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성지역 ‘야학’의 뿌리, ‘홍성고 양지회’를 아십니까?

①홍성고등학교 양지회,  ‘야학’ 소향리에서 첫 출발

2026-01-15     한관우 발행인

10대 청소년이던 ‘홍성고 양지회’ 회원들, 80의 나이에 만난 사연
홍성고 1~3학년 45명 ‘양지회’ 봉사 단체 조직, 야학 등 봉사 활동
청석·양지중학원, 재건학교, 복지중학교, 청석수련원 등으로 변천


1960년대 초반 충청남도 서부지역의 명문 학교로 명성을 날리던 홍성고등학교 재학생들이 자생적으로 조직했던 모임인 ‘양지회(陽地會)’를 혹시라도 알고 계십니까? 

1945년 우리 민족은 일제 36년 세월의 강점기에서 해방을 맞았고, 1948년 정부가 수립되고 2년 뒤, 우리 민족에게 가장 큰 상처를 남겼던 6·25 한국전쟁이 1950년 6월 25일에 일어나 나라의 곳곳이 폐허가 됐고, 1953년 7월 휴전을 하고 나서 10여 년의 세월이 흐르고 있던 1960년대 초중반의 시기, 홍성고등학교 재학시절의 이야기다. 

2025년은 광복 80주년을 맞이하는 해로, 이 해가 저물어 가는 지난 12월 29일 나이 80을 넘나드는 10여 명이 60여 년 만에 자리를 함께한 사람들이 있었다. 이들은 60여 년 전, 홍성고등학교 재학시절 ‘양지회(陽地會)’를 이끌었던 중심인물들이다. 

1964년 ‘홍성고등학교 양지회’를 설립할 당시 2학년에 재학 중이었던 홍성고 20회 졸업생들로 80의 나이에 접어들어 ‘양지회 설립 만 60년’만의 해후상봉(邂逅相逢)이다. 이날 만남은 현상섭 회원의 주선으로 이뤄졌다는 설명이다. 여기에 김선태, 장원균 회원이 앞장서 연락을 하면서 최덕규, 최명재, 신서철, 이헌운, 김창규, 한병성과 ‘양지회의 야학 1기 입학생이자 졸업생’인 전덕근 졸업생 등 11명이 함께 만났다.

이들은 이날 홍성역에서 만나기로 약속하고 서울에서, 홍성에서, 인근 지역에서 하나, 둘씩 모여 오랜만에 만나는 반가움과 기쁨부터 나눴다. 홍성역에서 모인 이들은 우선 움막교실을 짓고 야학 활동을 했던 장소로 가기 위해 홍성읍 소향리 산171번지로 향했다. 소향리 움막교실이 있었던 추정지 인근에서 만난 나머지 회원들과도 60년 만에 극적인 해후(邂逅)를 했다. 그곳에서는 처음으로 야학을 시작할 때 학생 4명으로 시작해 4명의 1회 졸업생을 배출했는데, 그중 한 명인 전덕근 졸업생도 극적으로 재회(再會)했다.

이들은 야학을 시작했던 움막교실 터를 찾기 위해 나섰으나 60여 년의 세월이 흐르면서 옛 장소가 변형된 상태라 정확한 장소를 특정하지는 못했지만 기억을 되살리며 장소를 추정할 수밖에 없는 아쉬움을 달래며 식당으로 이동해 회포(懷抱)를 풀었다.

자연스럽게 움막 교실에서 천막 교실로, 이어 남장리에 교사를 신축해 옮기는 과정에서의 교실 신축을 위한 모금 운동에 대한 이야기, 국방부의 군수 자재 지원으로 학교를 지은 얘기, 정석모 충남지사의 지원과 관련한 교실 신축회고담, 학생들의 상급학교 진학과 관련한 이야기 등으로 시간 가는 줄을 모르고 이야기꽃을 피웠다. 이때 좌중에서 어느 회원이 “동백아가씨 노래 부르며 똥 리어카 끌던 거 생각나”란 얘기에 순간 폭소가 터졌다. 서로가 홍성고에서 공부를 하며, 야학에서는 선생님을 하면서 학생들을 가르쳤던 옛 이야기, 야학의 제자들과 나이 차이가 그리 많이 나지도 않았다면서 ‘이명화, 향숙이, 찬옥이, 전월수, 최재숙, 노순자, 복기숙 등등 제자들의 이름들을 기억해 내기에 바쁜 모습이었다. 

