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한의 소설 ‘수라도’의 배경도시, 부산과 경남 양산

일제강점기·해방공간 문학의 배경도시, 역사·문화관광 로컬 브랜드로 〈7〉

2025-12-04     취재·사진=한관우·김경미 기자

일제 치하 4대 가족 수난사, 인고와 지절, 초월의 정신 보여줘
양산 원동면 화제리, 김정한의 소설 ‘수라도’의 중심 무대 집중
오봉산·토곡산에 둘러싸인 화제리 열두 마을 정경 손에 잡힐듯
화제리 지역적 특성·매력, 문학현장 몰려 있는 문학광장 최적지

 

“사람답게 살아라. 비록 고통스러울지라도 불의에 타협한다든가 굴복해서는 안 된다. 그것은 사람의 갈 길이 아니다.” 자신의 소설 ‘산거족’ 중에서 나오는 한 대목이지만 이는 요산 김정한의 생전 좌우명이기도 했다. 대쪽같은 성품의 소유자로 늘 힘없는 사람들의 아픔을 대변했던 요산 김정한은 지인과 수 많은 제자들에게 항상 올곧게 살기를 강조했다고 전해진다. 요산이 세상을 떠난 지 올해로 29년째, 30년을 앞두고 있지만 지금도 카랑카랑한 그의 목소리를 기억하는 사람들이 많다고 한다. 특히 광복 80주년을 맞이하는 올해, 일제강점기 동안 수차례 옥고를 치른 요산은 손수 우리말 사전과 식물도감을 만들며 민족혼을 지키기 위해 노력한 것은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다.

지금까지도 부산지역 문화계의 커다란 정신적 지주로 우뚝한 소설가 요산(樂山) 김정한(金廷漢, 1908~1996)은 1908년 당시 경남 동래군 북면 남산리(현 부산 금정구 남산동)에서 중농인 김기수의 장남으로 태어나 서울 중앙고보를 다니다가 동래고보로 전학, 학업을 마쳤다. 동래고보 졸업 후 동경의 제일외국어학원에서 1년간 공부를 하고, 학교 교사로 재직 중 일제에 항거하다가 구금되기도 했다. 이후 일본에 건너가 와세다대학 문과를 중퇴했다. 1936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단편 ‘사하촌(寺下村)’이 당선돼 문단에 등단했고, ‘옥심이(1936)’와 ‘항진기(1937)’ 등 8편의 단편을 조선일보, 조광(朝光), 문장(文章)지 등에 발표했다. 1945년 해방 이후 <민주신보> 논설위원과 부산대 교수 등을 역임했다. 1940년 일제의 발악이 극에 달할 무렵 한동안 붓을 꺾고 있다가 1966년 ‘모래톱 이야기’로 문단에 복귀했고, 1969년 중편 ‘수라도(修羅道)’로 제6회 한국문학상을 수상했다. ‘김정한 소설집(1974)’ 등의 작품집이 있다.

■ 일제강점기 사회현실 생생히 드러내
김정한의 소설 ‘수라도’는 1930년대 농민과 도시 빈민의 삶을 다룬 작품으로, 일제강점기 사회 현실을 생생히 드러낸다. 수라(修羅)의 길을 걷는 인간들의 고통과 저항은 단순한 개인사가 아니라 식민지 구조가 낳은 비극을 압축한다. 주인공이 마주하는 절망적인 상황은 곧 그 시대 대다수 민중의 삶을 대변한다.

‘가야부인의 임종을 지켜보면서 손녀 분이는 사람들로부터 존경받던 할머니, 훤칠한 키에 인자하던 할머니를 회상한다. 그리고 할머니의 입을 통해 들었던 할머니의 역사, 곧 허 진사 댁의 시종(始終)이 그려진다. 김해에서 시집왔다고 해 ‘가야부인’으로 불린 할머니. 한일합방 후 일본 정부가 주는 ‘합방 은사금(合邦恩賜金)’도 거절한 시할아버지 허 진사는 간도로 떠나 버렸고, 시아버지 오봉 선생은 엄정하고 추상같은 성격이지만 그녀에게는 자상했다. 남편 명호 양반은 내성적이었고, 시어머니는 집안 대소사를 며느리인 그녀에게 일임한다. 시집온 지 9년째 되던 해 3·1독립만세운동이 터지고 만주에서 야학을 하던 허 진사는 유골이 돼 돌아온다. 둘째 시숙 밀양 양반이 일경(日警)의 총에 맞아 죽고, 오봉 선생은 유생들과 어울릴 뿐이다. 시어머니는 둘째 아들의 죽음에 충격을 받고 불공드리는 일에 전념한다. 그런데 가야부인은 시집가서 죽은 고명딸을 위해서 미륵당을 짓고자 하나 유학자이신 오봉 선생의 반대에 부딪힌다. 집념의 가야 부인은 사위를 통해서 미륵당을 짓기 시작한다. 오봉 선생은 일제가 꾸민 ‘한산도 사건’에 연루, 투옥된다. 절개를 굽히지 않던 그는 고문에 시달린 끝에 출옥 후 사망한다. 장례를 치르고 난 가야 부인은 미륵당을 완성한다. 학병을 피해 막내아들은 도피하고, 계집종 옥이는 정신대로 끌려갈 위기에 처한다. 가야부인은 홀아비가 된 사위와 옥이의 결혼식을 미륵당에서 치른다.

