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울한 민족사와 70년대 도농의 민중 노동 담은 가편의 시 가득 수록

명쾌 명료하며 깊이 있는 함축적 탁월한 시를 짓는 이시영 시인의 첫 시집 〈만월〉

2025-11-20     정세훈 칼럼·독자위원
<strong>정세훈</strong><br>시인,

노동문학은 1935년 일제의 탄압에 의해 강제 해산된 카프(KAPF. 조선프롤레타리아예술동맹)이후 35년 동안 단절됐다. 1945년 일제로부터 해방되었으나, 남북분단으로 우리 사회에선 ‘노동’이란 용어 자체가 금기시됐다. 이승만 정권은 나 스스로 일하는 개념의 ‘노동’을 타자가 시켜서 일하는 개념의 일제 용어인 ‘근로’가 대신토록 했다. 이러한 상황과 분위기는 현재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일제에 이어 이승만, 박정희 정권의 탄압에 의해 단절됐던 노동문학은 1970년 11월 13일 전태일 열사의 분신에 자극받은 지식인 문인 김수영·신동엽·고은·신경림·김지하·조세희 등에 의해 다시 길을 열었으며, 뒤이어 이성부·조태일·정희성·김준태·양성우·이시영 등이 그 폭을 넓혔다. 

그 폭을 넓힌 장본인 중, 명쾌 명료하며 깊이 있는 함축적 탁월한 시를 짓는 이시영 시인이 1976년 12월 출판사 ‘창작과비평사’에서 첫 시집 <만월>을 ‘창비시선’으로 펴냈다. 시집에는 우리의 암울한 민족사와, 1970년대 초중반을 배경으로 급변하는 도농 현실을 감내하는 노동과 민중을 세심하게 담은 가편의 시들이 가득하다.

시인 이성부는 시집 발문에서 “이시영의 모든 작품은 한결같이 내용의 절실함과 고도의 시적 기교가 잘 조화되는 묘미를 갖추고 있다”며 “어떤 평범한 사물도 그의 밝고 깊은 렌즈를 통해 나오면 전혀 새로운 얼굴로 된다”고 논했다. 또한 “그는 그 자신의 어린 시절의 기억들을, 아무 의미없이 그냥 지나쳐버려도 좋을 기억들을, 가치의 차원으로 환치시키는 고도의 기능공이다”라며 “그에게서는 일견 단순하고 평범한 농촌 풍경도, 그 내부의 모순이나 밑바닥을 응시함으로써 하나의 역사적 풍경이 된다”고 평했다.

시인 정진규는 시집 뒤표지글에서 “우리는 시를 잃지 않고 양심을 잃지 않는 이 오랜만의 진실한 시인에게 많은 기대를 걸어도 좋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새마을 스피커를 듣다가도/못 견디게 보고 싶은 공장 동무들/웃통을 벗고 달구어진 쇠를 치고/큰 소리로 유행가를 부르다 일어서면/더욱 기운이 솟는 팔다리/야근의 새벽 밥집에서도/다리 밑 좁은 선술집에서도/내일을 이야기하는 늠름한 얼굴들/좀처럼 식지 않는 어깨/소문도 없이 공장이 문을 닫은 날/밤거리에 벌떼처럼 아우성으로 남더니/다 어디로 갔는지 몰라, 힘뿐인 사내들/선술집도 문을 닫고 밥집을 걷어가 버려도/모자를 쓰고 그 앞을 서성거리더니/다시 만나자고, 만나서 또 웃자고/뿔뿔이 거기서 흩어졌데/아디 가 무슨 일 하고 있는지 몰라/......”(시 ‘먼동’ 일부)
1949년 전라남도 구례군에서 출생한 시인은 서라벌예술대학 문예창작과(현 중앙대학교 문예창작전공) 졸업 후 고려대학교 대학원 국어국문학과를 중퇴했다. 1969년 <중앙일보> 신춘문예에 시조가, <월간문학> 제3회 신인작품 공모에 시가 당선돼 등단했다. 시집 <만월>, <바람 속으로>, <길은 멀다 친구여>, <이슬 맺힌 노래>, <무늬>, <사이>, <조용한 푸른하늘>, <은빛 호각>, <바다 호수>, <아르갈의 향기>, <우리의 죽은 자들을 위해>, <긴 노래, 짧은 시>, <경찰은 그들을 사람으로 보지 않았다>, <호야네 말>, <하동> 등과, 산문집 <곧 수풀은 베어지리라>, <시 읽기의 즐거움> 등이 있다. 한국작가회의(옛 민족문학작가회의)의 이사장을 역임했다. 정지용 문학상, 동서문학상, 현대불교문학상, 지훈상, 백석문학상, 대한민국문화예술상, 만해문학상, 임화문학예술상, 문병란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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