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천 안남면 1300명, 가장 적은 미산마을 18세대 20여명

지방소멸 인구감소시대, 충청의 마을공동체 소멸위기 현장을 가다〈12〉

2025-09-18     취재·사진=한기원·김경미 기자

충북 옥천군의 2025년 6월 30일 기준 총인구수는 4만 8373명(남자 2만 4495명, 여자  2만 3878명), 세대수는 2만 5692세대이며, 세대당 인구는 1.88명, 남녀 비율은 1.03이다. 옥천군 인구는 유아기 802명(1.66%), 학령기 4028명(8.33%), 청년기 3829명(7.92%), 중년기 8355명(17.27%), 장년기 1만 3740명(28.40%), 노령기 1만 7619명(36.42%)으로 구성돼 있다.

총인구수는 1개월 전(2025년 05월)과 비교할 때 주민등록 인구수 4만 8362명에서 4만 8373으로 11명(0.02%) 증가했다. 1년 전(2024년 06월)과는 주민등록 인구수 4만 8586명에서 4만 8373으로 213명(-0.44%) 감소했으며, 2년 전(2023년 06월)과 비교했을 때 주민등록 인구수는 4만 9232명에서 4만 8373으로 859명(-1.74%) 감소했다. 

충북에서 읍·면의 인구 2000명이 무너진 면은 19개 면이고, 이 중 보은 장안면, 옥천 안남면, 제천 청풍면 3곳은 인구 1500명이 무너졌으며, 인구 1000명이 붕괴된 곳이 3개 면(영동 용화면, 보은 회남면, 제천 한수면)이다. 

옥천군 안남면은 지난 2023년 말 전체인구가 1355명에서 지난달 말 1305명으로 1년 6개월 새 50명이 줄었다. 안남면에서 인구가 가장 적은마을은 종미리로 지난달 말 기준 104명(69세대, 남자 52명, 여자 52명)이다. 종미리는 종배마을과 종미마을로 구성됐는데, 비교적 큰 마을에 속하는 종배마을은 70~80명에 이르는 반면 미산마을은 18세대에 20여 명이 살고 있어 옥천군 안남면에서 인구가 가장 적은마을에 속한다.

■ 대청댐 수몰지구, 옥천 안남면 종미리 마을
충북 옥천군 안남면 종미리는 안남면 남부에 위치하며 서편으로 금강이 남북으로 흐르고 있다. 면적은 2.89㎢이다. 동쪽과 남쪽은 안남면 지수리, 서쪽은 동이면 청마리, 북쪽은 안남면 연주리와 도덕리에 인접하고 있다. ‘종미리’는 법정리이며 자연마을인 ‘종배마을’과 ‘종미마을’이라는 행정리가 있다. 안남면에서는 종미리를 비롯해 연주리, 지수리, 도덕리가 대청댐에 수몰됐다.

안남면 ‘종미리(從薇里)’는 ‘종배리(從培里)’와 ‘미산리(薇山里)’가 합해 이뤄진 마을이다. 1739년 기록에는 ‘궐산리(蕨山里)에 16호와 지내리에 67호가 살았다’고 돼 있는데, 지내리에 지금의 ‘종배(從培)마을’이 포함돼 있었다. 1891년의 기록에는 ‘궐산리(蕨山里)를 미산리(薇山里)로 고치고 16호가 살았고, 종배리가 분리돼 23호가 살았던 것’으로 기록돼 있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종배리와 미산리를 합치면서 ‘종미리(從薇里)’가 돼 현재에 이르고 있다. 

미산리는 마을 위의 산이 낮고 고사리같이 퍼져 있는 형국이라고 해 처음에는 고사리 ‘궐(蕨)’자를 써서 궐산리라 부르다가 좋지 않다고 해 고사리 ‘미(薇)’자를 써서 ‘미산리’라 부르게 됐으며, 300여 년 전 ‘용궁전씨(龍宮全氏)’가 처음 들어와 살았다고 전한다. 미산마을에는 ‘경율당(景栗堂)’이라는 서당이 있는데, 영조 12년 1736년에 용궁전씨 선조인 ‘전후회(全後會)’가 세워 후손들의 학문 연수와 인격 수양의 도장으로 이용되면서 훌륭한 인재를 많이 배출하게 됐다. 미산 주변에는 꽃밭날골, 타산밭골, 절림이골, 여수밭골, 수수골, 으능정이, 투소골 가재골, 병뱅이, 배묵골, 장구먹 이라는 지명이 남아 있다.

‘종배’마을은 마을의 형태가 양옆으로 야산이 둘러 있고 배 안처럼 생겼다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고도 하며, 이 마을도 용궁전씨(龍宮全氏)와 전주이씨(全州李氏)가 들어와 살면서 형성된 마을이라고 한다. 전주이씨가 13대를 세거해 온 곳이니 400여 년 전에 입향한 것으로 보이며, 고령신씨, 파주염씨, 상주김씨, 경주이씨, 밀양박씨 문중도 200여 년을 이어 살아온 마을이다. 