이들 양지회(陽地會) 회원들은 홍성고등학교 재학시절 10대 중후반에서 20대 초반의 청년들이었다. 이들이 야학 활동을 하며 가르쳤던 제자들도 10대 초중반을 넘어서는 나이였던 학생들이었다.

그렇게 선생님과 제자로 야학을 할 때 선생님이었던 장원균 회원은 홍성고 3학년이던 1965년 ‘양지회 야학 활동을 주제로 수필을 써 입상을 했다’며 ‘당시에 받았던 상장을 지금까지 보관하고 있다’고 밝히며 빛바랜 상장을 펼쳐 보이는 순간, 참석한 회원들로부터 60년 만에 큰 박수를 받기도 했다.
 

■ 1964년, 홍성고등학교 봉사단체 ‘양지회’
당시 홍성고등학교에서 ‘양지회(陽地會)’의 출현은 특기할 만한 일이었다. 1964년 10월 1일, 홍성고등학교에 재학 중이던 3학년 5명(19회, 1962년 입학), 2학년 34명(20회, 1963년 입학), 1학년 6명(21회, 1964년 입학) 등 45명은 ‘순수한 지역사회 봉사’를 목적으로 ‘양지회(陽地會)’를 창립하게 됐다. 창립 초대회장은 3학년이던 정덕영(19회)이 맡았다. 

이러한 ‘양지회(陽地會)’라는 봉사단체를 만들게 된 직접적인 동기가 된 것은 홍성 출신(장곡면 천태리)의 농촌운동가였던 고(故) 한인수(韓仁洙)의 순회강연과 소설가 심훈의 소설을 영화화 한 ‘상록수’를 보고 감화되고부터였다고 전해지고 있다.

양지회(陽地會) 회원들은 ‘땅을 위한 땀, 인류를 위한 눈물, 하늘을 위한 피를 뿌림으로써 보다 살기 좋은 우리 고장을 건설하자’고 한데 뜻을 모았다. 6·25 한국전쟁으로 인한 폐허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가난하고 무지한 농민들을 일깨워 살기 좋은 복지농촌을 건설하고자 당시 홍성고 1~3학년으로 구성된 재학생 45명이 자발적으로 절미절식하며 보육원의 고아들을 돕는 등 지역사회 봉사에 앞장섰다.

이들은 국경일 및 주 2회씩 점심을 굶는 대신 도시락에 쌀을 가지고 와 모아진 쌀을 현금으로 바꿔 당시 보육원과 불우한 학생들에게 학용품 등을 전달하고, 홍성 시가지의 청소를 비롯해 당시의 공중변소(화장실) 청소를 정기적으로 실시했으며, 당시 서산 앞바다 장배 침몰 사고가 있었을 때에는 유가족을 돕기 위해 모금 활동을 전개해 현금 2300원과 회원들이 국경일과 매주 2회씩 결식을 해서 모은 쌀 3말을 전달하는 등 불우이웃돕기 운동을 비롯해 여름방학과 겨울방학을 이용해서는 농촌 봉사 활동 등을 전개했다.

또한 양지회(陽地會) 회원들은 1965년 당시 홍성군수의 배려로 홍성읍 소향리 산 171번지의 군유림(당시 소향리공동묘지) 인근 2000평을 임대해 괭이와 삽으로 황무지를 개간, 호박과 오이 등을 심으면서 1965년 4월 1일 움막교실인 ‘청석중학원’을 설립, 빈곤 때문에 배움의 길을 잃고 중학교에 진학하지 못하는 학생들을 모아 중학교 과정을 공부시키는 야학 활동을 했다. 1966년 6월 1일에는 금마면 죽림리에 있는 천주교회관에 ‘양지중학원’을 설립했다. 이들 양지회 회원들은 낮에는 학교에 등교, 자신들의 공부를 하고, 야간에는 미진학 청소년들을 가르치는 선생님으로 봉사 활동을 했다. 양지회 회원들은 학원 운영경비를 충당하기 위해 신문 배달, 풀빵 장수 등을 하기도 했다고 전했다.

