입혀낸 것이다.

단순한 여름철 관광행사를 넘어 기후위기로 파생된 폭염, 폭우 등 재난으로 지친 사람들에게 ‘함께 나누는 물, 함께 치유되는 축제’를 만들고자 한 장흥군의 의지가 담겼다. 

놀고 흩어지는 축제가 아니라 물의 힘을 빌려 지역과 타인을 동시에 위로하는 연대의 플랫폼으로 ‘장흥=치유의 물’이라는 정체성을 공고히 한 셈이다. 
 

물로 즐기고, 할인으로 맛보는 축제
모든 프로그램 5000원 이하로 즐겨

축제기간인 7월 26일부터 8월 3일까지 장흥군은 배달앱 먹깨비와 손을 잡고 1인 1회 최대 5000원의 할인 이벤트를 운영했다. 축제장을 찾은 관광객과 지역주민 누구나 혜택을 받을 수 있으며 첫 주문 할인, 지역사랑상품권 할인 등 다양한 프로모션이 병행됐다.

장흥 특산물과 장흥 물을 재료로 한 음료 레시피를 개발해 판매하는 ‘슬러시 페스타’도 운영됐고 한우삼합 페스타, 야시장, 중앙로 상가와 연계된 콘텐츠를 강화하며 중앙로 상권과의 연계성도 높아졌다는 평가를 받았다. 

8월 1일과 2일 저녁에 열린 ‘물빛야장, 빠삐용의 날’은 올해 첫선을 보인 상권 상생 프로그램으로 주목을 끌었다. 장흥읍 중앙로 일부 구간의 차량을 통제하고 다양한 음식과 주류를 판매했는데 예상보다 많은 인파가 몰리면서 흥행에 성공을 거둬 지역상인들의 호응을 얻었다. 또 다양한 체험프로그램과 공연으로 채워진 물축제는 저렴하게 즐길 수 있는 ‘알뜰한 축제’로서의 면모도 빛났다.

물축제는 입장료가 없고 수준급 공연이 모두 무료인 데다가 체험료도 2000원에서 7000원으로 저렴하다. 5000원이 넘는 체험은 2000원을 지역상품권으로 돌려주기 때문에 사실상 모든 프로그램을 5000원 이하로 즐길 수 있는 셈이다.

올해 장흥 물축제는 기후위기를 예술과 스토리텔링으로 풀어내고 동시에 할인 플랫폼과 상권연계를 통해 지역경제까지 품어낸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한 사례다. 물이 단순히 흥겨움의 도구로 소비되는 것이 아니라 위기의 상징이자 치유의 매개체로 재해석되는 축제. 이 전환이야말로 지역축제가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을 보여준다.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