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국력의 시대, 소수의 기술 독점을 우려한다

2025-11-20     윤장렬 칼럼·독자위원
<strong>윤장렬</strong><br>베를린

한미 공동 팩트시트를 둘러싼 국회 비준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 여야는 문서가 조약인지 단순한 MOU인지 법적 구분을 두고 공방을 벌이지만, 정작 중요한 질문은 사라졌다. 왜 한국은 이번 협상에서 “얻기보다 손실을 막기 위한 비자발적 협상”을 해야 했는가. 이재명 대통령이 “우리가 가진 최대의 무기는 버티는 것뿐이었다”고 말한 대목은 현 국제 질서의 약육강식적 구조를 드러낸다.

정부는 이러한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 국력을 강화해야 한다는 서사를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오늘날 국력은 경제력과 군사력만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AI, 데이터, 반도체, 디지털 인프라가 국가 경쟁력을 좌우하는 시대다. 문제는 이 경쟁이 기술의 공개·협력보다는 폐쇄·독점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작동하고 있다는 점이다. 강대국과 글로벌 빅테크가 AI 모델과 데이터 자원을 전략 자산으로 사유화할수록 약소국과 시민은 기술 접근권을 잃고 불평등은 심화된다.

AI 국력 경쟁의 화려한 수사 뒤에는 냉혹한 현실이 존재한다. 기술 격차는 교육·직업·소득의 격차로 직결되고, AI가 사유화되고 독점화될수록 시민의 기회는 줄어든다. 결과적으로 ‘국력 강화’라는 구호가 미래의 빈곤을 재생산하는 역설적 상황을 초래할 위험이 있다.

그럼에도 정부는 주요 기업·경제인들과 함께 AI 산업 활성화 방안을 서둘러 논의하고 있다. 문제는 이번 협상으로 발생하는 재정적 부담이 국민의 세금에서 충당된다는 점이다. 비용은 국민에게 전가되지만, 이익과 기회는 대기업과 특정 산업에 집중될 가능성이 크다. 이러한 국내 불균형은 국제적 기술 독점 구조와도 자연스럽게 맞물린다. 데이터와 자본이 소수 기업에 집중되는 구조는 곧 미국·유럽·중국 등 소수 국가가 AI 기술을 독점하는 세계적 질서의 연장선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언론의 역할은 더욱 중요해진다. 정부와 기업이 내놓는 “AI 산업 육성”이라는 표면적 담론을 그대로 전하는 데 그칠 것이 아니라, 근본적인 질문을 던져야 한다. 국민의 세금으로 구축되는 AI 기술의 혜택은 누구에게 귀속되는가. 기업 중심 전략은 기술 주권과 공공성을 어떻게 훼손하는가. 소수 국가와 소수 기업의 기술 독점은 한국 사회와 시민의 미래를 어떻게 제약하는가.

AI 시대의 국력은 독점이 아니라 접근성, 경쟁이 아니라 공공성에서 비롯된다. 기술이 국가와 소수 자본의 전략 자산으로만 귀속된다면 국력은 강화될지 몰라도 시민의 권리와 기회는 약화될 것이다. 지금 필요한 것은 AI를 소수의 기업과 국력을 키우는 도구가 아닌, 국가 단위를 넘은 사회 전체의 역량을 확장하는 공공적 자산으로 만드는 일이다. 그 방향을 비추고 감시하는 것, 그것이 지금 언론이 수행해야 할 역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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