홍성읍 소향리 군유림의 공동묘지 옆 움막교실에서 시작한 중학교 과정의 야학 활동은 제1기 졸업생 4명(전덕근, 최재숙, 노순자, ? )을 배출하며, 현재의 북문교 밖 안식일교회 자리에서는 천막 교실로 이어졌다. 

이날 참석한 양지회 야학 ‘청석중학원’ 제1기 입학생이자 졸업생으로 대전 호수여고에 진학해 졸업한 유일한 홍일점(紅一點) 전덕근 졸업생은 “정말 고생 많이 했던 시절이었다”고 회고하며 “울기도 많이 했지만 그때는 무서운 것도 없었는지 어떻게 저 산길을 그렇게 열심히 다니면서 공부했는지 모르겠다”고 말하면서 “여자가 날이 어둑해지기만 하면 산길을 따라 자주 공부하러 다니다 보니 동네에서 바람이 났느냐는 소문도 들은 적이 있다”고 당시를 회상하기도 했다.


■ 홍성지역 ‘야학’의 뿌리, 지역봉사 결정체 
홍성고등학교 양지회(陽地會) 회원들은 재학시절의 봉사 활동과 야학 봉사활동 등으로 끝나지 않고 졸업 이후에도 그들의 뜻을 계속 펼쳐나갔다. 일부 회원들은 고교 졸업 후 대학 진학과 사회 진출로 양지회를 떠났으나 나머지 회원들은 대학 진학도 포기한 채 지역사회에 남아 봉사 활동을 계속해 나갔다. 

홍성고등학교 재학시절인 1964년 시작된 야학 활동은 홍성고 졸업 이후인 1967년부터는 청석중학원과 양지중학원을 통합하고 ‘홍성직업소년학교’와 ‘홍성재건학교’ 등이 통폐합되는 등의 과정을 거치며 ‘복지중학교’와 ‘청석수련원’을 개설, 미진학 청소년을 위한 교육사업을 1981년까지 계속해 이어나갔다. 회원들 중 정덕영, 김선태, 장원균, 이상은 등은 끝까지 남아 홍성읍 남장리에 학교 건물을 짓고 15회에 걸쳐 1000여 명의 학생들을 졸업시키기도 했다.

1981년 이후에는 급격한 산업발전과 경제의 호전으로 중학교 미진학 학생이 없어진 반면, 문제 청소년이 늘어나게 됐다. 그래서 이들은 학교시설을 구조 변경하고 국민정신교육의 도장인 ‘청석수련원’을 설립해 청소년 교육과 사회교육으로 눈을 돌렸다. 당시 홍북면 상하리 용봉산 기슭에 자리 잡았던 ‘청석수련원’은 ‘양지회(陽地會)’ 회원들이 홍성고등학교 재학시절부터 어렵게 실천해 온 지역사회공동체를 위한 땀과 봉사의 결정체라고 할 수 있는 곳이었다. 용봉산 기슭에 자리 잡은 ‘청석수련원’은 지역의 청소년 교육과 성인 지도자들의 사회교육을 위해 힘썼다. 청석수련원을 거쳐 사회적으로도 각계각층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면서 국가와 지역사회 발전에 기여를 했고, 또 고시에 합격해 판검사를 지내기도 했으며, 변호사로 현재 홍성지역에서 활동하는 사람도 있다. 청석수련원에서는 본격적으로 새마을 교육이 실시됐으며, 마을지도자 교육과 이장 교육 등 지역사회의 지도자등을 위한 교육도 활발하게 진행됐다.

 

※1962~1967년 홍성고등학교 재학시절 양지회(陽地會) 회원들과 ‘청석중학원’과 ‘양지중학원’의 야학 과정을 수강한 분들의 연락을 기다립니다. 또한 홍성재건학교, 홍성직업청소년학교, 복지중학교, 청석수련원 등에서 교육을 받았거나 관련 내용을 알고 계신 분, 관련 자료나 사진, 앨범 등을 소유하고 계신 분, 기타 홍성지역의 재건학교, 고등공민학교 등과 관련된 제보를 기다립니다. 

-홍주일보·홍주신문 편집국(전화 041-631-8888, 우편 32278 홍성군 홍북읍 홍북로573번길 83)으로 연락 주시기 바랍니다.