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의한 노동의 현실을 바탕으로 참된 노동과 민족을 심은 시편
카프 이후 노동문학의 길을 다시 연 고은 시인의 시집 〈새벽길〉
“근로 기준법을 준수하라!,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
1970년 11월 13일 오후 1시 30분, 서울 청계천 평화시장 구름다리 밑에서 평화시장의 영세 봉제 공장 노동자 전태일이 열악하기 짝이 없는 노동 조건에 목숨을 내놓고 분신하며 항의한다. 이에 자각한 지식인 예술인들이, 1935년 일제의 탄압으로 해산된 카프(Korea Artista Proleta Federatio, 조선프롤레타리아예술동맹) 이후 35년 동안 일제와 이승만, 박정희 정권에 의해 금기시돼 온 노동예술을 정권의 탄압을 무릅쓰고 이 땅에 다시 등장시킨다. 문학에서는 김수영·신동엽·고은·조세희·신경림·김지하 등이 그 길을 다시 열었다.
1978년 시인 고은이 <새벽길>을 창작과비평사에서 ‘창비시선’ 15번째로 출간했다. 시집에는 시인이 ‘저자 뒷글’에서 “이 시집은 내가 앞으로 좀 더 시인일 수 있다면 그런 시인이 되기 위한 어떤 결단의 이정표가 된다는 것을 밝히고 싶다. 나는 우리 민족문학의 한 모서리나마 담당하는 것이 나에게 남겨진 목숨에 담긴 가장 큰 목적임을 새삼스레 깨닫고 있다.”고 언급한 것에서 짐작할 수 있듯, 일제강점기부터 1970년대에 이르기까지 불의한 노동의 현실을 바탕으로 바람직하고 참된 노동과 민족을 심은 시편들을 담았다.
일본놈들의 드넓은 논에 가서/줄모 심어주고/점심때 주먹밥 한 덩어리 얻어먹었다/일본놈보다 더 일본놈인/우리 동네 천석군 지주네 밭에 가서/어머니는 날마다/땡볕에 김매주고 왔다/등잔불 석유도 없이/아버지는 소작료로 공출로/지푸라기만 쌓인 마당을 떠나/이놈의 머슴살이 때려치우고/대바구리 어께에 멘 채/홍성장 대천장으로 울음도 없이 건너갔다/내 이름은 다까바야시 도라노스께였다//조상대대 되놈 원놈한테 마찬가지였음을/나는 나이 먹을수록 깨달았다/천번이나 그놈들 쳐들어온 역사 깨달았다/낮으로 밤으로 반만년 긴긴 세월/우리는 그냥 식민지 사람이었다/그러나 긴긴 세월/우리는 우리 역사 찾아온 사람이다/계수나무 찍어다가/썩은 옥수수죽 먹으며/초가삼간 쑥대머리 지붕으로/밀기울 쪄먹으며/허기져서 밤중에 찬물 먹으며/베잠방이 하나로 앞을 가리고/우리는 우리 겨레를 이루어온 쓰라림이다//이제 다시 식민지일지라도/늑대 살쾡이 여우 날뛰더라도/우리는 언제까지나 우리 배뱅이굿/억울하도록 억울하도록 찾는 사람이다//내일 모레 우리가 죽어서라도/진리는 우리 역사 해방일 뿐/머슴살이 아버지 무덤에 바칠/진리는 우리 겨레 해방일 뿐/내 몸 옘병으로 부글부글 끓는다/왜놈 귀신 썩 물러가라/되놈 양놈 썩 물러가라/우리 할머니 잔밥 먹고/썩 썩 물러가거라“(시 ‘자화상’ 전문)
백기완 시인은 시집에 대해 뒤표지글에서 “고은 시인은 비로소 문학을 자기 전유물이라는 굴레에서 해방시켜 분단의 역사를 갈아엎고야 말 민족혁명의 깃발로 발전시켰다.”고 평했다.
1933년 전라북도 옥구군에서 출생한 시인은 일제강점기 군산고등보통학교를 4학년에 중퇴했다. 1958년 조지훈, 장만영, 서정주 공동추천으로 <현대문학>에 시 ‘폐결핵’을 발표하며 등단했다. 시집 <새노야>, <새벽길>, <백두산>, <만인보> 등 다수, 소설집 <피안앵>, <산산히 부서진 이름>, <화엄경> 등 다수, 에세이집 <한용운 평전>, <한국의 지식인> 등이 있다. 단국대학교에서 명예문학박사 학위를 받고 문예창작과 석좌교수로 재직했으며 2018년 미투운동으로 인해 모든 직에서 제명됐다. 한국문학작가상, 만해문학상, 중앙문화대상, 은관문화훈장, 스웨덴 시카다상, 영랑시문학상, 황금화관상 등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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