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육원 아이들의 독특한 얼굴, 상담에서 피어나다

2025-10-15     최명옥 칼럼·독자위원
최명옥한국지능정보사회진흥원

책상 위에 놓인 종이와 색연필, 창가로 스며드는 햇살. 평범한 교실 풍경이지만 그 속에서 아이들은 저마다의 이야기를 풀어냈다. 웃음과 진지함이 교차하고, 때로는 조용한 고백이 흘러나오면서 평범한 공간은 어느새 특별한 배움의 장으로 변해갔다.

W보육원에서 진행된 ‘스마트폰 과의존 예방 집단상담’은 단순한 예방교육이 아니라 아동·청소년들의 내면 깊숙이 자리한 심리적 욕구와 행동을 드러내는 자리였다. 이번 상담은 주 강사 1인과 보조 강사 2인이 함께 총 31명의 아동·청소년을 대상으로 6회기에 걸쳐 진행됐으며, 스마트폰 사용 습관을 돌아보고 건강한 대안 활동을 모색하는 시간으로 채워졌다.

아이들은 저마다 독특한 얼굴로 집단에 나타났다. 초등 6학년 성하(가명)는 초반 도발적인 언어를 반복하며 시선을 끌었다. 겉으로는 장난처럼 보였지만, 전문가의 눈에는 관계 속에서 인정받고자 하는 강한 욕구의 표현이었다. 시간이 흐르자 그는 “사실 나도 나를 잘 모르겠다”는 솔직한 고백을 하며 자기 이해의 첫걸음을 내디뎠다.

초등 4학년 별이(가명)는 애니메이션 장면을 따라 그리며 공격적인 표현을 사용했지만, 그림을 통해 불안을 해소하고 자기 조절을 시도했다. 그녀에게 그림은 단순한 취미가 아니라 정서를 다스리는 안전지대였다. 초등 2학년 민수(가명)는 언어 표현이 서툴러 적극적인 참여가 쉽지 않았지만, 손에 쥔 작은 스트레스볼을 끝내 놓지 않았다. 이는 말로 표현하지 못한 불안을 몸으로 드러낸 것이었고, 비언어적 매체 활용의 필요성을 보여줬다.

집단상담이 거듭되면서 아이들은 서로의 다름을 조금씩 수용해 나갔다. 일부는 지나치게 주도적이었지만, 다른 아이들은 침묵 속에서 자기 자리를 찾아갔다. 칭찬 스티커 붙이기, 마시멜로 실험,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 나누기와 같은 활동은 단순한 놀이가 아니라 자기조절과 사회적 기술을 배우는 훈련이었다. 마지막 회기에서는 아이들이 직접 “스마트폰에도 에티켓이 필요하다”는 규칙을 정하며 사회적 책임을 내면화하는 경험을 했다.

무엇보다 눈에 띈 것은 보육원 원장님과 교사들의 애씀이다. 아이들의 작은 변화를 놓치지 않고 격려하며, 상담이 흔들릴 때마다 함께 협력해 균형을 지켜냈다. 이는 단순한 행정적 지원을 넘어 아이들과 울고 웃는 삶의 교육자로서의 헌신을 보여줬다. 상담자들의 헌신 또한 빛났다. 주 강사와 보조 강사들은 아이들의 집중력 차이와 돌발 상황에도 흔들리지 않고, 개별 특성을 살피며 집단의 흐름을 유지했다. 프로그램 설계, 사전·사후 검사, 만족도 조사까지 병행하며 아이들 한 명 한 명의 변화를 기록한 노력 덕분에 상담은 의미 있는 성과를 거둘 수 있었다.

이번 상담은 기관의 지원과 협치 속에서 가능했다. 단순한 강사 파견을 넘어 프로그램 전 과정을 체계적으로 지원했고, 보육원과 꾸준히 소통하며 아이들의 특성에 맞는 활동을 조율했다. 이는 지역사회 협치의 모범적 사례로, 현장과 기관이 함께할 때 아동·청소년에게 실질적 변화를 만들어낼 수 있음을 보여줬다.

사전·사후 검사 결과 일부 아동은 ‘잠재적 위험군’에서 ‘일반 사용자군’으로 개선됐고, 다수는 자기 인식과 관계 기술에서 긍정적 변화를 보였다. 전문가적 관점에서 이는 단기간 프로그램임에도 불구하고 인지적 자각에서 정서적 조율로, 그리고 행동 변화로 이어진 결과로 해석된다.

아이들의 행동에는 공통적으로 정서적 결핍을 관계 속에서 보상하려는 시도가 있었다. 도발적 언어, 침묵, 그림, 신체활동 등 방식은 달랐지만, 그 밑바탕에는 “나는 괜찮은 존재인가?”라는 공통된 질문이 자리하고 있었다. 집단상담의 의의는 바로 이 질문을 드러내고, 서로의 경험을 나누며 함께 답을 찾아가는 과정에 있었다.

과제도 남았다. 첫째, 고위험군 아동에게는 개별 상담과 가정방문, 맞춤형 프로그램이 병행돼야 한다. 둘째, 단기 프로그램의 한계를 넘어 장기적이고 반복적인 운영이 필요하다. 셋째, 정서 조절 훈련을 강화해 공격성, 불안, 충동성을 보이는 아동에게 감정 일기, 심호흡, 인지 재구조화와 같은 개별화된 기법을 적용해야 한다.

W보육원은 단순한 보호 공간이 아니라 아이들에게 또 하나의 가족이다. 스마트폰은 때로 외로움의 도피처였지만, 이번 상담을 통해 아이들은 화면 너머에서 자기 자신과 관계의 소중함을 만났다. 평범한 교실에서의 시간이었지만 그 눈빛은 한층 깊어졌고, 작은 파문처럼 마음에 번져 희망의 불씨가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