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여 옥산면 수암2리 인구 29명, 남면 마정5리마을 18명
지방소멸 인구감소시대, 충청의 마을공동체 소멸위기 현장을 가다〈16〉
부여군, 올 6월 말 기준 5만 8874명, 2년 새 2811명이나 감소해
옥산면에서 가장 인구가 적은 수암 2리마을은 21세대에 총 29명
남면에서 가장 인구가 적은 마정5리마을, 6월 기준 13세대 18명
인구감소·학교폐교, “앞으로 20~30년이면 마을 없어질지도 몰라”
충청남도의 남부에 위치하고 있는 부여군은 청양군·공주시·논산시·보령시·서천군 등과 접하고 금강을 사이로 전라북도 익산시와 경계를 이루고 있다. 부여군의 서북쪽은 차령산맥의 여맥이 지나 산지를 이루며 남동쪽은 차차 낮아져 금강 유역에서는 평야가 발달했다. 금강이 군의 동부에서 곡류해 남쪽으로 흐른다. 금강으로 유입하는 금천(金川)·구룡천(九龍川)·은산천(恩山川)·석성천(石城川) 일대의 구룡평야를 중심으로 비옥한 평야가 발달 돼 있다.
부여군의 올해(2025년) 6월 30일 기준 총인구수는 5만 8874명(남자 2만 9360명, 여자 2만 9514명)이며, 세대수는 3만 2296세대, 세대당 인구는 1.82명, 남녀 비율은 0.99다. 1개월 전(2025년 5월)과 비교해 보면 주민등록 인구수 5만 8982명에서 5만 8874으로 108명(-0.18%)이 감소했다. 1년 전(2024년 6월)에 비하면 주민등록 인구수 6만 156명에서 5만 8874명으로 1282명(-2.13%)이 감소했으며, 2년 전(2023년 6월)과 비교해 보면 주민등록 인구수 6만 1685명에서 5만 8874명으로 2811명(-4.56%)이 감소한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 부여 옥산면 수암2리마을 인구 29명
부여군 옥산면은 고려말에 홍산군에 속해 당시 중양리로부터 구룡평야에 이르는 연천을 경계로 해 북쪽은 상서면, 남쪽은 하서면의 2개 면으로 존속해 오다가 1912년 군·면 폐합으로 군이 부여군으로 통합할 때 11개 리를 합해 부여군 서부에 위치하면서 서면으로 칭하다가 1914년 면 이름을 옥산으로 칭하면서 현재의 ‘옥산면(玉山面)’이 됐다. 옥산은 부여군 서단에 위치해 동쪽은 홍산면 토정리, 남면 금촌리와 접해 면의 경계가 되고, 남쪽은 서천군 마산면, 판교면, 북쪽은 보령군과 접해 있으며, 11개 리를 포괄하고 있다.
백제 시대에는 대산현에 속했고 경덕왕 이후는 가림군의 영역인 한산현에 속했다. 고려 때는 홍산현에 속했으며, 조선 시대 초기에도 홍산현의 지역으로 상서, 하서면의 지역이었다. 1914 년 행정구역 개편에 의해 상서면의 17개 동리와 남면의 반서리 일부를 병합해 옥녀봉의 이름을 따서 ‘옥산면(玉山面)’이라 했다.
충청남도의 서남쪽으로 흐르는 차령산맥의 칠갑산을 중심으로한 고원 지대를 이루고, 다시 남쪽으로 흐르면서 차츰 낮아지는 지역에 위치한다. 동쪽은 남면과 충화면, 남쪽은 서천군 마산면과 문산면 ,판교면. 서쪽은 보령군 미산면, 홍산면에 닿아있다. 옥산면의 총인구는 2000년 6월 말 기준 845가구에 2127명이 거주했으나 올해(2025년) 6월 말 기준 1336명으로 5년 새 791명이 감소해 인구 1500명 선도 무너졌다.
