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축제 포화시대, ‘성과’에 묻힌 축제의 본질을 다시 묻다
지역축제 포화시대, 지역성을 담은 축제로 변해야 한다⑮ 특/별/인/터/뷰 - 김종원 ㈔한국축제문화진흥협회 이사장
전국 곳곳에서 지역축제가 이어지고 있다. 그러나 축제가 끝난 뒤 지역에 무엇이 남았는지, 주민의 삶은 얼마나 달라졌는지에 대한 질문은 여전히 부족하다. 방문객 수와 예산 집행 실적은 남지만, 축제가 지역의 기억과 공동체에 어떤 흔적을 남겼는지는 좀처럼 기록되지 않는다.
<공동취재단>은 지역신문발전기금 심층보도지원사업 ‘지역축제 포화시대, 지역성을 담은 축제로 변해야 한다’ 공동기획취재의 일환으로 김종원 ㈔한국축제문화진흥협회 이사장을 만나, 지역축제가 반복적으로 같은 문제에 부딪히는 구조적 원인과 전환 방향을 물었다.
김 이사장은 “축제를 바꾸고 싶다면 프로그램이 아니라 구조부터 바꿔야 한다”고 강조했다. 인터뷰는 지난 12일 대전광역시 플레이스 플로라에서 진행했다. <편집자주>
전국 지역축제 늘었지만, 지역에 남는 가치 희미해
행정·외주 중심의 구조가 비슷한 축제를 반복 시켜
‘성과’ 아닌 ‘지역성’과 ‘주민 주도’로 구조전환 필요
김종원 이사장은 인터뷰 초반부터 한국 지역축제의 현주소를 ‘포화’라는 단어로 규정했다. 그는 “공식적으로 집계되는 축제만 1200~1300개, 미등록 크고 작은 축제까지 포함하면 1만 개가 넘는다”며 “거의 매일 전국 어딘가에서 여러 개의 축제가 동시에 열리고 있다”고 말했다. 숫자는 늘었지만, 그만큼 지역의 삶이 풍요로워졌는지에 대해서는 단호하게 선을 그었다. 김 이사장은 “양적 팽창은 관리 실패의 다른 표현일 수 있다. 축제가 많다는 사실 자체가 이미 구조 점검이 필요하다는 신호”라고 진단했다.
행정 편의가 만든 축제의 일상화
김 이사장이 가장 먼저 짚은 문제는 행정 구조였다. 그는 축제가 지역의 문화적 필요에서 출발하기보다 행정 논리와 예산 구조 속에서 만들어지고 있다고 진단했다. “공모사업, 국·도비 매칭, 평가 지표가 축제 신설을 부추긴다. 축제가 없으면 뒤처지는 것처럼 느끼는 분위기가 정책 판단을 대신한다”는 설명이다. 이어 “축제가 끝난 뒤까지 발생하는 민원과 언론 대응, 사고 책임은 모두 행정의 몫이 되기에, 가장 안전한 선택이 반복되고 새로운 시도는 위험 요소로 취급된다”고 덧붙였다.
외주 중심 운영이 만든 구조적 한계
축제 대행사와 기획사 구조에 대한 지적도 이어졌다. 김 이사장은 “대행사 자체가 문제의 본질은 아니다”라고 전제하면서도, 모든 책임을 외주에 맡기는 현재의 방식은 분명한 한계가 있다고 말했다. 그는 “대행사는 정해진 예산 안에서 가장 안전한 결과물을 낼 수밖에 없다. 그 과정에서 축제는 점점 비슷해지고, 지역성은 장식처럼 소비된다”고 밝혔다.
실패가 기록되지 않는 점도 문제로 꼽았다. “실패를 축적하지 못하는 축제는 성장할 수 없다. 축제는 매년 새로 시작하지만 문제는 매년 그대로 남는다”는 지적이다.
무대 중심으로 굳어진 축제 현장
현장 운영 방식에 대해서도 날을 세웠다. 김 이사장은 “축제장에 가면 무대 설치와 시설 조성에 예산이 집중된다. 하지만 실제로 무대를 사용하는 시간은 극히 일부”라며 “낮 시간대에는 의자만 놓인 채 텅 비어 있는 장면이 반복된다”고 말했다.
