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을 다루는 손으로 삶을 지켜내는 사람의 이야기
여덟 직함의 이유, “봉사는 중독입니다” 이웃의 삶 마지막 순간을 지키고 일상의 안전을 지키는 김영환 씨
[홍주일보 홍성=이정은 기자] “죽음의 문 앞에서 마지막 온기를 살피고, 삶의 한복판에서 수많은 사람들의 안전을 지켜온 김영환 씨는 봉사를 숙명처럼 품고 묵묵히 자신의 자리에서 힘을 보태는 사람이다.”
죽음을 다루는 장의사로서 마지막 길을 지키고, 의용소방대장으로 지역의 위기에 달려가며, 홍성전통시장상인회의 사무국장으로 시장을 든든히 받쳐주는 사람. 김영환(52) 씨는 한 달에 스무 번이 넘는 모임에, 집에서 저녁을 먹는 날은 손에 꼽는다. 홍성에서 태어나, 홍성을 위해 뛰고, 홍성의 사람들과 함께 울고 웃어온 사람 냄새 짙은 김영환 씨를 만나 그동안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 본업, 장의사로 살아온 30년 세월
“아버지가 하시던 일을 잇는 거죠. 2대째입니다.”
그는 꽃상여를 하던 시절부터 아버지의 일인 장의를 자연스럽게 배워 업으로 삼게 됐다. 이후 장례 문화가 매장에서 화장으로 변하면서, 장의사(고향장의사·고향상조)를 개업한 지도 벌써 30년이 됐다. 그는 장의사란 직업에 자긍심을 가지고 수많은 이들의 마지막 순간을 지켜왔다. 그러나 회의감을 느낄 때가 두어 번 있었다며, 쓴 표정으로 천천히 말을 이었다.
“급성백혈병으로 아이를 잃은 집이 있었어요. 안치실에 모시려고 수세포를 들었는데… 아직 따뜻한 겁니다. 그래서 아이 어머니께 ‘아들 온기 식을 때까지 안고 계세요’하고 나왔죠. 그때 밖에서 한참을 울었어요.”
그는 부모에게 아이가 평소 즐겨 입던 옷을 가져오라고 해 수의 대신 그 옷을 입혀 보냈다. 또 한 번은 어릴 적부터 알고 지내던 동생이 갑작스레 세상을 떠났을 때였다. 당시 베트남에 있던 김영환 씨는 소식을 듣고 급히 귀국해, 인천공항에서 홍성까지 택시를 타고 달려와 염을 했다.
“제가 이런 일을 안 했더라면 이런 순간을, 마지막을 보지 않았겠죠.”
그는 죽음을 자주 마주하는 만큼, 어머니와 주변 어르신들께 더 잘해야 한다는 마음을 늘 되새긴다고 말했다. 이어 장의사로서 가장 보람을 느끼는 순간은 상주들이 건네는 따뜻한 감사 인사라고 했다.
“사고 없이 장례를 잘 마무리하고 나면, 상주 분들이 오셔서 ‘집안 어른들이 모두 고마워하신다, 감사 인사를 꼭 전해달라 하셨다’고 말씀하세요. 그럴 때가 가장 보람되죠.”
■ 26년째 의용소방대원, 지역의 한복판에서 뛰다
김영환 대장은 1999년 남자의용소방대에 입대했다. 현재는 소방서에서 공개 모집을 하고 있지만, 과거에는 지인을 통해 추천제로 입대하는 방식이었다. 김 대장은 64번째로 남자의용소방대에 들어왔다며 당시를 회상했다.
“그때는 한 달에 두 번씩 아침 6시에 집합해 대복을 갖춰 입고 구보를 했어요. 너른 장소에 가서 소방 호스 던지는 연습도 하고 그랬죠.”
그에게 의용소방대장으로서 가장 기억에 남는 사건은 단연 서부 산불이다. 2023년 4월 2일, 김영환 대장은 둘째 아들이 거주하고 있는 충북 옥천군으로 향하고 있었다. 아들을 만나 잠깐 샌드위치 가게에 들러 음식이 나오길 기다리고 있던 때, 텔레비전에서 기자의 새된 음성이 흘러나왔다.
“서부면에 화마가 덮쳤다는 뉴스를 보자마자 아들에게 전달해야 했던 짐도 내려주지 못한 채 서부로 달려갔어요. 우리 지역의 일인데 어떻게 안 가겠습니까.”
