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철한 민중적 민족역사의식과 치열한 현실의식을 담다

1960년대 대표적 민중 민족시인 신동엽 시인의 시선집 〈누가 하늘을 보았다 하는가〉

2025-10-23     정세훈 칼럼·독자위원
<strong>정세훈</strong><br>시인,

예술적 형상과 역사의식이 절정으로 융합된 탁월한 작품으로 평가되고 있는 절창의 시 ‘껍데기는 가라’와 동학혁명을 민중적 주체의 시각으로 우리의 근대사를 파악하고, 정당한 역사적 자리매김을 시도한 장시 ‘금강’을 발표하는 등 투철한 민중적 민족 역사의식과 치열한 현실의식의 창작활동을 펼친 1960년대 대표적 민중 민족시인 신동엽 시인의 시선집 <누가 하늘을 보았다 하는가>가 1979년 출간됐다.

시인이 1969년 타계한 지 10년 후에 창작과비평사에서 ‘창비시선’ 20번으로 출간된 시집은, 1부에 시 ‘진달래 산천’ 등 시인이 등단한 1959년부터 1963년까지 발표한 작품을, 2부에 시 ‘껍데기는 가라’ 등 1964년부터 1968년까지 발표한 작품을, 3부에 시 ‘누가 하늘을 보았다 하는가’ 등 유작 및 연대 미상의 작품을, 4부에 장시 ‘금강’의 서장과 조선일보 신춘문예 입선작 ‘이야기하는 쟁기꾼의 대지’를 수록했다. 
 

“(전략)//국민학교를 갓 나왔을까./새로 사 신은 운동환 벗어 품고/그 소년의 등허리선 먼 길 떠나온 고구마가/흙 묻은 얼굴들을 맞부비며 저희끼리 비에 젖고 있었다./충청북도 보은 속리산, 아니면/전라남도 해남땅 어촌 말씨였을까./나는 가로수 하나를 걷다 되돌아섰다./그러나 노동자의 홍수 속에 묻혀 그 소년은 보이지 않았다.//그렇지./눈녹이 바람이 부는 질척질척한 겨울날,/종묘 담을 끼고 돌다가 나는 보았어./그의 누나였을까./부은 한쪽 눈의 창녀가 양지쪽 기대 앉아/속내의 바람으로, 때묻은 긴 편지를 읽고 있었지.//그리고 언젠가 보았어./세종로 고층건물 공사장,/자갈지게 등짐하던 노동자 하나이/허리를 다쳐 쓰러져 있었지./그 소년의 아버지였을까./반도의 하늘 높이서 태양이 쏟아지고,/싸늘한 땀방울 뿜어낸 이마엔 세 줄기 강물./대륙의 섬나라의/그리고 또 오늘 저 새로운 은행국(銀行國)의/물결이 뒹굴고 있었다.//남은 것은 없었다./나날이 허물어져 가는 그나마 토방 한 칸./봄이면 쑥, 여름이면 나무뿌리, 가을이면 타작마당을 휩쓰는 빈 바람./변한 것은 없었다./이조(李朝) 오백 년은 끝나지 않았다.//옛날 같으면 북간도라도 갔지./기껏해야 버스길 삼백 리 서울로 왔지./고층건물 침대 속 누워 비료광고만 뿌리는 거머리 마을,/또 무슨 넉살 꾸미기 위해 짓는지도 모를 빌딩 공사장,/도시락 차고 왔지.//이슬비 오는 날,/낯선 소년이 나를 붙들고 동대문을 물었다./그 소년의 죄 없이 크고 맑기만 한 눈동자엔 밤이 내리고/노동으로 지친 나의 가슴에선 도시락 보자기가/비에 젖고 있었다.”(시 ‘종로5가’ 일부)

시집에 대해 김우창 교수는 뒤표지 글에서 “신동엽의 이 작품으로 하여 우리의 시의식은 하나의 새로운 차원을 얻는다. 이 시의 진실은 우리의 마음을 감동케 할 충분한 힘을 가지고 있다”고 밝혔으며, 구중서 평론가는 “신동엽은 그의 헌걸찬 시편들과 함께 자신이 그처럼 사랑하던 모토와 형제들의 역사 속에 길이 살아서 흐를 것이다”라고 평했다.

1930년 충남 부여에서 출생한 시인은 전주 사범학교와 건국대 사학과를 졸업했으며, 건국대 대학원 국문과를 이수했다. 1959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장시 ‘이야기하는 쟁기꾼의 대지’가 입선되면서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시집 <아사녀>와 시선집 <누가 하늘을 보았다 하는가>, 신동엽전집 등이 있다. 60여 편의 단시와 ‘금강’, ‘이야기하는 쟁기꾼의 대지’, ‘여자의 삶’ 등 3편의 장시, 시극 ‘그 입술에 파인 그늘’ 1편, 평론 ‘시인 정신론’, ‘시와 사상성’ 등 10여 편을 남기고 1969년 4월 7일 유명을 달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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