종배마을 주변에는 마당들, 서당골, 승냥골, 제비실, 고시담, 서낭당, 솔고개 등이 남아 있다. 1980년대에 대청댐이 생기면서 농토와 마을 주변의 7∼8만 평에 이르는 좋은 밭은 물론 물 잘 빠지는 논이 수몰되면서 이주민이 생기면서 작은 마을이 되고 말았다.

안남면 종미리는 큰 마을인 종배마을과 작은 마을인 미산마을에는 지난 6월 말 기준 69세대 104명(여자 52명, 남자 52명)이 살고 있어 안남면서 가장 작은 마을이 됐다. 종미리에서도 작은 마을인 미산마을에는 18세대 20여 명이 살고 있어 옥천군에서는 초미니마을이다.

■ 용궁전씨 세거지 미산마을 18세대 20여명
종미리는 종배와 미산이란 두 개의 자연마을로 이뤄져 있는데, 미산에는 용궁전씨 문종이 28대째 살고 있다고 한다. 용궁전씨가 적어도 800년 이상 900년 가까이 살아왔다는 얘기이고 보면 가히 세거지로 불릴만하다. 본래 40여 호 가량의 주민들이 살고 있었으나 대청댐 건설로 인한 수몰로 절반에 가까운 주민이 고향을 떠나면서 25호가 남아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18세대에 스물댓 명 정도의 주민들이 사는 작은 마을이 됐다.

이곳에서 4대째 살고 있다는 전병성(78) 씨는 부인과 둘이서 이른 참깨를 묶어 세우면서 “과거 대청댐이 수몰되기 전에는 50여 가구가 사는 큰 동네였는데, 그때 30가구 이상이 수몰됐지, 이제는 열여덟 세대에 스무나무 명이 사는 작은 동네가 됐어”라며 “외지에서 서너 가구 들어와 살고 있는 젊은 사람들 빼고 나면 모두 고령층인 노인들이지, 대부분 혼자 사는 가구가 많고 활동도 많이 뭇허지. 이곳이 용궁전씨 세거지로 내가 4대째 살고 있는데, 용궁전씨 중에서는 내가 제일 어린 나이에 속허지. 동네 절반 이상이 노인들인데, 노인회 회원도 십여 명밖에 안 되고…, 혼자 살고 활동하기에도 불편하니까 어쩔 수 없지…”라며 말끝을 흐렸다.

종미리 미산마을 노인회는 박용우 회장 등 10여 명, 종배마을 노인회는 신장호 회장 등 30여 명이 회원이라고 전해진다.

종미리 미산마을에는 용궁전씨가 절반에 이른다는 설명이다. 미산마을에 남아 있는 ‘경율당’은 옛부터 서당의 기능을 했던 곳으로 용궁전씨 문중의 제실이기도 하다. 이에 비해 종배마을의 경우 전주이씨의 세거지라고 한다. 13대가 살아왔으니 400여 년에 걸쳐 이씨 문중이 살아온 것을 증명한다는 것. 이밖에 이곳은 고령신씨, 파주염씨, 상주김씨, 경주이씨, 밀양박씨 등의 문중이 적어도 150년 이상 살아온 터전이라고 한다. 다른 마을에 비해 비교적 일찍 마을을 형성했을 뿐만 아니라 많은 문중들이 200년 이상 살아온 문중들로 이뤄져 있다는 설명이다. 혹자는 이런 현상을 두고 마을이 평온하고 안정돼 있어 한 번 거처를 정하면 오래 살게 되므로 가능하다는 주장을 펴고 있다고도 한다. 

미산마을에는 ‘수살맥이’라 해서 선돌이 위치해 있어 선사시대부터 주민이 살고 있었음을 증명해주고 있다. 이 마을에서 음력 7월 13일은 ‘호미세(일명 호무시)’라고 해서 백중놀이가 펼쳐진다고 한다. 

한편 마을에는 아직까지 ‘호무시나무’라 해 큰 느티나무가 보존되고 있으며, 요즘도 노인들을 중심으로 정성껏 제사를 올리고 윷놀이 등을 통해 주민들끼리 친선을 다진다고 한다. 백중놀이가 바쁜 농사일 끝내고 잠시 쉴 틈을 이용해 치러지는 것을 감안하면 종미리에서는 아직도 그 전통이 계승되고 있는 것이다. 

옛부터 조용하게 살아온 마을이지만 마을꾸미기에는 단연 앞장서는 단합심을 발휘하고 있다고 진단한다. 이 마을은 지난 1971년 시멘트 지원사업 등으로 마을을 가꾸는데 앞장서 전국에서 3위를 한 기록으로 내무부장관과 도지사, 군수 표창을 받은 바도 있다고 이 지역의 언론 옥천신문은 기록하고 있다.

 

<이 기사는 충청남도지역미디어지원사업의 지원을 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