광복 후, 친일파였던 고등부 형사 이와모도 참봉(이천석)의 아들은 국회의원이 돼 득세하고, 가야부인의 가세(家勢)는 점점 기울어 간다. 막내아들 석이를 부르며 마침내 그녀는 숨을 거둔다.’는 줄거리의 이 작품은 ‘생애의 폭이 넓고 깊었던’ 가야부인의 괴로운 과거와 의젓한 처신을 중심에 놓고 시댁인 허진사 댁의 가족들이 일본 제국주의 치하에서 겪는 수난사를 그리고 있다. 또한 중편소설로 한국 종교 문학의 가능성을 보여주기도 한 작품으로, 4대에 걸친 가족의 수난사(受難史)에서 우리의 현대사를 읽을 수 있다. 죽음을 당하는 이와모도 구장의 묘사에서 외세에 기생한 친일세력들의 말로는 마땅히 그러해야 한다는 작가적 양심을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도경 형사였던 이와모도의 장남의 출세에서 비틀거리는 역사적 과제를 해결하지 못한 현대사의 파행을 묘사하고 있다. 아무튼 이 작품은 가족의 수난과 이에 대응하는 가야 부인과 오봉 선생의 인고(忍苦)와 지절(志節), 초월(超越)의 정신을 보여주고 있다.

■ 문학 현장 몰려 있는 지역성 매력
1940년 일제의 우리말 말살 정책이 노골화되자 “왜놈의 문자로 글을 쓸 수 없다.”며 교직을 그만두고 붓을 꺾은 요산 김정한의 일화는 너무도 유명하다. 이 같은 성격은 자연스레 자신의 작품에 스며들었고, 화려한 꽃보다는 끈질긴 생명력을 가진 들풀처럼 강인함과 저항정신을 보여주고 있다는 평가다. 데뷔작인 ‘사하촌’과 ‘옥심이’,‘모래톱 이야기’와 ‘수라도(修羅道)’ 등의 작품에 잘 녹아있는 김정한의 정신은 89세로 세상을 떠날 때까지 고향 부산에서 평생을 보내면서 실천했다. 낙동강과 부산은 요산에게는 영원한 작품의 무대요, 고향이었기 때문이다.

일제강점기부터 대한민국 초기, 낙동강 유역의 어느 농촌을 배경으로 하는 소설 ‘수라도(修羅道)’의 줄거리와 배경 도시 부산과 경남 양산의 현장을 살펴보자.

‘수라도(修羅道)’란 불교의 ‘아수라도(阿修羅道)’의 준말로 ‘싸움을 일삼는 악마들’이 사는 곳을 말한다. 곧 어둠의 시대를 그리는 소설의 작품 세계를 의미한다고 볼 수 있을까.

경남 양산시 원동면 화제리는 요산 김정한의 중편소설 ‘수라도(修羅道)’의 중심 무대다. 화제리는 명언마을을 비롯해 외화, 내화, 지나, 토교 등 크고 작은 다섯 자연마을을 함께 아우르는 지명이라고 한다. 화제리 자연마을은 이름이 독특하다. 감태봉(감토봉)·골마을·대밭각단(죽전)·새마(신촌)·서편·수산물·안독점이·중리·지나리·화정. 모두 자연을 닮았거나 닮고자 애쓴 흔적이 엿보이는 이름이다. 감태봉 마을은 감태봉 밑에 있는 마을이며, 골마을은 명언마을로 서남쪽 골짜기에 있는 마을이다. 대밭각단은 대밭이 마을을 둘러싸고 있어 붙여진 이름이며, 수산물은 내화, 외화 중에 으뜸 마을로, 옛날 나루터 시절 배가 이곳까지 올라왔다 해서 붙여진 지명이라고 한다. 마을들이 한 곳에 몰려 있지 않고 제각기 산자락을 물고 흩어져 앉은 모습이다. 마을과 마을 사이로는 화정천과 화제천이 흘러 낙동강에 닿으면서 들판은 꽤나 넓다. 