옥산면에서 가장 인구가 적은 수암리(秀岩里)는 본래 홍산군 상서면의 지역으로 증암리(甑岩里)와 석우리(石隅里), 원곡리(院谷里)의 일부를 병합, 수암리로 정해 현재에 이르고 있다. 시루 모양의 바위가 있다고 해 시루바위, 혹은 증암(甑岩)이라 했으며, 이후 이름이 수암(秀岩)으로 바뀐 데서 ‘수암리(秀岩里)’란 이름이 유래했다. 삼국시대에 백제 대산현(大山縣)에 속했다. 통일신라 시대에는 한산현(翰山縣)에, 고려 시대에는 홍산현(鴻山縣)에 속했다. 조선 말 홍산군(鴻山郡) 상서면(上西面) 지역이었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홍산군이 폐지되고, 증암리(甑岩里)와 석우리(石隅里), 원곡리(院谷里)의 일부를 병합해 충청남도 부여군 옥산면 수암리로 개설됐다.
북쪽에는 비홍산 줄기가 있으며, 마을 한가운데 낮은 야산이 있다. 남쪽에는 금천이 흐르고 있다. 수암리는 부여군 서쪽에 있는 옥산면의 11개 법정리 가운데 하나이며, 옥산면의 북서쪽에 위치한다. 동쪽으로 홍산면 남촌리·홍양리, 서쪽으로 옥산저수지와 봉산리, 남쪽으로 내대리·안서리, 북쪽으로 홍산면 홍양리와 접해 있다. 주 소득원은 벼농사와 버섯 재배다.
국도 제4호선인 대백제로가 남쪽으로 지나며, 안남로가 마을을 연결하고 있다. 행정리로는 수암1리, 수암2리가 있다. 자연마을로는 돌모루, 좌곡, 시루바위가 있다. 면적은 1.79㎢이며, 2023년 5월 기준 인구는 63가구, 102명(남자 51명, 여자 51명)이었으나 올해(2025년) 6월 기준 인구는 50가구, 96명(남자 50명, 여자 46명)이다. 옥산면에서 가장 인구가 적은 마을은 수암2리마을로 올해 6월 말 기준 21세대, 29명(남자 15명, 여자 14명)이 살고 있다.
■ 부여군 남면 마정5리마을 인구 18명
홍산군의 남쪽이라 해서 남면(南面)이라 했다. 백제 시대에는 대산현(大山縣)에 속했고, 고려 시대에는 홍산현(鴻山縣)에 속했다. 조선 시대에는 홍산현에 속했으며, 조선 말에는 홍산군에 속했다.
마동(馬東)·마서(馬西)·호암(虎巖)·송곡(松谷)·회동(檜東)·송서(松西)·진곡(眞谷)·내동(內東)·회서(檜西)·내서(內西)·신기(新基)·선동(船東)·선서(船西)·사곡(社谷) 등 14개 리를 관할 했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상동면의 10리를 병합해 충청남도 부여군 남면으로 개설됐다. 남면은 부여군에서도 가장 낮고 평평한 지역인데, 남면 전체가 해발 50m 이내의 지역이다. 북쪽에는 금천 유역과 접해 충적 범람원인 남면평야를 이룬다.
구룡평야 중 남면 앞에 있는 것이 남면평야다. 남면평야는 해수면이 현재보다 100m 이상 낮았던 지난 빙기에 하천에 의해 깊이 파인 곡지가 후빙기 이래 해수면 상승으로 인해 퇴적된 충적물로 매곡되면서 형성된 지형이라고 한다. 해수면이 낮았을 때 하천의 침식 기준면이 낮아져서 과거의 하상이 깊게 파이면서 더욱 넓어졌다는 것.
남쪽은 100m 정도의 동서 방향의 좁은 띠 모양의 구릉성 산지를 이루고 있으며 충화면, 장암면과 경계를 이룬다. 남면은 충청남도 부여군의 남서부에 있는 법정면이며, 삼용리, 송학리, 마정리, 송암리, 회동리, 내곡리, 신홍리, 대선리, 금천리 9개 법정리와 25개 행정리로 구성돼 있다. 소재지인 회동리에는 남면행정복지센터, 부여경찰서 남면치안센터, 서부여농협 남면지점 등이 있다. 교육 시설로는 마정리에 마정초등학교가 있다.