그는 “축제장다운 축제장은 사람들이 모여 만져보고, 체험하고, 먹어보는 공간”이라며 “지역의 소재와 맞닿은 체험 콘텐츠가 중심이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무대·콘서트 중심의 예산 구조는 축제의 본질과 멀어질 수밖에 없다는 진단이다.
방문객 숫자에 갇힌 성과의 착시
축제 성과를 방문객 수로만 판단하는 평가 방식도 한계로 꼽았다. 김 이사장은 “현장에서는 관광객이 얼마나 왔는지를 먼저 따진다. 그러다 보니 수치가 부풀려지고, 숫자를 만들기 위한 선택이 반복된다”며 “정작 지역에 어떤 소비가 남았는지는 정확히 잡히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사람이 많이 오면 지역경제가 산다는 단순 공식은 착시일 수 있다”며 “축제에는 문화와 역사, 교육처럼 수치로 환산되지 않는 가치도 있다. 이런 요소들이 쌓여야 지역의 정체성이 만들어진다”고 강조했다.
지역성 빠진 축제는 행사에 그친다
많은 축제가 지역성을 강조하지만, 정작 주민의 삶은 보이지 않는다는 지적도 나왔다. 김 이사장은 “특산물은 등장하지만, 그 특산물이 왜 중요한지에 대한 이야기는 없다”며 “역사와 노동, 생활이 빠진 축제는 축제라기보다 행사에 가깝다”고 말했다.
주민 참여에 대해서도 “무대에 서거나 부스를 맡는다고 참여가 아니다”며 “기획 단계에서부터 주민의 판단이 반영돼야 한다. 결정권 없는 참여는 동원에 가깝고, 그런 축제는 결국 외부 손님의 행사로 남는다”고 선을 그었다.
좋은 축제는 구조와 방향이 분명하다
김 이사장은 이제 ‘얼마나 많은 사람이 왔는가’보다 ‘어떤 축제였는가’를 물어야 할 시점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왜 이 축제를 해야 하는지 한 문장으로 설명할 수 없다면, 그 축제는 이미 방향을 잃은 것과 다름없다”며 “관광객 유치나 지역 홍보처럼 어디에나 적용되는 명분으로는 축제를 정당화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또한 “좋은 축제는 1년짜리 이벤트가 아니라 최소 5년 이상을 보고 설계돼야 한다”며 “담당 공무원이나 단체장이 바뀌어도 철학과 방향이 유지되는 구조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행정은 촉진자로, 축제는 주민의 손으로
김 이사장이 제시한 해법의 핵심은 ‘마을공동체’였다. 그는 “행정은 지원하되 통제하지 말고, 기획과 운영은 마을이 주도하는 구조로 가야 한다”며 “단체장이 바뀌면 사라지는 축제가 아니라, 마을이 축적해 키워가는 축제가 돼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축제는 이벤트가 아니라 지역의 삶을 비추는 거울”이라며 “프로그램 몇 개를 바꾸는 것으로는 한계가 있다. 축제를 바꾸고 싶다면, 먼저 구조를 바꿔야 한다”고 거듭 강조했다.
김 이사장은 공동취재단의 문제의식에 대해서도 의미를 부여했다. 그는 “축제를 재미있다, 없다로 평가하는 기사는 많지만, 왜 같은 문제가 반복되는지 구조를 묻는 질문은 드물다”며 “여러 지역신문이 함께 축제를 분석하고 기록하는 접근은 정책과 행정의 시선을 바꾸는 데 충분한 힘을 가질 수 있다”고 평가했다.
지역축제가 ‘포화’를 넘어 ‘지역성’으로 나아가기 위해 필요한 것은 새로운 이벤트가 아니라, 축제를 바라보는 구조와 관점의 전환이다. 이번 공동취재는 그 출발점을 현장에서부터 짚어냈다는 점에서 의미를 갖는다.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