‘수라도’에 그려진 화제리의 풍경은 너무 사실적이어서, ‘수라도’를 읽은 사람이라면 처음 화제리를 찾더라도 별로 낯설지 않을 것이다. 오봉산과 토곡산에 둘러싸인 ‘화제리 열두 개 마을’의 정경과 등장인물들이 손에 잡힐 듯하다. 화제리는 요산의 처가가 있던 곳이고, 주인공 가야부인은 처조모를 모델로 삼았다고 한다. 작품 속 손녀로 나오는 ‘분이’는 요산의 부인으로 상정해 볼 수 있다. ‘가야부인’이라는 호칭은 가야국 옛터인 김해가 그의 고향이라 그렇게 지은 게 아닐까. 소설에는 가야부인이 ‘명호’라는 곳에서 시집왔다고 돼 있다. 명호는 지금의 부산 강서구 명지동을 지칭한다. 한때는 명지소금이 생산됐으며, 옛날에는 낙동강 수로를 따라 소금배가 오르내리곤 했다고 전해진다.

물금고개를 넘어 화제리 초입은 가야부인의 시아버지가 살았다는 명언마을이다. 소설 속의 길들을 좇아 무당 천금새가 산다는 태고나루(토교), 냉거랑(화제천) 건너 오봉 선생의 유일한 글 친구인 양접장이 사는 대밭각단(죽전) 들머리에는 솔밭이 있다. 소나무 사이로 듬성듬성 작은 무덤들이 앉았는데, ‘수라도’에서 괴질에 비명으로 죽은 고명딸의 시신이 있던 곳이다. 소설 속 지명은 십중팔구 현재의 지명과 겹친다. 황산베랑길의 용화사는 소설에서 미륵당으로 나온다. ‘강 건너 고암산이 이쪽 미륵당 아래의 강 구부렁이로, 그 웅장한 그림자를 쑥 내밀고 있었다. 벌써 해가 뉘엿뉘엿 넘어가고 있다. 물빛이 한결 시퍼런 강 구부렁이 쪽으로 사타구니가 벌어져간 골짜기의 오목한 부분에, 미륵당이란 절이 납작하게 앉아 있다. 그래서, 모신 미륵불은 어지간히 크긴 해도 절 이름을 미륵암이라고 부르지 않고, 보살 할머니들은 그저 미륵당이라고만 불렀다’(소설 ‘수라도’ 중에서).

미륵당은 이 소설의 핵심 배경이다. 어느 추운 겨울날, 가야부인은 시아버지 허 진사의 입젯날(제사 하루 전날) 제사상을 봐 황산베리를 지나다가 바람이 너무 불어 잠시 피할 곳을 찾는다. 그러다 우연히 땅에 묻혀 있던 미륵불을 발견하게 되고 절을 지어 모시기로 한다. 미륵당이 서게 된 배경이다. 용화사에 미륵불이 모셔지게 된 설화도 ‘오래전 어느 농부가 낙동강에서 떠올랐다가 가라앉았다 하는 물체를 발견하고 건졌더니 미륵불이었고, 한 스님이 용화사에 모셨다’는 것이다. 용화사에는 낙동강에서 건져 올렸다는 석조여래좌상(보물 491호)이 ‘거짓말처럼’ 모셔져 있다. 용화사 측은 모셔 올린 날(음력 2월 28일)을 기리기 위해 해마다 ‘용왕대제’를 지내고 있다고 한다.

김정한의 소설 ‘수라도’는 교과서에도 등장할 만큼 문학성과 작품성이 뛰어나다는 평가다. 구수한 토속어와 손에 잡힐 듯한 지역성이 매력이다. 화제리의 지역성 특성도 자동차나 도보로 1시간 권에 문학 현장이 몰려 있는 연계성도 있기 때문이다. 박경리의 ‘토지’를 바탕으로 꾸민 하동 평사리의 최참판댁처럼, ‘수라도’의 현장인 양산 화제리에 문학 광장을 만들면 어떨까.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