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을 잡아먹는 도깨비의 시대
이번 여름, 내가 일하는 공장으로 보이스피싱 전화가 왔다. 홍성교도소라 했는데, 재소자 후식용으로 우리 제품을 납품받고 싶다고 했다. 의심스러운 부분이 몇 가지 있었지만, 우리 공장 같은 소규모 업체에까지 보이스피싱이 올까 싶어 출고를 위해 포장까지 했다. 다행히 피싱이라는 걸 알게 돼 피해는 입지 않았다. 그제서야 충남 소상공인을 대상으로 한 ‘노쇼 사기’ 범죄가 유행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당시 충남에 집중됐던 피싱 사기 때문인지 최근 캄보디아 범죄 수사에 충남 경찰청이 집중수사관서로 지정됐다.
일본 소년 만화 《귀멸의 칼날(이하 ‘귀칼’)》이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역대급 히트를 쳤다. 일본 영화 역대 흥행 순위 1위였던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을 제치고 최고 흥행작이 되었다. 반일본 정서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에서도 많은 팬이 생겼다. 화려한 영상과 웅장한 음악의 애니메이션이 원작의 인기를 끌어올렸다. 하지만 원작 본래의 힘이 있지 않고 영상미만으로 그만큼의 공감을 얻진 못했을 것이다. 그렇다면, ‘시련-모험(수련)-성장’이라는 소년만화에 늘상 있는 서사를 반복하고 있는 이 만화가 어떻게 사람들의 마음을 얻었을까?
‘귀칼’의 배경은 1900년대 초, 서양문물이 쏟아져 들어오던 일본이다. 논밭으로 열차가 깔렸고, 무사 계급이 해체됐다. 이곳에는 사람을 잡아먹는 도깨비가 밤에 나타나 사람을 잡아먹는다는 전설이 내려온다. 어느 날, 주인공 소년의 집에 도깨비가 찾아와 소년은 가족 모두를 잃게 된다. 여동생만 살아남았는데, 여동생은 도깨비가 돼버렸다. 주인공은 여동생을 다시 인간으로 되돌리기 위해, 가족의 복수를 위해 도깨비를 처치하는 귀살대에 들어간다. 소년은 귀살대에서 친구를 만들고 수련과 역경을 딛으며 성장해 간다.
도깨비는 죽지 않는 불사의 존재다. 끝없는 재생능력에 요술까지 쓸 수 있다. 하지만 영원히 인간을 먹어야 하는 혈귀가 되어야 한다. 사람을 잡아먹을수록 혈귀는 더 강해진다. 이런 도깨비들에겐 혈귀를 만들고 지배하는 대장이 있는데, 그는 자신의 유일한 약점인 태양을 극복해 궁극의 존재가 되고자 한다.
이야기 속 인물들은 선과 악으로 분명히 나뉜다. 도깨비가 된 인간과 인간(성)을 지키기로 한 인간의 싸움. 끝없는 성장을 하는 이들과 유한성이라는 한계를 짊어진 이들의 대결은 평면적으로 보이기도 하다. 흑과 백 사이에 특별한 반전도 없다. 하지만 악당 무리도 혈귀가 되면서까지 강함을 욕망하게 된 사연이 나오는데, 이것이 이야기의 입체감을 살린다. 결국 귀칼은 강함이란 무엇이어야 하는가에 대해 반복해서 이야기한다.
역경을 딛고 성장하는 이야기는 사람의 마음을 끈다. 그럼에도 ‘귀칼’의 흥행은 만화 속 배경에 지금 현재의 동질성이 녹아있기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1900년 즈음의 일본은 풍요를 구가하던 시대지만, 서구문명과 충돌하던 시기다. 기존 질서가 무너져 가치관을 상실하고, 불안이 커지는 속에 군국주의가 출현했다.
온 나라를 충격에 빠뜨린 캄보디아 범죄의 타깃은 중국, 일본의 청년도 포함돼 있었다. 출신 지역은 대부분 지방. 2030 남성들이 캄보디아로 향한 이유는 취업 때문이었다. 범죄조직은 손아귀에 들어온 이들을 어떻게든 ‘돈’으로 만들어냈다. 또 다른 피해자를 꾀어내는 도구로, 안 되면 신체까지 활용했다. 현실에 살아있는 혈귀들이었다. 그들의 요술이 피싱이라는 이름으로 충남의 작은 식품공장으로까지 뻗어온 것이다.
뉴스에 연일 코스피 지수가 올랐다는 이야기가 계속 나온다. 청와대는 매일 코스피 지수를 보고 받고, 여당 관계자는 이재명 정부의 성공은 코스피에 달렸다 말한다. 이제라도 시장에 올라타야 한다느니, 늦으면 뒤처질 거라는 우려의 말이 방송마다 인사처럼 나온다. 높아진 주가 지수가 모두를 부자로 만들 것처럼 말한다. 경제 활성화, 좋다. 하지만 국내 주식의 80%는 상위 7%가 갖고 있다. 코스피 성장만 말하는 것은 부동산으로 이미 벌어졌던 자산격차를 더 벌어지게 하는 결과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것이 이제 노동시장에 진입하는 젊은이들에게 무엇을 말할까.
과거에 ‘만약에’는 없지만, 만약 코스피가 높았다면 젊은이들의 캄보디아행을 막을 수 있었을까? 미국이 외치는 ‘GREAT AGAIN(다시 위대하게)!’은 결국 성장은 답이 될 수 없다는 것을 말하는 것 아닐까. 새 시대에는 인간을 잡아먹는 체제가 아닌 새로운 가치관이 필요하다. 역경을 딛고 모험을 떠나고자 하는 젊은이들에게 우리가 물려줘야 할 사회는 어떤 사회인가. 해답을 찾기 위한 모험과 실험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
<이 칼럼은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