당연하다는 듯, 책임감이 묻어있는 어조였다. 김 대장을 비롯한 의용소방대원들 30여 명은 서부 산불 화재를 진압하기 위해 밤낮 할 것 없이 손을 보탰다. 그간 소규모의 화재 진압만을 해왔던 의용소방대원들은 서부 산불을 통해 진정한 소방대원의 역할을 배울 수 있었다.
“일어나지 말아야 했을 일이지만, 그날을 계기로 많이 배웠죠. 의용소방대원으로서 우리가 해야 할 일을 진짜로 알게 됐다고 생각합니다.”
의용소방대는 산불 조심 캠페인과 지역의 작은 행사부터 글로벌바베큐페스티벌 같은 대형 축제까지, 현장에서 화재 예방은 물론이고 교통 통제와 안전사고 방지 등 다양한 역할을 맡고 있다.
■ 전통시장의 현실을 가장 가까이에서 보다
김영환 씨는 홍성전통시장상인회의 사무국장으로도 9년째 일하고 있다. 그 덕분에 그는 전통시장의 현실을 누구보다 깊이 이해하고 있다.
“상인들이 고령화됐어요. 평균 나이가 70~75세 정도죠.”
과거엔 상인의 자녀가 일을 도와 같이 운영하거나 젊은 직원들을 뒀지만, 시대가 흐르면서 대형마트와 온라인으로 소비자가 흡수되는 바람에 전통시장의 매출이 현격히 줄어들게 됐다. 직접 재배한 농산물과 싱싱한 수산물, 호떡·어묵 같은 즉석 음식은 여전히 시장의 인기 품목이지만, 공산품을 판매하던 점포는 거의 사라지다시피 했다. 김영환 사무국장은 편의 시설에 대한 문제가 가장 큰 과제라고 말한다.
“전통시장은 아무래도 기후의 영향을 많이 받아요. 대형마트나 온라인에서는 불가능한, 가격을 깎는다거나 덤으로 더 받을 수 있는, 뭐 이런 정은 있지만, 이러한 장점을 넘어서는 게 사실 기후로 인한 불편감이거든요.”
전통시장상인회는 친절 교육·원산지 표시·고객선 지키기 등을 수시로 실행하고 있으며, 전통시장 시설 현대화를 위해 홍성군 경제정책과에도 꾸준히 의견을 전달하고 있다. 김영환 사무국장은 먹거리 공간, 쉼터, 보관함 같은 시설이 마련되면 전통시장이 다시 활성화될 것이라고 말한다. 일례로, 싱싱하고 택배까지 가능한 수산물을 사기 위해 홍성전통시장을 찾는 타지 손님들도 적지 않다고 한다.
“홍성이 수산과 축산 모두 유명하니 맛을 본 사람들이라면 분명 다음 소비로도 이어질 거라고 생각해요. 장 구경만 하고 가는 것이 아니라 상차림으로 해서 먹을 수 있는 공간이 마련된다면 ‘머물 수 있는 시장’이 되겠죠.”
■ 어디든 달려가는 지역 일꾼의 작은 바람
김영환 씨는 홍성읍남성의용소방대 대장, 홍성전통시장상인회 사무국장, 홍성군전·의경동지회 회장, 홍성읍재향군인회 회장 등 총 여덟 곳의 지역 단체·모임에서 궂은일을 맡고 있다. 인터뷰 막바지, 그렇게 많은 지역 활동을 하면서도 지치지 않는 이유를 물었다. 그러자 그는 환하게 웃으며 답했다.
“제가 스물네 살일 때,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참 힘들었어요. 그러다 보니 주위를 둘러보게 되더라고요. 우리 주위에 어려운 분들이 많잖아요. 그러니까 제가 도울 수 있는 만큼 봉사를 열심히 하는 거예요. 그리고 봉사는 하다 보면 계속하게 돼요. 정말 중독이에요. 나이가 들더라도 내 몸이 건강하고 큰 어려움을 겪지 않는다면, 지역 사회에서 어떤 일이든 베풀며 살고 싶어요. 그리고 제 자녀들에게도 이러한 마음과 행동이 배움이 될 거라고 생각해요. 저의 작은 도움으로 누군가 나아지는 모습을 보면, 그게 제일 보람이죠.”
삶과 죽음, 그 모든 자리에서 ‘사람’을 위해 걸어온 그의 발걸음이 홍성의 내일을 더 따뜻하게 만들고 있다. 직함보단 마음으로 기억될 사람, 김영환 씨는 앞으로도 지금처럼 단단하게 고향 홍성의 한 켠을 조용히 밝혀나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