문화 유적으로는 남면 내곡리 고인돌, 송암리 고인돌군, 송학리 유적, 삼용리 용성 유적, 동절사, 충정사가 있다. 동쪽으로 장암면, 서쪽으로 홍산면, 남쪽으로 충화면, 북쪽으로 구룡면과 접해 있다. 현재 면적은 20.98㎢이며, 2023년 5월 기준 인구는 993가구, 1753명(남자 855명, 여자 898명)이었으나 올해(2025년) 6월 기준 1715명으로 2년 새 38명이 줄었다.
부여 남면에서 가장 인구가 적은 마정리(馬井里)는 지역에 큰 우물이 있다고 해서 ‘마정(馬井)’ 또는 ‘말우물’이라고 부른 데서 ‘마정리(馬井里)’란 이름이 유래했다. 삼국시대에는 백제 대산현(大山縣)에 속했다. 통일신라 시대에는 한산현(翰山縣)에, 고려 시대에는 홍산현(鴻山縣)에 속했다. 조선 시대에는 홍산현(조선 말에는 홍산군) 남면(南面) 지역이었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마동리, 마서리와 임천군 북박면 역리, 지경리의 각 일부가 병합돼 충청남도 부여군 남면 마정리로 개설됐다. 남쪽에는 마을이 자리 잡은 야산과 들이 있고, 북쪽에는 금천을 낀 남면평야가 있다. 또한 마을 남쪽에는 마정천이 흐르고 있으며, 남동쪽 야산 지대를 제외하면 대부분이 평지다. 부여군 남면의 9개 법정리 가운데 하나인 마정리는 남면 동쪽 끝에 위치한다. 동쪽으로 장암면 합곡리, 서쪽으로 송암리, 남쪽으로 장암면 점상리, 북쪽으로 구룡면 용당리와 접해 있다.
행정리로는 마정1리, 마정2리, 마정3리, 마정4리, 마정5리, 마정6리, 마정7리로 구성됐으며, 마을에 마정초등학교가 있었으나 올해 폐교됐다. 한때 이름난 마정장터도 있었으나 현재는 그 흔적만이 남아 있다. 자연마을로는 점생, 신석티, 서편(마서리), 장대, 샘골(정곡), 소라말(송촌), 곡촌, 소머리가 있다. 마정리의 면적은 4.23㎢이며, 2023년 5월 기준 인구는 222가구, 398명(남자 199명, 여자 199명)이었으나 올해(2025년) 6월 말 기준 인구가 387명으로 2년 새 11명이 줄었다.
남면에서 가장 인구가 적은 마을은 마정5리마을로 올해 6월 말 기준 13세대, 18명(남자 9명, 여자 9명)이 살아가고 있다.
마정5리마을 조창래 이장은 “부여군도 그렇고 이 마을도 그렇지만, 인구감소도 문제지만 학교 붕괴 문제도 심각혀. 마정초등학교도 올해 75년 만에 폐교됐어. 학교에 갈 애들이 있어야지. 지역사회 전체가 공동으로 대응해야 할 중대 사안이지만 워찌할 도리가 없어, 출생아가 수년째 하나도 읎으니 어쩌겠어, 애를 낳을 수 있는 젊은이가 있어야지. 이 마을도 노인네들 뿐이니, 앞으로 20~30년이면 마을이 읎어질지도 모를 일인데…”라며 씁쓸하다는 듯 말을 흐렸다.
정말이지, 학교의 폐교는 지역사회의 중심축을 흔들고 면 단위 지역의 공동화 현상을 가속화하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실제로 부여군 남면에는 이미 학교가 한 곳도 없는 상황이 됐다. 1면 1개교가 무너진 것이다. 남면의 인구가 지난 6월 말 1715명에서 한 달 새 1711명으로 군 내에서 하위권에 머물며 면세가 급격히 약화된 상태다. 지역학교의 폐교가 지역사회의 존립 자체에 심각한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례이다.
<이 기사는 충청남도지역미디어지원사업의 지원을 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