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세계는 가능하다

2025-09-18     장윤호 <녹색당>

다른 세계는 가능한가? “자본주의의 종말을 상상하는 것보다 세계의 종말을 상상하는 것이 쉽다”는 프레드릭 제임슨과 슬라보예 지젝의 구절처럼 대안적인 가능성에 대한 회의, 냉소, 무력감이 팽배하다. 세계는 마치 예정된 경로를 따라 지금에 이른 듯하고, 여기에 비집고 들어갈 틈은 없는 것처럼 느껴진다. 그런데 이 책, 《모든 것의 새벽》을 쓴 인류학자 데이비드 그레이버와 고고학자 데이비드 웬그로는 실제 인류의 역사에서 ‘다른 가능성들’을 발견할 수 있다고 말한다.

저자들이 도전하는 기존의 역사 서술은 태초에 ‘어리석은 야만인’이었던 인류가 작고 단순한 원시 공동체에서 크고 복잡한 국가로, 평등한 수렵·채집 경제에서 계급적인 농경 경제로, 그리고 마침내 지금의 자본주의에 이르렀다고 가정한다. 사회가 더 복잡하고 진보된 형태로 일관되게 발전하는 ‘사회진화’의 과정을 거쳐왔다는 단선적인 역사관이다. 그리고 이 역사의 주역은 거의 언제나 유럽인들이었다. 그러나 저자들은 인류 역사에는 “더 희망적이고 더 흥미로운 다른 이야기”(12쪽)들이 있다며, 900여 쪽에 걸쳐 수렵·채집, 농경, 사유재산, 도시, 국가, 민주주의 등 문명 전반에 걸친 신화들을 전복하는 숱한 인류학적·고고학적 증거들을 제시한다.

그 일단을 소개하면 이렇다. 흔히 농업혁명은 구석기 채집인에서 신석기 농부로의 비가역적인 전환으로 여겨진다. 그러나 실제 농경으로의 이행은 약 3000년에 걸쳐 천천히 이뤄졌으며, 농경을 거부하고 수렵·채취 생활을 고수하거나, 두 가지가 오랫동안 공존한 사례들이 존재한다. 얼핏 더 ‘발전된’ 형태로 보이는 기술이나 도구, 생활양식에 대한 의식적인 거부도 다수 발견된다. 노예제 역시 마찬가지인데, 비슷한 시기 인접한 문화권임에도 한편에서는 노예제가, 다른 한편에서는 평등주의적 관계가 공존한 여러 사례가 존재한다. 게다가 이들 문화권은 서로 단절돼 있지 않았고, 수시로 교류와 접촉이 행해졌다.

저자들은 규모와 민주주의, 불평등에 대해서도 같은 방식의 이론(理論)을 제시한다. 소규모 그룹에서는 평등하고 민주적인 의사결정이 가능하지만, 규모가 커지면 불가능하다는 게 보통의 ‘상식’이다. 

그래서 거대 도시나 국가에서는 여지없이 비민주적이고 위계적인 사회관계가 발달했다고 여겨진다. 하지만 저자들은 우크라이나의 메가 유적에서 선사시대 정착민들이 시민 의회로 자치를 이루고, 고대 인더스 문명에서 지배 계급이나 관리자 엘리트 없이 대규모 정착지를 형성하고, 멕시코 고대 도시 테오티후아칸이 군주제하에서 피라미드를 건설하다가 주민 중심의 공동체로 방향을 전환해 다가구 공동주택을 건설했던 사례를 제시한다. 

이들은 저자들이 제시하는, 중앙집권화된 통제 없이 자의식적으로 평등주의적인 노선에 따라 공동체를 운영한 역사적 사례의 극히 일부일 뿐이다. 저자들은 이 같은 민주주의적 실천이 어떤 특정한 문화 또는 전통에 고유한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오히려 민주적 실천은 인간의 삶이 체계적인 구조적 억압을 벗어나 이루어지는 곳이라면 어디에서나 나타나는 경향이 있다.

이처럼 인류의 역사는 우리가 익히 알고 있던 것보다 훨씬 더 복잡하고 다채롭고 흥미롭다. 인류 역사 초기를 요약할 수 있는 한마디가 있다면 그것은 “극단적인 다양성”(397쪽)이다. 이는 “인간 사회의 ‘원래’ 형태라는 것은 없다는 뜻”(121쪽)이기도 하다.

다시, 다른 세계는 가능한가? 공저자 중 한 명인 그레이버는 다른 저서에서 이렇게 말했다. “궁극적이고, 숨겨진 세상의 진실은 [세상은] 우리가 만들고 있고, 매우 쉽게 또 다르게 만들 수 있는 어떤 것”이라고.(《관료제 유토피아》, 136쪽) 사회의 변화와 역사의 전개, 새로운 기술의 도입, 어떤 산업의 발전과 쇠락 등은 그 자체의 논리와 법칙에 따라 필연적인 경로를 따르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어디까지나 사회적 선택, 그리고 그에 따른 집단적 실천의 결과이다. 저자들은 우리의 먼 선조들이 완전히 새로운 사회적 현실을 형성하거나 상이한 사회질서 사이를 정기적으로 오가며 다양한 사회적 가능성을 실험했던 증거들을 제시한다. 이 책에서 저자들이 되살려내고자 하는 것은 “바로 이런 가능성의 감각”이다.(99쪽)

그럼에도 이 모든 이야기가 너무나 낯설고 남의 이야기처럼 들린다면, 우리가 던져야 할 다음 질문은 바로 이것이다. 누가 선택하고 있는가? 우리는 왜 자신의 삶에 영향을 끼치는 중요한 선택들로부터 멀리 동떨어져 있다고 느낄 수밖에 없는가? 그리고 “우리는 어쩌다 사회적 현실의 오직 한 가지 형태에 고착돼 버렸는가?”(715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