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려진 줄 알았던 나, 사실은 여러 사람이 사랑했던 아이였다
“선생님, 저는 버려진 아이였던 것 같아요.”
H씨(32, 여)가 상담 초기에 건넨 이 말은 오랜 세월 자신을 규정해 온 신념이자 상처였다. 그녀는 20대 우울과 불안을 견디며 SNS 속에서 위로를 찾았고, 스마트폰으로 사람들과 연결되는 것만이 마음을 버티게 했다. 하지만 인터넷을 통해 마약을 접했고, 엑스터시, 케타민, 합성대마까지 이어지며 결국 구치소 경험까지 하게 됐다. 현재는 20개월 정도 단약을 유지하며 반려견과 일상을 지켜가고 있고,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에서 회복은 시작되고 있었다.
H씨의 상처는 생후 1~2세경 부모의 이혼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아버지는 생계를 위해 타국으로 떠났고, 어머니는 산후우울과 조부모와의 갈등으로 양육을 지속할 수 없었다. 그 공백 속에서 어린 H씨는 할머니 등에 업혀 자랐지만 마음 속 외로움은 끝내 사라지지 않았다.
초등학교 소풍가는 날, 친구들이 엄마 손을 잡고 걸어오며 웃는 모습을 보며 H씨는 늘 고개를 숙였다. 첫 생리를 시작한 날에는 누구에게도 묻지 못해 불안과 두려움 속에서 하루를 보냈다. 이러한 경험은 ‘나는 혼자였다’는 감정을 강하게 각인시켰고, 청소년기 가출과 불안정한 대인관계, 성인이 된 후 스마트폰 과의존으로 이어졌다. 스마트폰은 그녀에게 손에서 떨어지지 않는 생명줄 같은 존재였다.
상담 과정에서 가장 크게 다뤄야 했던 부분 역시 스마트폰 과의존이었다. 온라인 판매로 생계를 유지하고, SNS로 감정적 위안을 얻는 공간이면서도, 언제든 과거의 위험이 스며들 수 있는 곳이었다. 며칠 전 인스타그램으로 ‘다시 같이 놀자’, ‘옛날처럼 한 번 하자’라는 메시지가 왔을 때, 그녀는 차단과 흔들림 사이에서 며칠을 방황했다. 결국 유혹을 이겨냈지만, 스마트폰이 가진 즉각적인 연결성은 H씨에게 또 한 번의 경고였다. 낯선 이들의 접근, 외모 평가, 거래를 빌미로 한 친밀감 시도, 과거 인맥의 재접촉 가능성까지 스마트폰은 기회이자 위험이었다. H씨는 말했다. “편한 만큼 무서워요. 제 삶의 대부분이 스마트폰에 매달려 있어서요.”
그러나 몇 달간의 상담을 통해 그녀의 기억은 다른 방향으로 재구성되기 시작했다.
조모, 아버지, 큰아버지, 외가 친척들, 단편적으로만 알고 있던 사실들이 하나의 이야기로 모이면서 새로운 진실이 드러났다. 친가와 외가가 양육을 맡겠다고 다퉜던 일, 아버지가 피곤한 몸으로 짧은 시간이라도 보려고 달려왔던 모습, 시장에서 일하며 번 돈으로 손녀에게 맛있는 음식을 챙겨주던 할머니, 큰아버지가 친딸처럼 챙겨주던 일상까지, H씨는 어느 날 울먹이며 말했다. “저는 버려진 게 아니었어요. 나를 사랑한 사람이 정말 많았어요.” 그 깨달음은 그녀의 존재감을 뒤흔드는 전환점이었다.
사티어모델을 통해 감정을 탐색하며 겉으로 밝아 보이던 모습 뒤에 숨어 있던 슬픔, 분노, 죄책감, 그리움이 드러났고, 그 밑바닥에 자리한 욕구 하나가 모습을 드러냈다. “사랑받고 싶었어요.” 그 욕구를 인정한 순간, 그녀는 비로소 자신을 다시 바라보기 시작했다.
최근 H씨는 할머니와 큰아버지, 가장 친한 친구를 떠나보냈다. 이 상실은 다시 흔들릴 수 있는 큰 위험이었지만, 상담에서는 그 감정을 슬픔, 죄책감, 그리움, 감사로 구분하며 하나씩 다루었다. 상실 속에서도 H씨는 스스로를 돌보는 법을 배워갔고, 유혹이 올 때마다 반려견과의 산책, 헬스장에서의 운동, 그리고 명상과 기도 같은 작은 루틴으로 마음을 지켰다. 이 루틴들은 이제 H씨의 ‘내적 안전장치’가 됐다.
H씨는 말했다. “아버지와 할머니가 보고 있을 것 같아요. 다시는 그 길로 가고 싶지 않아요.” 최근 상담에서 그녀는 조용히 웃으며 말했다. “저는 버려진 아이가 아니라 여러 사람이 사랑해 준 아이였어요. 이제는 저도 제 삶을 사랑하고 싶어요.”
그녀의 말은 디지털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에게 건네는 메시지다. 상처받은 과거가 우리의 미래를 결정짓지 않는다. 스마트폰이라는 양날의 도구 속에서도 우리는 여전히 연결될 수 있고, 지지받을 수 있으며, 회복될 수 있다. 그리고 한 사람의 회복은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지역사회와 모두가 함께 지켜야 할 과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